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 사람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4.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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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면 겪은 듯 생생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펼쳐진다. 마당과 평상이 있는 파란 지붕의 시골집과 나를 반기는 커다란 누렁개. 언제 돌아가도 나를 맞아줄 사람과 공간이 늘 그 자리에 그림처럼 남아있는 곳.


그렇지만 모두의 고향이 그런 모습일 리 없다. 논밭이 펼쳐진 시골이 아니라 차가 쌩쌩 달리는 도시 한 가운데, 높이 올라간 아파트의 한 켠이 고향인 사람들이 있다. 가마솥에 쪄먹던 옥수수보다는 아파트 상가에서 떡볶이를 사 먹던 기억이 애틋한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게 너무나도 빨리 변화하는 서울, 그곳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에게도 그리운 고향은 있다.


고향으로써의 서울을 고찰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인터뷰이는 필자의 어머니, 이모, 삼촌이다.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져버린 둔촌주공아파트에서의 유년시절 기억을 가슴에 품고, 한 사람은 서울을 떠나, 한 사람은 서울에 남아, 그리고 한 사람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같고도 다른 삼남매의 이야기, 그 속에 녹아 있는 서울 토박이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삼남매, 둔촌동 이야기 


 

 

1. 서울을 떠난 엄마의 이야기

 

나는 1996년에 결혼을 하고 양재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어. 내 집은 아니었고, 대출을 낀 전세였어. 형편이 안 좋았지. 전셋집이니 2년 있다가 이사갈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당시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그 동네에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어. 그러던 와중에, 네 아빠가 회사 사람들로부터 수원 근처에 영통이라는 신도시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온거야. 회사 근처에 큰 도시가 생기는데 깨끗하고 괜찮다더라고. 그리로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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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 싫다고 했어. 수원이 웬 말이야. 옛날에 아빠 친구 중에 수원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촌사람 취급 했었게. “어휴, 수원이란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 이러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만 툭툭,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게 싫었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똥같은 자존심이었나 싶지만, 젊을 땐 그랬어.

 

그렇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어. 그 때 내가 가진 1억으로는 서울에서 전셋집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영통에서는 20평대 아파트에서, 번듯한 내 집을 가지고 살 수 있었지. 그렇게 내려가게 된거야. 처음엔 조금만 살다가 올라오려 고 했어. 그런데 할머니도 날 도와주러 경기도로 내려오시고, 직장도 경기도에서 잡게 되면서 어쩌다보니 서울을 영영 떠나게 된거야.

 

물론 지금은 옛날처럼 꼭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서는 먼 시골에서 사는 걸 상상해본 적도 있어. 그렇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곳에 살아야 안정을 찾을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곳에서 땅을 밟고 살고 싶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는데, 이젠 높은 곳에서 사는 게 힘들게 느껴져. 앞으로는 낮은 곳에서 살고 싶어.

 

그래도, 나는 아직도 서울이 그리워. 이젠 서울에서 산 세월만큼이나 경기도에서도 오래 살았는데도, 이상하게 내가 경기도 사람이라는 생각은 잘 안 들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불만은 없는데, 그래도 서울이 내 집이고 지금 사는 곳은 잠시 머무르는 곳처럼 느껴져. 서울을 생각하면 아련해. 서울은 내 고향이야. 부모같은 곳이고, 가고 싶은 곳이고. 나한테 서울은 그래.

 

 

2. 서울에 남은 이모의 이야기

 

나는 결혼하고 송파구 장미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송파에 살고 있어. 우리 삼남매 중에서는 나만 서울에 계속 남아있는 사람이지.

 

서울에 살아도 서울 토박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어도 기본적인 마인드가 다른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일찍 고향을 떠나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강하게 키워. 서울 토박이들은 대학 졸업할 때까지 부모 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자기 자식들도 싸고 돌고. 내가 본 서울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 그래서 서울 사람들은 큰 변화가 있을 수가 없어. 그냥 그냥 사는 거야, 만족을 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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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단지는 벌써 20년이 넘었어. 1988년에 이 아파트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은 벌써 여든이 넘었지. 나는 그 남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답답해. 난 변화를 원하는데, 그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해. 이 동네를 개발시키고 싶어하지 않아. 그냥 여기서 죽고 싶어 하지. 그 밑의 세대인 우리는 그런게 너무 갑갑해.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나는 너무 신도시에 살아보고 싶어. 물이 콸콸 나오고, 집 앞에 나가면 차가 아니라 공원이 있는, 그런 계획된 도시. 우리 동네는 아직도 80년대야. 집 앞에 나가면 가락 시장이야. 없어진다더니 없어지지도 않고,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서울은 항상 복잡해. 한적한 데 가서 살고 싶어.

  

게다가 서울은 모든 게 너무 비싸. 서울은 소비 도시야, 정말 어마무시해. 서울 변두리의 재래 시장을 제외하고는, 단가가 완전히 달라. 얼마 전에 군산 여행을 다녀왔는데, 서울에서는 이 만원 하는 빙수를 군산에서는 팔 천원이면 먹을 수 있어. 서울은 생활하는 것 자체가 너무 비싸. 먹고 사는 것만 본다면, 사실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퀄리티 있게 살 수 있을거야.

 

그치만 서울에서는 모든 걸 다 누릴 수 있지. 문화며, 여가 생활이며, 요즘은 지방에도 많이 보급되어 있다곤 하지만 아직 서울과는 차이가 많이 나. 나는 마음이 답답하면 서울 시내를 무작정 걸어다니는데, 걷다보면 이것저것 구경할 게 많아서 금방 기분이 나아져. 그래서 서울을 떠나고 싶다가도,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생각하면 또 서울이 좋아. 그런 두 가지 감정이 항상 공존해. 서울은 나한테 애증의 도시지.

