[Opinion] 미쳤지만 파멸하지는 않는 사랑 [영화]

영화 <광란의 사랑> (1990)
글 입력 2022.11.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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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onship Goal


 

북미권 SNS 따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연애 관련 표현 중에, 'Relationship Goals'가 있다. 관계의 목표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사소한 일이나 버킷 리스트를 나타내기도 하고, 큰 의미로 최종적으로 연인과 함께 다다르고 싶은 관계의 상태를 이야기할 때 쓰이기도 한다. Relationship Goals는 결혼이 될 수도 있고, 그 외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서 이 '관계의 목표 콘텐츠'를 볼 때마다 인상을 쓰며 엄지손가락을 쓸어 동영상을 치워 버렸다. 좀 오글거렸기 때문이다. '좀'이 아니라 너무 오글거렸다. 그런 콘텐츠 속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자로 잰 듯이 반듯하고, 지저분한 세상살이와 뉴스 따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그런 게 어디 가능한가?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으니 'Goals'인 것이겠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목표는 애초에 갖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그런 콘텐츠를 엄지로 쓱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때 내 앞에 데이빗 린치 감독이 나타났고, 그가 보여준 건 <광란의 사랑>이었다.

 

 

 

어린 사랑


 

사랑이 어리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어린 시절에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풋사랑이나 첫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나이가 충분히 찬 사람이든, 사랑을 몇 번이나 해본 사람이든 어린 사랑을 할 수 있다.

 

보통 어린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열정이 도를 지나쳐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사랑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의 보니와 클라이드는 강도질을 하다가 그들을 진압하기 위한 총격에 사망하고 말았고, <시드와 낸시>(1986)의 시드와 낸시는 마약에 취한 삶을 살다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고 죽는 결말에 이르렀다.

 

<광란의 사랑> 속 룰라와 세일러의 관계 역시 어린 사랑에 가깝다. 작품 속에서 세일러의 나이는 언급되지 않지만, 룰라는 스무 살(한국 나이로 계산해보면 스물둘 정도 될 것이다)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룰라의 엄마에게서 벗어나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물론 그 세상은 난장판이고 혈기 왕성하다.

 

그러나 룰라와 세일러는 위에서 언급한 두 커플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미친 사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커플의 일대기에는 섹스와 폭력이 가득하다. 세일러는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동안 두 번이나 감옥에 갔다 온다. 그런데도 룰라와 세일러 사이에는 순애보 적인 사랑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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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란의 사랑> 스틸컷

 

 

 

관계의 완성


 

영화를 처음 보고서는 둘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한 번 더 보기 시작하면, 룰라가 왜 세일러의 아이를 갖기로 했으며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일러를 기다렸는지, 세일러가 왜 룰라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영화는 그런 사소한 단서를 제법 많이 보여주지만, 인상 깊었던 몇 부분만 짚어보고자 한다.

 

뱀 가죽 자켓 - 세일러가 처음 복역한 뒤 출소할 때 룰라는 출소 선물로 세일러의 뱀 가죽 자켓을 가져간다. 세일러는 매우 흡족해하며 '내 뱀 가죽 자켓이 개성과 자유를 상징한다고 말했던가?'라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사실을 신나 하며 말한다.

 

이 대사는 나중에 세일러가 클럽에서 한 남자와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될 때도 이야기하는데, 문어체 같은 대사와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우습다. 그렇지만 룰라는 (그 무더운 여름날에) 출소 선물로 뱀 가죽 자켓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세일러의 취향과 가치관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싸움이 아닌 대화 - 영화를 거듭해서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 중에 하나는, 이 커플은 두 시간 내내 말다툼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싸움의 징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텍사스에서 지내게 된 모텔의 시설이 너무 열악해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아 룰라가 바닥에 토를 하게 되는데, 며칠 동안 청소가 되지 않아 냄새가 나는데도 세일러는 룰라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룰라가 괜찮은지를 먼저 물어본다.

 

두 사람이 세일러의 강도 작전 참여와 관련해 의견이 달라 갈등이 생겨도 룰라는 세일러가 걱정되는 자신의 마음을, 세일러는 룰라의 마음에 고마운 마음과 피곤한 자신의 상태를 곧바로 이야기한다.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대화로 풀어나가기에 갈등이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이 외에도 많은 장면이 그들의 사랑이 열정적이면서도 보이는 것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도 어리게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성숙한 사랑을 하는 둘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사랑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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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란의 사랑> 스틸컷

 

 

 

Love Me, Tender


 

영화의 마지막에 룰라와 다시 만난 세일러는 룰라에게 드디어 'Love Me Tender'를 불러준다. '드디어'를 사용한 이유는 세일러가 이전에 자기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만 'Love Me Tender'를 부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룰라는 감격하며 자신을 드라마 같은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세일러의 노래를 감상한다.

 

사실 <광란의 사랑>은 로맨스 영화라고 한정하기에는 많은 요소가 담겨있다.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를 모티프로 삼아, 나쁜 마녀 같은 엄마와 그 엄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딸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짧지만 세일러가 강도 작전에 참여할 때에는 헤이스트 무비가 생각나기도 한다.

 

<광란의 사랑>은 1990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상하고 기묘하지만 감상하면 단번에 매력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이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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