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poster.jpg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 수많은 예술 형식으로 재탄생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야기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이 1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정적이지 않은, 역동적인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이야기에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하며 한전아트센터로 향했다.


 


400년 된 이야기가 왜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가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1년 전 회차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프랑스 뮤지컬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후 유럽 전역에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삽입곡 '사랑한다는 것(Aimer)'과 '세상의 왕들(Les Rois du Monde)'은 같은 해 프랑스 음악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공연을 넘어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한국에서는 2009년 공연 당시 10만여 명이 공연장을 찾았던 명작으로, 이번이 17년 만의 재연이다.

 

원작을 쓴 셰익스피어는 사실 처음부터 조연의 힘을 알았던 작가다. 셰익스피어는 조연의 개성을 부각시키고 부수적인 플롯을 추가하여 극적 구성을 극대화했다. 이 프랑스 뮤지컬은 그 정신을 충실히 이어받아, 주연뿐 아니라 극 전체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앙상블의 힘까지 함께 무대에 올렸다.


 


현대적 재해석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점 중 하나는 여성 인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두 가문을 소개하는 넘버 장면에서부터 확실히 느껴졌다. 보통은 가문의 수장인 아버지가 이야기를 이끄는 구조가 대부분이지만, 이 무대에서는 레이디 캐플릿과 레이디 몬테규, 두 가문의 어머니가 주도적으로 앞에 나섰다. 가문의 갈등을, 그 증오의 서사를 선언하는 이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라는 점은 작지만 선명한 메세지를 담고 있었다.


줄리엣이 먼저 청혼을 한다는 설정도 시선을 붙잡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더 이상 사랑에 수동적이지 않고, 남성들은 과거와 달리 섬세하고 부드러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 감각이 이 무대 위에서도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보통의 작품에서는 한 성별에게 목소리의 비중이 쏠렸다면, 이 공연은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그 비중을 기꺼이 나눈다.


 


모두가 주인공인 무대


 

로메오와 줄리엣2.jpeg

 

 

이 공연의 또 다른 미덕은 극의 무게가 특정 인물에 쏠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연이 무대에 없어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지루할 틈 없이 계속 흘러갔다. 조연과 앙상블이 극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조연에 힘을 실은 셰익스피어의 의도가 이 작품에 잘 반영된 것이다.


무대에서는 6인의 전문 무용수와 24명의 앙상블이 참여해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화려한 군무와 웅장한 무대를 선보였다. 이들은 주연을 빛나게 하는 배경이 아니었다. 각자의 순간에 각자의 빛을 받으며, 관객의 시선이 무대 전체를 고르게 누볐다. 남녀노소, 주연과 조연, 앙상블 모두가 동등하게 조명을 받는 공평한 무대. 그 공평함이 극을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로미오 역의 우빈은 청량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음색으로 사랑에 빠진 청년의 순수함을 그려냈다. 줄리엣 역의 송은혜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역을 맡았던 내공답게, 섬세한 감정 표현과 탄탄한 성악적 기량으로 줄리엣의 결단과 순수함을 함께 담아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순간, 무대 위에 사랑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러 사다리를 타고 오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였다. 상징이 아닌 실제 물리적 장치로 구현된 이 장면은, 목숨을 걸고 담을 넘는 청춘의 사랑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느끼게 해줬다.


 


눈 앞에 걸어온 죽음


 

이 프랑스 뮤지컬이 여타 각색 버전과 가장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은 '죽음'이 무대 위의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죽음 등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죽음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머물지 않고, 실체를 가진 존재로 두 연인의 주변을 맴돈다. 결말로 향할수록 그 존재감이 커지는 구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예고이자,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을 조이게 만드는 장치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죽음으로 영원한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일까. 나는 목숨을 내어줄 정도의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이 오래된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게 이 작품이 400년이 지나도 무대에 오르는 이유일 것이다.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은 무대


 

물결 같은 춤선이 인상적인 현대무용이 가미되었고, 색을 활용한 조명 대조도 분명했다. 두 색깔이 충돌하고 뒤섞이는 장면들에서 가문의 갈등과 두 연인의 사랑이 시각적으로 한눈에 읽혔다.


안무는 독보적이고 완성도 높은 구성과 해석력을 가진 정소연 안무가가 맡았다. 아크로바틱과 현대무용이 결합된 역동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보기 좋은 수준을 훌쩍 넘었다. 두 가문의 처절한 갈등과 청춘의 뜨거운 열망이 몸으로 번역되는 것을 보는 경험은, 뮤지컬이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이렇게 살아있는 현대적인 에너지로, 대중성을 놓치지 않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 질문을 남기는 뮤지컬<로미오와 줄리엣>을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문화예술 애호가입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