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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졸업영화제에 갔다. 내가 졸업한 지가 벌써 일 년이 지났다니, 또 거의 한 해가 흘렀다. 졸업 뒤엔 어떤 삶이 기다릴까 기대도 걱정도 했었는데,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시 또 어느 평범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후배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한 구절이 있다. 선생님은 캠코더로 세상을 기록을 하고 있었고 지켜보던 어린아이는 선생님이 왜 찍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그러자 "선생님은 혼자 남겨질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세상에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영화였고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아 계속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나도 평소에 기록을 좋아한다. 대개 매일 꿈을 꿔 꿈 일기도 쓴 적이 있고 브이로그도 찍어 올리고 일기도 쓰고 그날의 감정을 적은 에세이나 여러 기록들을 한 아름 품고 산다. 그냥 좋아해서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까지 닿지 못한 생각이 한 문장으로 인해 정리가 됐다. 떠나가는 시간, 사람, 감정, 사랑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 시간을 선물 상자의 작은 리본처럼 묶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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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는 것은 보통 애정이기에, 아스팔트에 꿋꿋하게 피어있는 민들레와 퍼지는 홀씨 따뜻한 햇살 향이 나는 풍경, 언젠가 과거가 될 시간, 우연한 다정함,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웃음소리만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우정, 달고 쓰고 시큼한 사랑. 그런 것들을 담을 수 있었던 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찍고 쓰고 담아 둔 것 같다. 요즘 가장 그리운 감정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배가 아플 정도로 웃던 웃음소리들이 기억이 난다. 찰나의 순간이라 내 모습을 담은 무언가는 없지만, 기억도 기록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짙은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은 감정과 가장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잔상들이 마음을 시큰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울렁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그냥 그 생각과 느낌이 일으키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올 때도 있다.

 

최근 내 오래된 고민이 다시 내 머리를 어지럽힌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시도하기를 주저했고, 오래도록 고민에 대한 해답은 찾지도 못한 채 기록만 쌓아갔다.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이 너무 하고 싶었다. 나의 것을 만들어내고 하자는 마음이 울렁거려 나올 것 같이 넘실댔다. 머릿속엔 아이디어와 하고 싶은 것들이 넘쳐났다. 근데 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불안하게 헤매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보단 하던 걸 하는 게 더 안정적이었으니까.

 

최근 회사에서 친해진지 얼마 안 된 사원님이 퇴사를 하기 전 갑자기 떠나면 안 될 것 같아 내게 소식을 말해줬는데, 그러다 해준 여러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하고 싶은 업무가 아니라 다시 꿈에 도전을 하신다고 했는데, 결코 지금 시간을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헤맸던 길도 모두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앞으로 점점 더 힘든 시대가 올 수도 있지만 젊음을 믿고 끝까지 살아남아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대화의 온도가 좋아서 나는 다시 나의 기록에 이 말을 잘라 붙였다. 나는 헤맸을 때의 불안함과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를, 시작하지도 않고 반복했다. 넘어질까 풀릴까 두려워 계속 다시 묶던 신발 끈의 매듭처럼,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100미터 달리기를 시작도 못한 채 출발 선에 앉아 묶기만을 했다. 더 안정을 바라며, 좀 더 준비를 해보자 생각만 하며 시간은 공기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함에 근질거리고 고민하던 순간도 다 과정이고 헤맨 땅이겠지, 그러니 이젠 나를 믿고 뛰어봐야겠다. 넘어지더라도 그건 내가 준비를 못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과정 중 예상치 못한 한순간일 뿐이니, 그리고 시간은 또 공기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를 테니, 젊음을 믿고 뛰어야겠다.

 

내가 말하는 젊음은 내가 20대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의 현재가 가장 젊을 때라 그렇게 말한 거니. 모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꼭 도전해 보면 좋겠다. 밑져야 본전이지 뭐라도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뭐라도 남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하고 기록하고 도전하는 열정이 마음에 여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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