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헌사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3.0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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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들어봤을 트뤼포 감독이 말하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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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많이 접하고 본 것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대학에 들어와서 매년 영화를 약 100편씩 챙겨보고, 밤을 새워 과제를 하고 아침에 코피를 흘리며 영화관에 갈 정도로 지독하게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항상 마음 한편에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무작정 영화 감독님의 특강을 들으러 가고, 시나리오에 관한 책을 샀지만, 초장에만 머문 지 어언 3년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막학기와 취업 준비.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나는 영상 동아리에 들어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할 거야’라며 남몰래 간직해온 내면에서 외치는 이야기를 용기 내 들어주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을 100페이지도 못 읽은 나는 무턱대고 마감 기한에 쫓겨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시놉시스를 쓰고 기획안을 발표할 때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부끄럽고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와 기획안이 좋다며 같은 팀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후 이틀 동안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불확신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의 첫 시놉시스에 대한 첫 긍정적인 평가를 해줬기 때문이다. 그제야 ‘아, 처음이더라도 도전해 봐도 괜찮구나.’ 하고 마음이 놓인 것이다. 그 후 나의 기획안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을 18명이나 만나게 되었다.

아마추어의 영화판은 가혹하다. 배우들은 페이를 많이 받지도 않고,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대학생들은 제작비를 내고 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니어 배우님을 만난 것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중년이 되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여전히 하려고 하고, 젊은 사람들보다 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그래서 그들까지 뜨겁게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쯤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빛나 보이는 것은 좋아하는 일이라는 명목 하나로 열정을 가지고 뜨겁게 일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비전공자이지만 카메라를 배우고, 음향 작업을 하고, 조명을 해보기도 하는 등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에 마음껏 뛰어들고 있는 빛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막상 경험해 보니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지만 젊은 시절에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도전하는 그들이 나중에 뒤돌아보면 분명히 빛났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 배우들과 스태프들, 약 20명을 실은 배를 목적지까지 이끌어야 하는 나는 부담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단편 영화를 먼저 찍어봤던 내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맞아. 너는 부담을 가져야 해.’

처음 도전해 봐도 괜찮지만,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책임져야 한다.

어떤 이는 촬영 현장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그냥 가 버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힘들었던 영화 촬영을 끝냈지만 촬영물을 보기가 두려워 파일을 열기까지 1년이 걸리기도 하고, 또는 영화를 다 찍고 촬영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편집 단계에서 포기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촬영을 끝내고, 편집까지 포기만 하지 말고 끝을 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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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도 시나리오를 쓰며 상상했던 장면과 실제 촬영 현장이 어긋났다.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컷. 오케이..’ 를 외치고 다음 장면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현장은 딜레이가 되었고 급하게 몇몇 컷들을 지워가며 겨우 촬영을 마쳤다. 그때 서야 촬영 현장을 어떻게든 끝까지 지키는 것이 왜 힘든 일인지, 촬영물을 열기까지 왜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몇 주 뒤, 그 판도라의 상자 같은 촬영물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마주한 것은 그 당시 정신없는 와중에 미처 인지하지 못한,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준 그리고 본인의 몫을 다 해낸 사람들이 있었다.
 
딜레이되는 시간을 조정해 주고 꼼꼼히 컷들을 체크해주는 조감독들, 묵묵히 100컷을 슬레이트 쳐주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던 연출팀, 필요한 소품 만들고 구한다고 애쓰고 해본 적 없는 분장이 걱정되어 미리 연습해 왔다는 미술팀에, 빠른 진행에도 묵묵히 장면에 맞춰 조명을 조절해 영상미를 책임져준 조명팀에, 자발적으로 공부해 와서 12시간 내내 촬영한 카메라 팀, 12시간 내내 붐마이크를 들고 식사 시간에도 배경음을 녹음하고 있던 음향팀, 장비 옮긴다고 촬영 기간동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전한 팀원들, 촬영이 끝났어도 파일 백업하느라 두 번, 세 번 파일을 확인했을 팀원들까지.. ‘도대체 이게 뭐라고.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을..’ 라는 생각이 뒤덮여 편집하다 괜스레 눈가가 뜨끈해진 것이다.

해보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 영화 만드는 일은 참 힘든 일이라고. 그래서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됐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영화의 매 프레임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애정과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구나. 머리로는 대충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 장면의 프레임마다, 얼마나 고되었을지 상상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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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드는 일은 참 어렵지만 재밌는 이유가 있다면 절대 혼자 만들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영화를 찍는 일도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팀이 필요하다. 연출, 카메라, 음향, 미술, 조명, 제작. 이 중의 한 명이라도 없다면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지만, 단 한 명이라도 빠지면 완성될 수 없는 영화의 스태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려져 있다 한들 모든 개인은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만드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인생은 영화고 우리가 살아오는 모든 순간은 영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모든 힘들고 지치는 과정들이지 않을까. 그것들이 모여서 인생이 아름다운 영화처럼 여겨지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추상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이 무의 상태에서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글로 표현되고 나아가 시각화되어 유가 되는 일.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 이 모든 과정과 그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촬영 끝내고 땀에 절어서 너덜너덜 집에 들어오자, 매번 힘들다고 하면서 왜 계속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알았다. 좋아하는 일은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힘든데도 계속해 보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20대의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호기롭게 도전하며 인생의 답을 찾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들은 후회 없이 다 해보며 이제는 미련 없이 묵묵히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는 나에게 ‘인생 별거 없지?’라고 말한다. 처음 해보는 것들을 열정적으로 했던 지나간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래도 지금 나에겐 여전히 인생은 별거다. 그러니까 앞으로 또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을 때는 대학생의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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