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과 예술의 교집합, 빛과 색 - 크루즈 디에즈: RGB, 세기의 컬러들

글 입력 2024.06.1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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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색 자체만 인식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사과가 빨갛다. 라든가,

바다 그림이 파랗다. 라든가.


입체의 물체이든, 평면의 그림이든 색은 어떤 것을 칠하는 데 사용된다. 오로지 그런 용도로의 역할을 잘 해낼 때만 비로소 색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빨간색과 초록색의 대비를 본다면, 보색을 사용해 인물 간의 갈등을 강조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빨간색과 초록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다.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는 형태에서 색을 해방해 색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품들을 창조해 왔다. 그는 색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RGB, 세기의 컬러들 전시를 통해 색 자체에 집중해 보고 색에 대한 경험을 확장하고자 한다.

 

입구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새어 나온다.

 

 

DIG_2019_IND_KR_Seoul_Crita_Gallery_Color_In_Space_424.jpg

Chromosaturation, Paris 1965/2019

Photo: Crita Gallery  

© Carlos Cruz-Diez / Bridgeman Images 2024

 

 

오로지 빛과 색만 존재하는 공간, 색 포화에는 원초적인 RGB만 존재한다.

 

빛의 삼원색인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으로 가득 찬 이곳을 가볍게 둘러본다. 처음 봤던 벽면의 색상이 달라졌다. 세 가지 색을 혼합하면 10,000가지 색을 만들 수 있다는 기초적인 원리로 삼원색이 서로 섞이며 스펙트럼을 만들어낸 것이다.


빨간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오래 멈춰 본다. 빨간색은 서서히 분홍색이 되고 이윽고 흰색이 된다. 공간의 조명이 변한 것이 아니다. 빨간색에 과도하게 노출되자, 원색에 익숙하지 않은 망막이 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망막이 적응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속도가 다르다. 흰색이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나를 기다렸던 친구는 ‘OO이는 거기 살아’라는 말을 남기며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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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B. The Colors of the Century"

North Bund Waterfront - Rainbow Bridge, Shanghai, China, 2023 

Photo: Atelier Cruz-Diez Paris  

© Carlos Cruz-Diez / Bridgeman Images 2024

 

 

그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평면 작품 위에 색을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도형, 선, 색상으로 구성된 기하학적인 작품은 관람자의 다양한 해석을 유도한다. 이처럼 작품을 보는 위치, 각도에 따라 보이는 색상이 다르다. 그렇기에 한 작품, 한 작품 유심히 보게 된다. 가까이서 어떤 색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본다. 그리고 한 발짝씩 뒤로 서서히 물러난다. 분명 노란색이 없었는데, 색이 겹치며 노란색이 나타난다. 색을 섞지 않고 두 색이 맞닿는 지점에서 새로운 색이 나타난다는 원리를 사용한 것이다.


크루즈 디에즈의 모든 작품은 우연성없이 철저히 의도해 만든 것이다. 눈이 색을 인지하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고 빛이 반사되는 기울기를 계산했다. 관람자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면 작품은 일렁이고, 색이 변화한다. 그렇기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작품을 보는지에 따라 작품도 이에 응한다. 봐주는 만큼 보여주도록 설계된 셈이다.

 

이제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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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 Paris 1974/2018

Photo: Atelier Cruz-Diez Paris  

© Carlos Cruz-Diez / Bridgeman Images 2024

 

 

색 간섭 환경에서는 색이 변화하는 수직선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구, 육면체, 평면 그리고 가만히 서서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은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이 된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선과 색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부여한다. 벽면에 드리운 나의 그림자를 보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착시까지 겪을 수 있다.


이후, 온전한 몰입으로 색채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을 축하하며 직접 해볼 기회가 주어진다. 색채 경험 프로그램에서는 개발된 소프트웨어로 세 가지 도형과 색을 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색에 대한 경험을 넘어서 예술 작품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보통은 아무리 작품을 자세히 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설명이 없다면 무엇을 봐야 할지 막막한 전시 초보자인 나는 짤막한 제목을 읽곤 휙 지나친다. 평소 이런 방식으로 RGB, 세기의 컬러들을 보았다면 5분도 채 안 되어서 빠르게 전시장 끝에 도달했으리라.


이 전시의 작품들은 텍스트로 된 설명 대신 직접 체험하는 것으로 설명해 준다. 이리 보고 저리 보면 달라지는 그 경험을 위해 여러 차례 둘러본다.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며 기다려 본다. 아주 가까이서, 아주 자세히 관찰하다가 거리를 두고 뭉뚱그려 본다. 그렇게 작품을 뜯어보며 진정으로 작품 하나하나 곱씹는다.


RGB. 여러 색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삼원색으로부터 여러 작품을 관람하는 기본적인 태도까지 터득하는 시간이었다. 전시 관람을 앞둔 사람이 있다면 작품을 다채롭게 향유하며 평소보다 오래 머물러 보길 바라본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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