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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햇살과 바람이 되어 너에게 건네는 다정한 온기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 [공연]

차가운 현실을 버텨내게 하는 세상의 가장 다정한 손길을 기억해.

by 이유빈 에디터
2026.10.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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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우연히 보고 인상 깊게 다가왔던 한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늙은이는 젊어봤지만, 젊은이는 늙어본 적이 없다는 것’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서 나온 할머니가 했던 말 같은데, 그 말 뒤에 할머니는 “그러니까 젊어도 본 우리가 젊은이들을 이해해야지!”라고 덧붙이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는 자신의 나이보다 더 높은 나이의 삶을 아직 살아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신기한 것은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이후론 새롭고도 놀라운 발견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말인 즉슨, 나와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언정 내가 아닌 타인과의 만남은 사실 분절적인 시간 더 짧게는 특정 순간의 그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물며 가까운 친구나 가족도 그러한데, 지하철에서 아주 잠깐 스쳐가는 상대방은 어떠하겠는가?


      내가 아닌 남을 볼 때 우리는 보통 내가 그 사람을 마주친 그 현재 순간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미래 모습은 당연할뿐더러, 저 사람에게도 지금 나이대의 모습이 아닌 시절의 모습도 있을 거라고 상상해보는 일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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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시리게 다가왔던 부분은, 같은 행동도 어린 아이가 하면 귀엽고 천진난만하다고 이쁨을 받지만 노인이 그 행동을 한다면 그 반대라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도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는 같은 행동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애정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과 눈치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물론 살아온 날이 절대적으로 차이가 나는 두 존재의 동일한 행위에 대해 동일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들이 치매 환자를 오랜 시간 동안 간병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우리는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가족들은 나를 키워주신 분이니 마찬가지로 돌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수행해야 하는 각자의 역할과 자신을 둘러싼 경제적인 현실을 떠올리면 버겁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렇기에 이 뮤지컬은 치매 환자를 응당 당연히 보살펴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가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현실과 조건 속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의 현실과 조건을 직면함으로써 겪는 어려움과 그로 인한 갈등을 은폐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을 은폐할수록 오히려 그 균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극은 너무 당연해서 생각도 하지 않던 사실을 떠올리고 인지하는 순간 그것은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이지는 않는다는 것과, 그로부터 상대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길이 열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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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살 생일을 맞은 춘자 씨가 자신의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초를 끄며 소원을 빌려고 했으나 떠올려지지 않아 당황한 춘자 씨는 정신줄을 놓고 거리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방황하는 그녀에게 나타난 영혼의 물고기가 다가온다. 춘자 씨는 물고기가 헤엄치면서 반짝이는 은빛 비늘과 은빛 물결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은빛나라’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춘자 씨가 소원을 빌자 물고기는 그녀가 말한 ‘은빛나라’에 데려다 주는데, 그곳엔 세상을 떠난 그녀의 가족들이 있었다. 거기엔 먼저 떠난 그녀의 남편, 그녀의 엄마, 키우던 강아지 누렁이,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 아이가 있다. 그들을 보자 춘자 씨는 반가우면서도 보고 싶었던 마음에 아이처럼 운다. 춘자 씨는 먼저 떠난 남편 없이 홀로 두 형제를 키웠고,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집을 하며 가정을 지켰다.

       

      하지만 춘자 씨도 누군가의 딸이었으니, 현실에서 엄마로서 두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버텨온 삶의 무게를 자신의 엄마 앞에서야 겨우 꺼내본다. 또한 자신을 기다린 누렁이와 그리고 평생 가슴에 품은 막내딸을 보며 춘자 씨는 다시 누군가의 엄마로서 그녀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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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춘자 씨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맛있는 냄새가 다 우리라고 생각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환한 보름달 얘기도 했던 것 같다. 한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키워진 아이가 사는 게 힘들 때면 이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 아이를 돌본다는 말이 아닌가. 자연에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다정한 온기와 손길은 그렇게 그 사람을 또 살아가게끔 한다.


      늙어보지 못한 젊은이와, 이미 젊어본 늙은이가 서로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때 비로소 깊은 이해의 길이 열린다. 타인의 현재 모습 넘어에 존재하는 삶의 궤적을 떠올려보는 일,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겨둔 온기를 믿는 일.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가 우리에게 건넨 것은, 차가운 현실을 버텨내게 하는 세상의 가장 다정한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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