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베이스 캠프는 어디인가 - 영화 '리턴 투 서울'

당장 서울로 돌아가요!
글 입력 2023.05.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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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역 프레디는 누구보다 경계가 불명확한 사람이다. 러닝타임 내내 그녀는 사회가 정해놓은 수 많은 경계의 타원 위를 이리저리 휩쓸려 가며 어쩌면 그녀가 원하지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시작되어야 했던 항해를 이어간다.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프레디, 그녀의 손에 계획했던 일본행 티켓 대신 우연 같은 운명처럼 주어진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 그 시작점이었다. 


프레디의 외양은 누구보다 한국스럽지만 초반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설게 다가온다. 가게 안 모르는 일행에게 건배를 제안하고 자연스럽게 합석까지 이끌어 내는가하면, 길을 걷다 우산을 부딪힌 행인에게 그저 지긋이 미소를 지어보이고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배려하는 일 보다 그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를 택한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 같은 프레디의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체득된 타인을 대하는 예의와 자세,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지켜야 했던 관행과 틀을 모두 벗어 던져 버린 듯한 프레디의 걱정 한 점 없어 보이는 모습은 어쩐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한다. 저렇게 자유롭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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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레디에 대한 나의 초반 인상은 아주 얕은 식견으로부터 비롯된 신기루에 불과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프레디는 자유로워도 너무나 자유로웠다. 그러니까, 그녀를 제어할 그 어떤 경계와 기준선, 혹은 그녀의 존재를 품어낼 집합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찰나의 순간이며 매순간 어디에서든 그녀는 여행자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 프레디는 극 초반 자신에게 통역을 비롯한 여러가지 도움을 주던 테나의 권유로 자신에게 연결된 희미한 뿌리를 찾아 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어릴적 모습이 담긴 사진 달랑 한 장만 들고 방문한 입양센터에서 프레디는 생부의 거처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러나 기적처럼 만난 생부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프레디에게 너무나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친 손길로 쓰다듬는 할머니도, 술을 진탕마시고 푸념과 같은 문자 세례를 쏟아내는 아버지도, 자신을 어색해하는 동생들도 그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프레디에게는 부담을 넘어선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여태껏 프레디가 살아온 삶의 행태를 부정하며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아버지, 자신들이 살아온 추억 보따리를풀어 놓으며 이 곳의 일원이 되기 위해 이제서라도 우리 가족에게 맞는 모양새의 퍼즐 조각이 되어 달라는 바람을 내비치는 친가로부터 진절 머리를 앓은 프레디는 결국 그들의 거처인 군산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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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에게 언젠가 프레디가 외쳤던 '당장 서울로 돌아가요!(리턴 투 서울)'라는 대사가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녀에게 어쩌면 서울은 자신의 근원지이지만 낯선 한국으로의 항해에서 베이스 캠프이지 않았을까. 사실상 자신과 어떠한 연고도 없는 서울은 아이러니하게도 생부의 친가가 있는 군산보다, 그녀를 길러준 부모님이 있는 프랑스보다 더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내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참 불쌍한 아이구나' 한 마디를 남기고 테나는 프레디를 떠났다. 처음으로 감정적 교류를 쌓은 한국인이자 자신이 한국에서 누구보다 의지했던 테나를 잃은 프레디의 낯빛에는 극 중 그녀의 얼굴에서 처음 찾아 볼 수 있었던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프레디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해 줄 것만 같았던 테나는 프레디가 생각하기에 아주 사소했던 그녀의 자그마한 행실을 계기로멀어져 버렸다. 


테나 뿐 만이 아니다. 생부를 만난 첫 한국행 이후, 프레디는 주기적으로 한국에 돌아왔고 그때마다 그녀를 돕거나 함께하는 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잠시 프레디 곁을 머물 뿐 어떠한 연유로든 그녀의 다음 한국행까지 함께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프레디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자신을 증명할 수 없기에 그녀를 완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타인도 없다. 


프레디가 그녀의 곁을 지키던 누군가의 타투 도안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던 장면이 새삼 그녀의 다음 파트너에게 했던 '언제든지 너를 지워버릴 수 있어'라는 대사와 함께 내 머릿속에 오버랩된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언제든 자신과 함께하는 무언가, 그러니까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해명해주는 무언가를 새기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언제든지 지워내 버릴수 있는 타투 같은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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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밤을 보낸 이후에도 언제나 혼자 아침을 맞는다. 작은 방 안에서 그녀가 아버지의 메일을 열어보는 장면은 아직도 인상 깊다. 자신과 자매라고 하던 두 동생과 함께 낚시를 간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담긴 사진을 열어 본 프레디는 아주 우스운 영상을 본 사람 처럼 미친듯이 공허한 웃음을 터트린다. 


그 안에는 평생이 가도 앞으로 찍힐 그들의 사진 속에 자신이 존재할 일은 없다는 것에 대한 자조적인 심정, 자신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애정과 죄책감을 표출하는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 결국은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 녹아 들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프레디의 생모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의문을 낳을 정도로 강했는데, 어쩌면 그녀에게 생모는 마지막 동아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처럼 친가를 견디기 힘들어 떠났다는 어딘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 자신의 존재를 처음 잉태한 사람. 어머니라면 자신을 품어줄 수 있는 타원이자 자신을 결속하는 쉽게 지워내기 어려운 낙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프레디를 끊임 없이 한국으로 인도 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마지막, 어머니로 부터 건네 받은 메일 주소로 편지를 보내던 프레디는 그녀의 이메일 주소가 유효하지 않음을 알게된다. 한국어를 쓰는데 아직 서툰 프레디가 번역기에 치던 문장이 잘못 번역 되어 '어머니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겠죠'와 같은 문장이 출력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장이 그녀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일축하여 보여 준다.


프레디의 생모는 이 세상에서 그녀의 존재를 입증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이끈 마지막 타인이었지만, 그녀는 프레디와의 몇 번의 만남으로 자신 안의 죄책감을 덜어낸 후, 그녀를 타투 지우듯 씻어내 버렸다. 결국 프레디는 혼자 남게 되었고, 그녀를 입증하는일은 스스로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 그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 누군가의 몫도 아닌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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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음악을 들었고, 즉흥적으로 처음 본 악보를 연주하는 '시주'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던 프레디는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녀는 온전한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누군가의 온전한 가족 혹은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발레 슈즈를 싫어하고 음주를 하지 않으며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간단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떠한 집합체의 타원에 속해서, 혹은 여러 타원에 걸쳐 살아간다. 그 안에서 가족을 비롯한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근간과 뿌리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하며 지워지지 않고, 나를 떠나가지도 않는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말이 있다. 다소 비관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말이지만, 관념과 감정을 걷어내고 이 문장을 마주해보면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나를 알아 주는 것도 나, 나를 돌보는 것도 나다. 프레디에게 그것이 서울이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베이스 캠프를 언젠가 가졌으면 한다. 마음껏 인생이라는 항해를 방황하다 그곳에서 조금쯤은 안정감을 찾으며 나를 입증할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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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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