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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인턴 생활을 끝마치며

어디로든 거듭 미끄러지기

by 유민 에디터
2026.09.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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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었던 듯하면서도 짧았던 인턴 근무를 갈무리하며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젖힌다. 지나온 길을 올곧게 되돌아보기에는 길이 너무 미끄럽다. 버릇처럼 소략한 단상들을 덧붙이는 일도 쉽지 않다. 문득 고개를 들어 응시할 때 방은 좁고 또 좁아져 있다. 그러나 어디론가 내내 이어져 있는 공간이다. 그런 점이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거듭 시집을 꺼내어 들추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되는 것이다.

       

       

       

      1. 「손님」 - 신해욱



       

      월요일이 오고 있을 것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면

      내 방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고

      나는 수요일이 아닌 채로

      수요일을 대신하며

      옷을 벗게 된다.

       

      키가 없는 몸으로서

      문틈으로 내 방을 훔쳐보면

      모서리. 면. 각.

      수요일과 내가 함께 없는 방은

      사각의 본질로 충만하다.

       

      지금 이대로 내 방을 꼭 끌어안고

      벽에다가 얼굴을 비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수요일이라 할 수 없는 나를 대신 끌어안고

      수치를 견디는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수를 세며

      월요일 같은 것을 기다리는데

       

      그런데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내 방을 사랑하고 있다.

      키가 크고 있다.

      사소한 훼손도 없이

      수요일과 중력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나는 그 많던 요일 중에 무슨 요일이었을까. 무슨 요일이라도 된 것 마냥 오연히 흉내를 낼 수 있었을까. 첫 사회생활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한 사건이 잦아들었던 것이 좋았다. 내가 어떤 요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면 그 시간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겪어보는 사람과 일 사이의 관계로부터 분명히 나는 무언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단단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단단해지지 않아서 좋았고, 행운이었다.

       

      날마다 장거리 출퇴근을 반복하며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난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수요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것을 수요일이라 부르면 수요일이 되는 것일까? 필경사 바틀비와 같이 그것을 수요일이라 부르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수요일은 수요일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여전히 출퇴근을 반복해야 하고 내 주위의 사람들은 그것을 나의 결정이라고 부르니까. 그래서 나는 나를 잊어버리고 지냈던 시간이 좋았다. 내 방이 어떠한 본질로 충만한가를 보기 위해서는 나와 수요일이 함께 없어야 하기 때문에.

       

      욕망 뒤에는 수치가, 수치 뒤에는 기다림이, 기다림 뒤에는 사랑이 있다고 한다. 나는 내 방을 꼭 끌어안고 벽에다가 얼굴을 비비고 싶은 마음에 퇴사를 욕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내 방은 재직 당시보다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을 수치라고 하는 것일까. 일을 하러 출근을 하던 날도, 일이 없어 방에만 있는 날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 내 방을 사랑한다. 나보다 먼저 내 방을 사랑한 이를 곰곰이 떠올린다. 나는 우습게도 그 사람을 내 상사였던 사람으로 대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수요일이 아닌 채로 수요일을 대신하며 출근했으니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아 주어서, 나를 사각의 본질로 충만하게 만들지 않아 주어서 감사한 사람이다.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그나마 중력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다녔다. 그렇게 두려움을 잊고 다니다 보면 월요일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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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두부」 - 이영광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사각의 본질로 충만한 방에서 단단하지 않은 나는 어디를 향해 나가야 할까. 방 안의 나는 두부처럼 무른데 방 바깥의 나는 두부처럼 각지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갖고 어디론가 거듭 미끄러지는 나를 상상해 본다. 넥타이를 졸라매고 다시 구직을 준비하는 나를.

       

      나는 나를 모른다. 나의 안과 겉을 안다고 착각한다. 겉에 있는 것들에게도 겉이 존재한다. 내 방 바깥에 놓인 것들을 대강 그려보지만 여전히 그것을 하나의 경계로 하여 가외의 무엇이 미지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아는 전부가 경계를 무너뜨리며 뒤섞이고 미끄러지는 착란이다. 그럼에도 두부는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기기 위해 사는 두부와 이기지 않기 위해 사는 두부의 얼굴이 같다. 분명히 두부인데도 두부의 물성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군중. 나는 또다시 두부인 척을 하기 위해 방을 나가야 한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두부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날 것이고 문득 수요일 같지 않은 수요일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지난날의 경험을 떠올리며 욕망과 그것을 뒤따르는 이름들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또 문득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내 방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근을 할 것이다. 월요일이 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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