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인생 가장 애매한 지점에 나는 서 있다

취준생의 일기
글 입력 2024.04.2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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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취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아주 멀게 느껴졌다.

 

‘요즘은 취업난이다’, ‘스펙을 미친 듯이 쌓아야 한다’, 이런 말을 들어도 딱히 피부에 와닿는 조언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축제에 참여하고, 내가 직접 짠 시간표로 수업을 듣는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가 더 즐거운 시기였다.


막상 스펙을 적극적으로 쌓아야 할 시기에는 팬데믹이 방해물로 다가왔다. 웬만한 바깥 활동과 오프라인 사교 활동이 다 중단된 시기. 충분히 자란 어른들도 팬데믹에 적응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 막 성인으로서 발을 내디딘 나에게는 더욱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화려하게 스펙을 쌓기는커녕 공백과 방황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긴 방황을 끝내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졸업이었다. ‘대학생’이라는 소속도 사라지고, 그야말로 무(無)의 상태가 되었다. 거의 한평생을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온 나에게 소속이 사라졌다는 것은 꽤 큰 공허함을 안겨주었다. 아니,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부유감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 부유감을 해소하고 싶어 졸업하자마자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사실 아트인사이트에서 이미 익숙하게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자기소개서 작성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포트폴리오와 경력이었다. 나의 전공과 다른 분야로 취직하려다 보니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고, 그나마 의미 있는 경력은 고작 단기로 진행한 공연 스탭 아르바이트뿐이었다.


기본적으로 50명이 넘어가는 지원자들 속에서 회사의 눈에 들 한 명이 되기에 나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뚜렷하게 전해지지도 않는 불합격 소식이 이어지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왜 떨어졌을까’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었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은 나를 더욱 자괴감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나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오랜만에 학원을 등록해서 수업을 듣고, 운전을 연습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하였다. 매일 몇 시간씩을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목덜미가 딱딱하게 뭉쳐갔지만, 그 목덜미를 주무르면서도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그렇게 비어있던 포트폴리오를 점점 화려하게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취준생이다. 매일 규칙적인 삶을 살면서도, 이 지루한 삶에 이따금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취준생이다. 분명 나의 삶은 이상적이고, 풍부하고, 행복했지만, 내가 마땅한 직업과 소속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 하나로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취업 준비는 다른 지원자들과의 싸움이 아니다. 오직 나와의 고독한 싸움이다. 이 준비 기간이 ‘공백기’처럼 보이지 않게 꾸준히 나를 갈고 닦으면서도, 이 끔찍한 공허함과 부유감을 끊임없이 물리쳐야 한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계속 되뇌어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길 끝에 나의 노력을 보상받을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예상한 방향이든, 혹은 예상치 못한 방향이든 간에. 내 노력이 언제 빛을 발할지는 몰라도, 빛을 발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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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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