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장애인이 여기 있다 - 연극 '틴에이지 딕'

글 입력 2022.11.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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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이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주인공인 리처드 3세는 구부러진 등과 저는 다리를 가진 악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신체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비틀린 권력욕으로 해소하려 한 인물로 해석된다. 여러 차례 다양한 배우가 리처드 3세를 맡아 연기했다. 대부분은 비장애인 배우였다.


11월 17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된 <틴에이지 딕>은 미국의 극작가 마이클 루가 <리처드 3세>를 현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다시 쓴 작품이다. 극중 리처드와 벅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희곡 서두에서 마이클 루가 리처드와 벅 역에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은 것에 따라 한국 공연에서도 하지성 배우와 조우리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장애인은 여기에 있고, 욕망한다


 

국립극장 연극 틴에이지 딕_콘셉트 사진 (4).JPG

 


빈 무대에 리처드 글로스터가 등장한다. 로즈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그는 학급에서 서기를 맡고 있다. 늘 연극 대사 같은 말투를 쓰는 괴짜이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장애인은 잘 등장하지 않고, 등장하더라도 대부분 동정받는 희생양이거나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는 영웅으로 그려지곤 한다. <틴에이지 딕>의 리처드는 이러한 편견을 깨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가 남몰래 품고 있는 야망이 있었으니, 무능력한 현 학생회장 에디를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식축구팀에서 활동하며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에디를 무슨 수로 몰아낼 수 있을까?


학교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예쁜 여자애도 사귀고 싶다는 리처드의 욕망은 그 또래 남자 고등학생이라면 흔히 가질 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은 그의 몸과 불화한다. 리처드는 그 불화를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성격은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수업에 지각한 그를 교사인 엘리자베스가 추궁하자 몸이 불편하다는 대답으로 동정심을 이끌어내고 처벌을 피해간다. 그 천연덕스러움에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이내 생각에 잠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보는지 이미 간파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장애인의 존재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렇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장애인을 보는 것은 낯설다. 


그걸 안다는 듯 리처드는 여러 차례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장애인이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해?”라고 하며. 리처드는 극에서 독백도 자주 하고, 관객을 향해 말하는 방백도 잦다. 그래서 연극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극 안에서 리처드라는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지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 바깥에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리처드를 인식하며 장애인과 장애를 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환기하는 것이다.

 

 

 

장애인에서 리처드 글로스터라는 개인으로


 

국립극장 연극 틴에이지 딕_콘셉트 사진 (2).JPG

 


리처드 글로스터라는 인물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다. 리처드의 선생님인 엘리자베스, 오래된 친구 벅, 학생회장 에디, 부회장 클라리사, 그리고 학교 퀸카이자 에디의 전 여자친구 앤까지. 이들이 리처드를 대하는 모습에서 관객은 리처드의 성격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보는 자신의 관점도 발견한다.


엘리자베스가 리처드를 보는 관점은 비장애인이 가장 익숙하면서도 무해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는 리처드에게 다운증후군이 있었던 오빠를 투영하며 리처드를 안쓰럽게 여긴다. 또한 리처드가 착실하고 정의롭다고 믿기에 교사의 권한으로 그가 반장이 될 수 있게 돕는다. 

 

스탠포드에 가기 위해 학생회장이 되려는 클라리사는 에디를 지지하지 않는 비주류 학생들의 표가 필요하다. 장애인 학생의 표를 모으고 장애인 학생도 배려하는 자신의 모습을 홍보하기 위해 클라리사는 리처드에게 접근한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리처드 글로스터라는 인간 자체를 대하기보다 그가 가진 장애를 그의 유일한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편의에 맞게 이용하기 위해 리처드를 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처드가 자신의 욕망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극중 인물들이 리처드를 욕망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리처드와 앤의 관계는 리처드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비장애인인 앤이 리처드가 평소에 움직일 때 어떤 느낌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남성인 리처드는 아무도 모르게 임신중절 수술을 해야 했던 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벅 역시 리처드라는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그는 리처드와 마찬가지로 뇌성마비 장애인이지만 리처드와는 다른 성격을 갖고 다르게 행동한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리처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벅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한다고 말한다. 벅의 존재는 장애인을 단일한 집단으로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욕망을 좇는 리처드의 행위가 그가 가진 장애의 결과로만 연결되는 것을 방지한다.


리처드는 자신을 이용하는 이들을 역으로 다시 이용해서 우여곡절 끝에 목표한 바를 이루고야 만다. 물론 그다지 통쾌하고 시원한 결말은 아니다. 이 극은 분명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인물이 움직이는 동기가 되는 것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내달린 인물의 허무하고 괴로운 결말을 마주한다.

 

 

 

연극이 끝나도 질문은 끝나지 않기에


 

국립극장 연극 틴에이지 딕_콘셉트 사진 (1).JPG

 


<틴에이지 딕>은 작품 내 이야기만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작품 바깥에서의 맥락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장애인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고 했을 때 내 상상력은 휠체어를 탄 배우의 모습에 멈췄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하지성 배우가 등장해 첫 대사를 할 때, 무대에서 들어본 적 없는 발성과 발음, 몸짓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3시간 동안 공연을 보면서 리처드의 대사와 몸짓에 익숙해지면 알게 된다. 우리가 표준으로 삼는 연기, 무대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지극히 비장애인 중심적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리처드 3세 역을 맡았던 여러 비장애인 배우는 연극이 끝나면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다. 관객은 모든 게 연기라는 것을 알기에 무대에서 재현되는 장애를 큰 불편함 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틴에이지 딕>은 그렇지 않다. 이 연극에서 리처드와 벅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극이 끝나도 ‘돌아갈’ 몸이 없기에 그들이 무대 위에서 하는 대사는 연기로만 인식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은 극장 바깥까지 가닿고, 지금도 진행 중인 현실의 장애인 관련 이슈를 계속 환기한다.


나는 연극을 보며 묘한 불편함을 느꼈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장애인인 내가 무대 위 장애인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장애인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자신을 무대 위에서 드러내는 장애인 배우를 보며 깨닫는 것은 지금껏 장애를 보지 않는 법만 배웠지, ‘장애를 보는 법’을 배운 적 없다는 사실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은 결국 그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장애를 보는 법을 모른다면 장애인과 관계 맺는 법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장애가 금기시되고, 장애인을 쳐다보지 않는 것만 배우는 사회에서 <틴에이지 딕>은 새로운 맥락을 가진다. 고등학교에서 서기를 맡고 수업을 들으며 생활하는 리처드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로 인식되는 것이다. 연극의 러닝타임은 3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장애인이 3시간 이상 장애인과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이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보면 이 연극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더 분명해진다. 그렇게 이 연극은 무대 바깥까지 길게 이어질 질문을 던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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