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방이 두둑한 ‘보부상’인 내게 늘 빠지지 않는 소품이 있다면 그건 바로 카메라다. 특히나 여행을 가는 날이면 투박하고 무거운 필름 카메라를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다 쓰고 나면 필름을 손수 갈아줘야 하는 수고스러움, 정성스럽게 찍은 사진을 만나보기 위해 따로 스캔 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귀찮음. 다음 사진을 위해 상시 구비해 둬야 하는 만만찮은 가격의 필름과 배터리까지. 첫 인턴 생활 때 만났던,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가 취미라는 사수분의 말마따나 꽤나 여러모로 ‘사치스러운’ 취미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감수할 만큼이나 필름 카메라만이 가진 ‘감성’이 있는 걸 어떡하나. 아이폰만 가진 감성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은근 코웃음 쳤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 감성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거다.
사진의 입자는 거칠지만, 노란 조명이 비추듯 눌어붙은 색감에 자연스럽게 가려지는 매력. 그때의 날씨와 공기, 햇빛의 모양새가 꽤 그럴듯하게 어우러지는 마법. 결국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필름 카메라가 충실히 수행하는 이토록 아름다운 ‘추억보정’이 왠지 더 끌리는 건 아닐까.

거기다 필름 카메라만이 주는 또 다른 특별함도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후지 카메라의 필름 한 롤은 36컷이다. 하루에 100장도 넘게 사진을 찍는 시대에 36장이라니. 이렇게 정해진 컷수가 있기에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어떤 피사체 혹은 풍경을, 어떤 구도에서 어떻게 담을 것인지 생각을 게을리하지 못한다. 일련의 포트폴리오처럼, 나중에 사진을 스캔해 봤을 때 거기에는 한 컷의 낭비도 없이 예쁜 사진들만 있어야 하니까.
사진을 찍을 때마다 마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마코토의 팔에 새겨진 타임리프 횟수가 하나씩 줄어들 때의 아쉬움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이나 아까운 기분이 든다.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은 잘 못 찍으면 지워버리면 그만. 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실수를 돌이킬 수 없다. 피사체에 더 오래 머무는 시선은 당연하다. 더 천천히 초점을 맞추고, 흔들리지 않도록 무겁게, 신중히 셔터를 눌러야 한다.

그래선지 필름 카메라로 누군가 나의 사진을 찍어 줄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기분을 느낀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는 오로지 한곳에 집중해야 하니까. 잠시 시간이 멎는 듯한 순간과, 그런 느린 순간에 머무르는 게 좋다.
얼마 전 연말에 1년간 보관해 왔던 필름 두 롤을 스캔했는데, 사진 속의 내가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거의 모든 사진에서 다. 활짝. 아까워서 많아야 한 번에 두 장 정도밖에 안 찍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 사진을 찍는 찰나에 가장 예뻐 보이고 싶어 일관되게 같은 선택을 한 게 약간의 웃음 포인트다.
평소에는 웃는 게 제일 예쁘다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리는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의 카메라’ 앞에서는 결국 믿어보기로 했던 것 같다.


필름 카메라의 감성과 그만의 느린 속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이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필름 카메라만이 가진 시간의 속성이 있다.
바깥의 시간은 늘 그렇듯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지만, 적어도 카메라 속 사진들은 저만의 속도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라도 갖고 싶은 여유로움. 그렇게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맡아보고 싶은 옛날의 공기가 필름 카메라를 찾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언제부터 이렇게 ‘옛 것이 좋아’ 젊은이가 되어 버린건지. 시대를 역행하는 이 필름 카메라 사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사실 더 선명하고 좋은 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최신 카메라가 새로 나올 때마다 오히려 더 사랑이 깊어질 것도 같다.
귀찮은. 하지만 예쁜. 그래도 조금은 예민한. 그래서 소중한 필름 카메라의 알 수 없는 매력.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모두 필름 카메라 하나쯤은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다. 필름 값 너무 비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