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카와 극장판 인어 섬을 보고 문득 나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집엔 내 인형이 수십 개가 있었다. 언제 어떻게 내게 온 인형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애정이 가득했다는 것 모든 인형들에게 애정을 표하듯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눈을 마주치며 혼자 웃기도 했다.
집에 온 날에는 이름도 정성스레 붙여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애정이 가득했는데 하나의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인형에 둘러싸여 낮잠을 자고 수십 개의 인형에 마음이 가득 담긴 이름을 선물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사랑했었는데. 오래도록 함께 있어 줄 것 같았는데 인형들은 사라지고 내 기억 속에서 이름들도 사라졌다.
그나마 기억나는 건 드문드문 그 형체들의 크기와 색 감촉 정도다. 어디에다 적어둘 걸 기록을 버리지 말걸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그렇게 지나가버린 추억들이 아쉽다.
기록을 좋아하게 된 건 꽤 어릴 적부터였다.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의 일기장이 아직 있다. 일기가 채 쌓이지도 않았는데 썼던 일기를 읽고 읽고 다시 읽었다.
기록이 좋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중학교 때 일기장을 펼쳐본 적이 있다. 그 나이 때의 고민 그 나이 때의 우정과 애정이 가득했다. 우울도 슬픔도 가득했다. 잊어버린 것들은 기록으로 남아 머릿속의 말풍선을 다시 띄워줬다.
오래된 앨범을 열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나도 잊어버린 내 모습을 다시 열어 볼 수 있는 게 기록이라, 나는 순간의 자국을 어디든 찍어 내고 싶어 했다.
잊힐 과거가 두려운 건지 현재가 여전히 지나고 있다는 게 아까운 건지 미래의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게 느껴 건지. 편지와 일기를 쓰거나, 지금처럼 에세이를 쓰기도, 영상과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 걸음을 따라가보면 마치 아주 오래된 마을처럼 그 안에 자라온 내가 있다. 기억하고 있어도 잊어버릴 것 같아서 무섭다는 하치와레의 말이 머릿속에 자꾸 맴돈다. 누구나 그런 마음으로 순간을 기록하고, 나 역시 잊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계속 담고 모아두는 거니까.
잘 잊히지 않는 건 있다. 시절 인연.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희한하게 우리가 서로 주고받았던 우정과 애정, 불안은 불로 찍은 도장처럼 깊게 새겨져 있다.
모든 감정들이 정제되지 않고 순수하게 쏟아지던 시절엔 그렇게도 진한 향기가 머물렀었다. 그 시절의 인연들이 가끔 잘 지내고 있는지 생각이 난다. 이유 없이 또는 무슨 이유로 멀어졌든 간에 친구였던 인연들이 종종 꿈에 나올 때도 있다.
튼 끝이 있는 삶을 달려가고 있는 중에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생각이 머물렀던 곳이든 시선이 닿았던 곳이든 훗날 다시 봤을 때 애틋해질 것 같아서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매일 모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