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약 8년 정도 쓰고 있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있다. 처음 보는 이들은 아마 별 의미 없는 알파벳의 나열 혹은 이름을 영어로 변형해 만든 무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이 계정의 이름은 아주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진 이름인데, 그 시작은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나는 전공 수업의 지루함에 대한 반발처럼 교양만큼은 학점을 잘 주는 것보다 무조건 흥미 위주의 수업을 골라 듣고 있었다. 그때 들었던 교양 중 하나가 그리스 고전에 관한 것이었고, 당연하게도 호메로스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 대해서 배우던 중,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한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오뒷세이아에는 온갖 기이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바꿔버린 키르케 등이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빼앗긴 존재는 그들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오디세우스가 항해 중 잠시 들른 어느 섬의 열매였다. 섬의 사람들은 낯선 이들에게 로터스(lotus)라는 열매를 건넨다. 그리고 그 열매를 먹자, 사람들은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결국 오디세우스가 그들을 강제로 끌고 결박해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나의 아이디는 바로 이 Lotus와 Odysseia를 합쳐서 만들어졌다. 나는 이 로터스 먹는 자들(lotus eater)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다. 정확히 하자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어디로도 향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계속 어딘가를 향해 가야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목적지도 귀환도 없이 그저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 말이다. 다른 한가지 이유는 조금은 더 낭만적인 것이었다. 로터스를 먹은 이들은 대체 어떤 느낌이었길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을까. 그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했기에 본디 알고 있던 세계를 거부하고 그 섬에 머물고자 했을까. 로터스가 어떤 맛인지, 어떤 향인지, 그것을 먹은 이가 무엇을 잊었는지 혹은 어떤 환상을 봤는지에 대해 이야기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부분 때문에 나에게 로터스는 하나의 꽃이나 열매라기보다 상상 속의 어떤 상태로 느껴졌다.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다워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말이다.
nostos 라는 단어가 있다. ‘귀환’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오뒷세이아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단순하게 여러 곳을 탐험하는 모험담이 아니다. 수 많은 섬과 그곳에서의 사건들은 그가 지나가야하는 길일 뿐, 그 끝에는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로터스 열매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는 막연히 열매가 고향에 대한 망각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nostos 라는 단어를 곱씹어 볼 수록 확신에 의구심이 들었다. 애초에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유는 뭘까? 그곳이 말 그대로 ‘태어난 곳’이라는 것도 이유일 수 있지만, 그 외의 각기 다른 사유가 존재할 것이다. 그곳에 가장 많은 추억이 있어서, 그곳에 가족이 있어서, 혹은 그곳이 그냥 익숙해서 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향에 대한 망각 이후, 남아있는 기억 속에 그를 대체할만한 장소가 과연 없을까. 아마 로터스 열매를 통해 얻는 것은 환상 혹은 망각 중 하나일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려던 이유를 대체할만한 환상을 보여주거나, 단순히 고향에 대한 기억이 아닌 ‘귀환에 대한 의지’를 지워버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로터스 이야기에 끌렸던 것은 단순히 망각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상상했고, 동시에 그렇게 돌아가기를 포기하게 만들 만큼 매혹적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동경했다. 이 두가지는 어찌 보면 서로 반대처럼 느껴진다. 하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이고, 또 하나는 기존의 목적을 버릴 만큼 무언가를 너무나 강렬하게 원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세계가 유일해지거나 돌아갈 세계가 희미해지는 것, 이 두가지 선택지는 정반대에 위치하면서도 서로 겹쳐있다. 두고 온 고향이라는 과거와 나서서 행동해야하는 미래를 모두 지우고 지금 존재하는 섬에 머무는 현재를 택한다. 망각이나 환상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내가 소망한 것은 나의 의식이 현재에 머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생각해보아도 오뒷세이아 속 인물들이 로터스 열매를 먹고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무엇을 잊었고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는지 끝내 알 길이 없지만 이 궁금증이 나에게는 오뒷세이아로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고향같은 이유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모르는 어느 세계에 로터스 열매가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을 먹어야 할까 거부해야 할까. 이 고민은 내 계정 아이디를 볼 때마다 때때로 생각나고, 또 영원히 고민하게 만들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