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란 무엇일까? 많은 철학적 문제는 단어의 ‘정의’에 대한 추상적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이라는 단어가 비디오 게임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굳어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영어 ‘game’은 야구, 축구, 농구와 같은 스포츠에서부터 바둑이나 체스까지, 승패를 겨루는 많은 승부를 가리키는 단어다. 그렇다면 승부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게임인지, 승부가 없어도 게임인지,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져간다.
주자안의 《게임으로 철학하기》는 게임에 대한 23개의 철학적 질문에 답하며, 또다른 질문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방에 야수가 있다. 늦든 빠르든 너도 곧 그들 중 하나가 될 거야…….”
책은 게임 〈블러드본〉의 첫 번째 보스, 개스코인 신부의 대사로 시작된다. 〈블러드본〉은 대표적인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 중 하나다. 저자는 수많은 죽음과 죽임을 거치며 개스코인 신부에 도전하다 보니, 이 대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 자신이 야수로 변하고 말았음을 나타내는 ‘메타적 장치’로 느껴졌다고 한다.
게임에서의 메타적 요소 역시 다른 예술에서의 메타적인 부분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게임에서 제4의 벽을 깨는 것은 타 장르와 비교했을 때 플레이어에게 더 큰 충격을 주는 면이 있다. 주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조종하며 진행되는 게임의 특성상, 유저는 자신이 조종하는 캐릭터에 이입하여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 캐릭터가 갑자기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닌, 화면 너머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어떤 게임에서는, 평범한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를 표방하다가 갑자기 공포물로 장르를 급선회한다. 그러고는 공략 대상이 아닌 캐릭터가 플레이어, 즉 모니터 너머의 나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그것도 게임 내에서 설정한 이름이 아닌 윈도우의 USER 이름을 읊으며. 이 캐릭터에게서 벗어나려면 실제 폴더에서 캐릭터 파일을 직접 삭제해야 진행할 수 있다.
이런 메타적 장치는 그 자체로 게임의 주요 반전 요소가 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튜토리얼에서도 ‘x키를 눌러 점프하세요.’ 처럼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어에게 말을 하는데, 이 둘의 차이란 무엇일까?
앞서 설명한 게임이 바로 그 부분을 찔러서 만든 작품이다. 튜토리얼로서 메타 발언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캐릭터로서 제4의 벽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게임으로 철학하기》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의 차이와 메타적인 것이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
무척이나 ‘철학적’인 내용들로 가득한 책이지만, 게임이라는 재미있는 장르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기에 읽기 어렵지 않다. 쉬운 문장을 통해 게임의 밸런스 문제부터, 비디오 게임이 과연 ‘예술’인지, 만약 예술이라면 어느 정도 깊이인지, 오픈 월드 게임이 어떻게 오픈 월드가 되는지, 소울라이크 게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게임 속 윤리 문제까지 다룬다.
‘윤리 문제’라고 통틀어 말하면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파고들어 보면 게이머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이야기다. 게임 속 폭력, 여성 게이머에 대한 선입견,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 문제, PC(정치적 올바름) 요소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발도 담고 있다.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 윤리 문제에 대해 잘 꼬집어 설명한 책이다.
……필자는 책에 이런 논의에 대해 넣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점이 되면 되었지 가산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썼다. 비디오 게임이 좋은 것이라면 비디오 게임 커뮤니티도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해 모두가 게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403)
철학이 늘 그렇듯 단순하게 나누어 떨어지거나 정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나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며, 생각할 일이다. 철학의 재미는 그 부분에서 있지 않을까.
게임으로 철학하기
현암사. 주자안 지음, 정세경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