 

나는 늙어서 제주도에 가서 살고 싶어. 그치만 현실로 옮기긴 힘들겠지. 서울에서라면 남산에서 살고 싶어. 내가 만난 남산은 사계절이 너무 아름답거든. 자연에서 가까이 살고 싶은 게 내 의지지.

 

나한테 서울은 팍팍한 곳이야. 내 시간도, 내 삶도 없이, 초단위로 시간을 나눠쓰는 각박한 시간들이었어. 그 사이에 깨알같은 재미들은 있지만, 재미가 안정을 주진 않지. 나는 너무 힘들어. 이제는 편한 데 가서 살래.

 

 

3. 서울로 돌아온 삼촌의 이야기

 

나는 20대 중반에 석사를 마치고 용인에서 첫 직장을 다녔어.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의 절반을 거의 경기도에서 보냈지. 그냥 경기도도 아니고, 용인 바닥. 그 때 용인은 진짜 시골이었거든. 어쩌다 친구들이라도 만나려고 퇴근하고 버스 타면 2시간도 더 걸렸어. 서울에 도착하면 밤 9시인거지. 그땐 지금보다 교통이 더 안좋았거든. 그게 진짜, 너무 비참했어.

 

용인에서 적응하고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아마 정착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거야. 결혼하고, 가정도 꾸리고. 근데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갔어. 미국에 가기로 한 건 내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론 꽤 오래 떠도는 생활 을 하게 됐지. 17년을 그렇게 살았어. 여러 경험을 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

 

미국에 건너가 생활하면서 미국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어. 내가 미국에서 사는 걸 싫어 했던 이유는 언어 때문이야. 일상생활은 가능해도 한국말만큼은 못하니까, 너무 답답했어. 말을 잘 못하니까 거기에서 이방인이 되는 건 당연했지.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어. 최대한 빨리 한국에서 직장을 잡아야 했는데, 그 때 마침 울산에 자리가 난 거야. 내가 살던 뉴욕시는 우리나라보다 커. 뉴욕에서 볼 때는 서울이나 울산이나 거기서 거기 같아 보였어. ‘ktx타면 2시간 밖에 안걸리는데, 그 정도 차이 별거 있겠어?’. 그렇게 울산으로 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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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야. 게다가 난 학교에서 일했잖아.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외지인들이고, 서울에서 온 사람들도 많아서 대화에도 어려움이 없었어. 그런데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서 언양읍 같은 데에 가잖아? 내가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말이라도 하면, 밥 먹던 사람들이 다 쳐다봐. ‘어디서 서울말 쓰는 사람이 왔네?’, 이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거야. 어쩔 땐 내가 그 사람들 하는 말을 못 알아듣기도 해. 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도 사투리를 쓰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잖아. 근데 그곳에 직접 가면, 진짜 못알아들어. 다른 나라 언어처럼 들려.

 

그래도 그 동네에 적응하고 살았으면 재밌게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 근데 좀 힘들었어. 울산에 살 때는 서울에서 열리는 음악회 티켓이랑 기차표를 몇 달 전부터 끊어놔도, 작은 일 하나만 생겨도 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심지어 한 번은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음악회 보고 그날 밤 12시에 다시 기차 타고 내려간 적도 있었어. 진짜 스트레스 받았지. 서울에 살지 못하니까 이런 것 하나 여유롭게 못 즐기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결국 내가 몇 년 전에 서울로 학교를 옮긴 것도,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 정착하고 싶어서야.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유이긴 하지. 직업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었어. 그런데 나한텐 그게 되게 중요했어. 심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환경,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

 

서울에 오니 좋긴 좋아. 생활은 그전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 지금 사는 옥수동은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같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음악회 보러도 자주 다녀. 영화도 자주 보고, 사람도 자주 만나고. 나는 지금 사는 동네가 정말 좋아. 나이가 들어서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살 수만 있다면 계속 거기 살고 싶어.

 

어릴 때 서울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근데 이상하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서울이든 울산이든, 기억에 남는 게 잘 없어. 그런 걸 보면 어릴 때 살던 서울이 내 기억에 가장 큰 부분이 되어있는 것 같아. 내 추억의 원천이지. 그 래서 서울은 나한테 조금은 특별한 곳인 것 같아. 대단히 멋있진 않지만, 말하자면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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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수도를 뜻하는 말이었던 ‘서울’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곧 서울의 발전이었다. 덕분에 인구 20만을 간신히 채우던 백 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오 늘날의 서울은 대도시를 넘어서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가 되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2시간이면 충분한 시대에 살면서도,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은 아직도 유용하다. 수백 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서울은 한반도 에서 가장 부유한, 가장 발전된, 가장 중요한 곳이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도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울 토박이 삼남매는 ‘고향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세 사람이 어제 일인양 생생하게 그려낸 둔촌주공아파트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위해 철거되었다. 그보다 더 어릴 때 살던 잠실 시영아파트 자리에는 이미 ‘파크리오’라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지 오래다. 삼남매가 살던 곳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서울 토박이 삼남매는 돌아갈 곳을 잃고, 그 자리에 상실감을 안고 산다.

 

토박이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더군다나 ‘서울’ 토박이라니.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에서 토박이들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울은 나의 엄마, 이모, 삼촌의 고향이다. 누군가에게 서울의 집은 그저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는 상품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생각만 해도 그립고, 시간이 걸려도 되돌아가고픈 곳이 서울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라 발맞추어 따라가기에도 벅찬 서울을 누군가의 고향으로써 되뇌고 있는 건 바보같은 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갈 곳 없이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 삼남매에게 고향으로써의 서울을 잠시나마 되돌려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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