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앨범의 첫 트랙은 소설의 첫 문장과 같다 [음악]

글 입력 2024.02.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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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좋은 노래들을 한데 모아 둔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음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음반이라 함은 무릇 수록곡 전체가 일련의 유기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을 때 하나의 작품으로서 더욱 크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첫 트랙은 곧 소설의 첫 문장, 연극의 첫 대사와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좋은 첫 트랙은 청자들에게 흥미로운 첫인상을 부여하는 동시에, 앨범이 지니고 있는 서사와 아이덴티티를 매력적인 방식으로 예고함으로써 모두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어야만 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세 곡의 노래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아이유 ‘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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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건 지금부터야"

 

 

자신의 첫 프로듀싱 앨범 [CHAT-SHIRE]를 발매하며 ‘보컬리스트’가 아닌 ‘뮤지션’으로서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던 아이유는 이내 정규 4집 [Palette]를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에 이른다. ‘팔레트’, ‘사랑이 잘’, ‘밤편지’ 등 10개의 곡으로 구성된 [Palette]는 서정적인 가사와 유려한 멜로디, 영리한 트랙 순서 배치를 무기 삼아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귀를 훌륭히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앨범의 첫 트랙을 장식하는 노래 ‘이 지금’은 산뜻한 곡 구성을 기반으로 아이유의 매력적인 음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생기 넘치는 가사를 통해 추후 이어질 아홉 트랙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키며 훌륭한 도입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노래를 마무리 짓는 ‘더 놀라운 건 지금부터야’라는 가사는 [Palette]가 지닌 뛰어난 완성도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예고하는 한편, 추후 아이유가 뮤지션으로서 선보일 놀라운 행보 또한 적절히 대변하고 있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트랙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가리온 ‘다만, 가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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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봐 이 열정은 태양을 물어 삼키고

원래 자기 자리로 가리온”

 

 

가리온의 정규 2집은 한국 힙합계의 오랜 숙원이자 시름이었다. 다년간의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집대성한 결과물과 같았던 정규 1집 [Garion]이 한국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원한 클래식으로 평가받으며 가리온의 주가를 한껏 드높였던 한편, 프로듀서 JU의 갑작스러운 팀 탈퇴와 이후 이어진 기나긴 공백기는 가리온의 다음 앨범에 대한 팬들의 의구심을 키우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집 이후 6년 만에 발매된 가리온의 정규 2집 [Garion 2]는 국내외 유수의 프로듀서들을 기용함으로써 JU의 공백을 훌륭히 메운 것은 물론, 17개 트랙으로 구성된 장대한 서사를 통해 평단과 리스너들 모두에게 뛰어난 만족감을 선사하며 기존 힙합 팬들의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트 위에서 탄탄한 랩핑을 선보이며 두 MC가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리는 앨범의 첫 트랙 ‘다만, 가리온’을 듣는 순간, 아마 대부분의 리스너들은 그간 가리온을 향했던 모든 우려가 그저 기우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앨범에는 힙합 팬들의 의구심에 맞서고자 하는 알량한 자기변호도, 기나긴 공백기를 해명하기 위한 옹색한 변명도 없다. 다만, 가리온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조용필 ‘Bou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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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린 벌써 알고 있어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랑의 꿈”

 

 

2013년, 가왕 조용필의 귀환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정규 19집 [Hello]의 발매에 앞서 선공개되었던 앨범의 첫 트랙 ‘Bounce’는 순식간에 다수의 국내 음원 차트를 점령하며 가왕의 건재함을 널리 알리는 선봉장과도 같은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Bounce’는 당시 대중 가요가 보여줄 수 있었던 트렌드의 첨단을 달리며 조용필의 신보가 ‘원로 가수치고는’ 참신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뮤지션의 작업물과 견주어 보아도 충분히 세련되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파하였다. 10년이라는 기나긴 공백기를 깨고 나온 가왕의 화려한 복귀를 알리기에 가장 걸맞은 트랙이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2022년부터 ‘Road to 20’이라는 이름으로 차후 발매될 정규 20집의 수록곡들을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는 조용필의 최근 행보 또한 주목할 만하다. ‘Bounce’가 공개될 당시처럼 커다란 대중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으나, ‘찰나’나 ‘Feeling Of You’와 같은 모던 록 장르 기반의 선공개 트랙들이 선사하는 감각적 흥취는 ‘뮤지션 조용필’의 진화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10여 년 전 [Hello]를 통해 온 국민의 귀를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에는 과연 어떠한 앨범으로 우리의 곁에 돌아올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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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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