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에 관한 이미지들
종종 이탈리아 현지인이 소개하는 피자에 관한 영상을 보곤 한다. 일단 여기서 파악한 나폴리식 피자의 특징은 얇고 쫀득한 도우에 신선한 재료를 올려 화덕으로 굽는 것이다. 어떨 때는 미국식 피자라며 거대한 사이즈에 짭짤한 치즈를 잔뜩 올린 피자 영상을 보기도 한다. 왠지 거대한 콜라컵이 함께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가끔씩은 불고기나 고구마 무스, 심지어는 뇨끼나 파스타(아이러니하게도 뇨끼와 파스타는 한국음식이 아니지만)가 들어간 한국식 피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렇게 짚고 짚다 보면, 어디부터 피자고, 피자가 아닌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둥글고 얇은 빵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애초에 누가 넓적한 빵을 구워 그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얹는다는 조합을 생각해낸 걸까? 그리고 이탈리아식, 미국식, 심지어는 한국식 피자라는 특색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피자에 담긴 세계사』는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음식 역사학자이자 본작의 저자인 루카 체사리는 3부로 나누어 피자에 담긴 세계사를 서술한다. 1부는 나폴리에서 피자가 어떻게 발상했는지를 다룬다. 2부는 피자와 피자 아닌 것에 대한 분류를 따져 본다. 3부는 바다를 건너간 피자가 어떻게 변주됐는지 살펴보고, 미래의 피자는 또 어떤 모습일지를 전망하며 마무리된다.
이 내용들이 비단 피자에 한정된 지엽적인 얘기에 불과하다고는 볼 수 없다. 세계사를 담고 있는 모든 음식 일반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절임 요리라는 스펙트럼으로 망라한다면 독일의 사워크라우트도 김치와 비슷한 맥락의 음식이라 볼 수 있다.
피자와 피자 아닌 것
“이탈리아인도 이건 피자라고 부를 거예요.”, “이 피자가 이탈리아식이 아니라고는 할 수 있어도, 맛은 인정할 걸요?” 같은 표현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피자의 기원은 이탈리아로 둔다는 거고. 하여튼 원조로부터 인증마크를 받고 싶어한다는 거다.
어디서부터 피자고 또 피자가 아닌가. 그런 짤방이 돌았던 적이 있다. 가로축을 재료 선·재료 중립·재료 악으로 두고, 세로축을 제작 선·제작 중립·제작 악으로 두는 분류표다. 이 프레임을 그대로 피자에 적용시킨다면, 라자냐나 케이크도 피자라는 재미난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 엉뚱한 짤방이 의외로 역사적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피자 이미지를 아무런 구분 없이 과거에 그대로 투영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196)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둥글고 얇은 도우에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올린 피자’는 사실 전 세계적으로 특정 스타일이 자리 잡으면서 생긴 일반화일 뿐이다. 애초에 ‘피자’라는 단어 자체가 납작하게 누른 빵이나 포카차 전반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인류는 화덕이 없던 신석기 시대부터 반죽을 얇게 펴 구워냈고, 이 단순한 빵은 오랫동안 다른 음식을 받쳐주거나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심지어는 과거에 기록된 피자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 피자 악(惡)에 가까워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슈가 파우더를 뿌리거나 달콤한 타르트 형태의 피자, 건포도와 잣을 넣은 크림 피자까지. 어쩌면 피자보다는 디저트에 가까운 모습이다.
결국 어디서부터 피자고 어디서부터 피자가 아닌가를 가르는 엄격한 경계선은 없었던 셈이다. 이탈리아 현지의 정통 인증마크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자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생물과도 같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거대한 치즈 피자도, 한국의 고구마 무스나 불고기가 올라간 피자도 원조를 훼손한 변종이 아니다. 신석기 시대의 인류가 행했던 소박하고도 원초적인 조리법이 오늘날의 방식으로 이어진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이다. 『피자에 담긴 세계사』는 음식이란 국경과 형식을 넘어 끊임없이 변화할 때 비로소 그 세계사를 넓혀간다는 사실을 꽤나 흥미롭게 증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