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시간과 기록, 여유와 설빈 - 희극 [음반]

그동안의 궤적을 돌아보며
글 입력 2023.11.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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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점차 추워져 한 해의 마무리도 다가온다.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도시를 밝히고 달력을 다시 들이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세상이 이리 분주하고 매번 한 해가 지나도 때로 감상은 그리 극적이지 않다. 특별히 다르지 않은 하루가 지날 뿐이고, 돌아올 날씨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해를 꽉 채우고 다시 시작함은 0에서 1로 돌아가며 시간을 원점으로 쓰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시간적 경계를 남기는 행위는 그동안 궤적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던 사람들에게 계기를 준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가,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는가, 흔적과 기억들이 지워지고 희미해지기 전에 시간의 의미를 다시 꺼내본다. 그리고 궤적을 돌아보면 시간에 흐름 속에서 흩어졌던 파편들이 모아지곤 한다.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의 3집 ‘희극’은 제주에서 출발한 앨범으로, 23년 1월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사계절의 감각과 애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음악이다. 시간과 풍경, 사건과 감상을 담아내며 지난날의 파편을 정성스럽게 모았다. 때로는 전달하고 싶은 말을 애써 숨겨놓기도 하고, 때로는 바라본 풍경만을 그리기도 하며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하나의 시간을 구성한다.

 

여유와 설빈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상을 노래한다. 첫 트랙 ‘숨바꼭질’은 숨어있던 누군가를 끌어내며, 사랑과 상처에 위치한 모든 사람을 모아 앞으로 나아간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품는 일종의 관용으로 사람에 대한 시선을 담았다. 이처럼 자신과 타인을 포함한 사람들에 대해 여유와 설빈은 포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반면 앨범 속 세상은 차갑다. ‘메아리’에서는 “해가 중천에 떠도 나는 아직 밤”일 정도로 차가운 세상을 서술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며 세상과 화자를 분리하려 한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 ‘희극’ 또한 “수상한 세상에서 환멸”을 느끼며 멸망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사람과 세상의 설정 속에서 여유와 설빈은 사람을 향한 포용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 주정뱅이 잉여인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불쌍한 인생에게 영웅이 되어보자고 권하며, 세상에 대한 비관을 사람에 대한 연민과 긍정으로 극복하려 시도한다.

 

여유와 설빈은 앨범에서 자연적인 시상을 이용해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너른 들판’은 들판과 하늘, 구름 등의 자연을 나열하며 전원적인 풍경을 묘사한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또한 바다, 강과 같은 풍경을 서술하며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두 곡에서 등장한 별빛과 불빛은 창작의 동기나 과정을 대변해 쓰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한 ‘하얀’과 ‘푸른’은 색채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트랙이다. ‘하얀’은 하얀색의 사물과 대상을 나열하며 순수함을 노래하며, ‘푸른’은 “푸른 푸르른 너 바라보다가”를 반복하며 깊은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노래한다.

 

여유와 설빈이 ‘희극’에서 기록한 시간 또한 많은 풍경과 여러 생각이 담겨있다. 앨범 제목 ‘희극’은 그들이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의미가 아닐까.

 

그동안의 기록은 작고 소박하거나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기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밀려난 사진을 천천히 올려다보며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나름의 의미가 있다. 세상을 통과하며 남긴 목소리와 시선은 바랜 시간을 좀 더 선명하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와 설빈의 ‘희극’처럼, 그동안의 기록을 돌아봤을 때 마주한 지난날의 어지러움과 상처들, 추억과 웃음들 모두 한데 모아 다가올 시간 속에서 조금 더 선명하길 바란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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