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제 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초청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
<시놉시스>
과거 시집 한 권을 출간했지만
지금은 뉴욕의 우체국에서 일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에드 색스버거’
어느 날, 그의 앞에 자신의 시에 매료된 젊은 예술 모임의 리더 ‘마이어스’가 찾아오고
그들의 모임에 ‘에드’를 초대한다.
뒤늦은 찬사 속에 잊고 있던 날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 ‘에드’.
그러나 점차 그들의 젊음과 부, 자신의 현실이 교차하고
마음 속에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피어나게 되는데...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배우 윌렘 대포와 그레타 리를 주축으로 젊은 배우들의 앙상블로 연기를 이끌어가고, 감독 켄트 존스가 이 예술가들의 사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독립영화가 생각나는 소소한 장소 이동과 각본, 뉴욕의 사생활을 가감없이 담은 화면은 영상미를 더해준다. 화려한 뉴욕보다는 각자의 욕망이 각자의 자리에서 넘쳐나는 뉴욕을 맛보고 싶다면,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라.
<나의 사적인 예술가>, 어떻게 보고 느낄까?
! 스포일러 주의 !

‘열의의 사회’, 순수 예술 모임
우체부로 37년간 성실하게 일하던 ‘에드’는 자신을 찾아온 젊고 열정 충만한 ‘자칭’ 예술가 ‘마이어스’의 찬사와 그가 이끄는 모임 ‘열의의 사회’의 환대로 그 모임에 들어가게 된다. ‘열의의 사회’는 순수 예술과 아날로그를 찬양하고 TV나 최신 유행, 인플루언서를 배척하며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열정 넘치는 젊은 예술가 모임이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에드’ 역시 빠르게 바뀌어가는 시대 속에 자신이 출간한 시집은 물론 시와 글이 잊혀졌다고 생각하던 삶 속에 그들이 나타나 생기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낭독회 행사를 준비하며 ‘에드’는 모임 속 젊은이들이 대부분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부잣집에 남부러울 것 없는 배경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임을 이끌며 '기술이 사람의 뇌를 얼마나 썩게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던 ‘마이어스’는 집에서 AI를 활용해 음악의 볼륨을 조절한다. 또 자신이 주최한 낭독회의 리뷰나 평론이 부족해 화제가 되지 않자 본인이 직접 인맥을 동원해 스스로를 찬양하듯 평론 글을 기고한다. 집안 배경이 좋고 돈이 많다고 해서 순수 예술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일들을 뒤로하고 ‘열의의 사회’를 만들고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그들의 배경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리아‘의 영광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모임의 유일한 여성 회원이자 여기저기 무대에 오르는 자칭 배우 ’글로리아‘는 단번에 ’에드‘의 마음을 사로잡고 모임의 여러 남자를 홀리는 매혹적인 여성이다. 모임 회원 중 한 명인 '카마이클'과 연인 사이라고는 하지만, ’에드‘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며 그녀의 아파트에는 동거하는 남자도 있는 듯하다. 이 알쏭달쏭한 여성은 모임의 리더인 ’마이어스‘조차 자신의 배경을 알지 못하게 꽁꽁 감추고 있다. 그야말로 비밀의 여자다.
태도와 복장은 할리우드 배우 뺨치며, 브로드웨이 한가운데의 무대에 서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그녀가 오르는 무대는 뉴욕의 작은 술집들이다. 무대에서 홀로 1인극을 펼치는 ’글로리아‘는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음에 행복해 보이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과 순수 예술을 향한 갈증을 엿볼 수 있다. TV 드라마에 캐스팅된 동료 배우를 천박하다고 비웃지만, 바 무대만으로는 배우로서 성공할 수도-여기서 ’성공‘이란 상업적 성공을 뜻한다- 돈을 벌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씁쓸한 마음은 커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낭독회 날, '글로리아'는 술을 잔뜩 마시고 도저히 ’에드‘의 시를 낭독할 수 없을 정도로 만취 상태가 된다. 그 전 장면과 이 장면을 이어서 보면 어딘가 찝찝하고 두려워진다. 이전 장면에서 ’에드‘가 자신의 시집을 전달하려 ’글로리아‘의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글로리아‘는 강압적인 어떤 남자와 동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본 관객은 낭독회 날 뒤늦게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그녀의 눈두덩이에 멍이 있지는 않을까, 낭독회에 아파서 오지 못한다고 말한 것도 그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그런 것일까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무대를 무사히 마친다. 그리고 그 무대는 평론가의 좋은 평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였다. 그녀의 재능이 부족해서 예술을 향한 갈즈을 느끼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리아‘의 영광은 어디서 올까? 순수 예술에서, 남자에게서, 화려한 무대에서? 그녀가 동경하는 영광은 과연 순수 예술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은 남자의 옆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본인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펼치는 데에 있는 것일까.

’에드 색스버거‘의 위선과 동네 친구들
’에드‘는 오래 전 시집을 하나 출간한 후, 시 쓰는 일을 그만두고 37년을 우체부로 살았다. 늙어가며 만난 친구들과 동네에서 당구를 치고 술을 마시며, 생일을 축하하며, 아파트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소박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의 잔잔한 호수 같은 삶에 돌을 던진 것은 ’마이어스‘다. 위선으로 뒤덮인 ’마이어스‘는 예술하는 사람은 이래야지, 하는 모든 것-~주의로 끝나는 온갖 어려운 말을 갖다 붙여 토론하는 ’척‘한다거나,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예술 작품은 응당 대단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등-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삶의 경력이 ’마이어스‘의 두 배는 될 ’에드‘는 그의 허세를 진작 알아보지만, 그의 호의를 애써 거절하지도 않는다. 아마 은근히 좋았을 것이다. 37년간 그 누구도, 그 어떤 친구도 알아주지 않던 자신의 시를 읽고 대단하다고 찬양하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리.
하지만 ’열의의 사회‘에 들어간 이후 ’에드‘ 역시 ’마이어스‘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치 나이 든 ’마이어스‘ 같다. 낭독회를 준비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동네 친구들과 당구를 치다가 생일 선물로 자신의 과거 시집 [Way Past Go]를 선물하지만, 과거 시인이었다는 걸 믿지 않고 놀리는 친구들을 수준 낮고 말이 안 통하는, 예술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무식쟁이들로 매도해버리고, 오랜 친구에게마저 창피하다는 뉘앙스로 시 낭독회에 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예술을 모르는 것들은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위선자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 ’에드‘는 사람 좋고 성실한 동네 우체부 할아버지다. 그 안에 시집을 출간한 예술가라는 비밀이 감춰져 있는. ’에드‘의 마음 속에는, 에드만의 사적인 예술가인 ’시인 에드 색스버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의 사적인 예술가
이 영화의 제목이 <나의 사적인 예술가>인 것은 어떤 이유일까? 영어 원제는 [Late Fame]이다. 뒤늦은 명성. 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나의 사적인 예술가‘로 번역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드‘가 37년간 감추고 살았던 마음 속 ’시인 애드 색스버거‘. ’마이어스‘가 그토록 열망하는 순수 예술가, ’글로리아‘가 마음 속에 간직하는 최고의 연기 예술가. 모두의 마음 속에는 자기 자신만의 사적인 예술가가 존재한다. 그것을 열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드러냈을 때 좋은 평을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사적인 예술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