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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첫 인턴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다. 나는 지금 4학년 1학기를 재학 중인 현장실습생 그리고 새벽 6시반에 일어나야하는 직장인이다. 12분 늦은 퇴근길에 지하철 손잡이를 잡으며 생각했다. 웅녀도, 아기도, 커플도 그렇듯 100일은 특별하다. 몸안의 모든 세포의 주기가 3개월이라나 뭐라나. 내 몸 속의 세포도 이젠 인턴 모드에 들어갔겠다. 나의 인턴 생활은 앞으로 3개월 더 남았지만, 이쯤에서 중간 점검을 해보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바쁜 시기에 들어왔다. 출근 이틀차에 해외 업체 전화를 받았으니 말할 것도 없다. 온갖 서류 작업에 기획, 홍보물 제작, 현장 스탭까지… 네 일 내 일 없다는 우리 회사는 정말 그랬다. 쏟아지는 업무를 얼렁뚱땅 쳐내다보면 시간은 삭제되고 정신을 차리면 6시였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보니 박람회 4개를 끝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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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C, B2B, 컨벤션 행사 대행, 그리고 타지 출장. 성격이 완전히 다른 박람회들을 이렇게 짧은 기간에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우당탕탕 해내는 동안에도 분명히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첫 회사 생활에서 배워가는 기초적인 업무 지식들, 사회생활, 태도… 그 중에서도 가장 행운인건 나에 대한 발견들이었다.


어릴적부터 뛰어나게 잘하는건 없었다. 대부분 그럭저럭 잘 해냈고, 한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욱 하고 싶은 걸 정하지 못했고, 하고 싶은걸 뚜렷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


전시 산업에서는 그런 나의 특성이 장점이 될 수 있다. 전시를 한 번 개최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진행되어야 한다. 기획, 참가사 모집 관리, 부스 배치, 홍보 마케팅, 현장 운영, 예산 관리, 외주업체 조율 등.. 정말 이것 저것 다 한다. 직무 경계가 다른 직종에 비해 유난히 흐릿하고. 중소 기업이 대부분인 한국 전시 컨벤션 업계에서 그 흐릿함은 더욱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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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부품처럼 일하는게 싫다. 목적과 용도, 흐름을 알아야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내 일이 어떻게 쓰이고 어디서 필요한지 모르는 것만큼 답답한게 없다. 오히려 담당자 바꿔드릴게요의 담당자가 되는 것이 시원하다. (그만큼 책임져야할 것들이 많아지지만)


결과가 눈으로 보이는게 좋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부스를 조립하여 올리고 배너와 가구가 들어서고 사람이 모인다. 2-3일 동안 존재하고 사라지는 만남의 장소를 만드는 일. 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획과 순간 순간 선택의 결과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피드백이 확실하고 빠르기에 일이 손에 빨리 붙는다. 성격 급한 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의 결과물들에 확실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좋다.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서로 만보기 대결을 하곤하지만 그래도 일하는 공간이 변하는게 좋다.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같은 업무를 하는건 꽤 심심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적부터 공부도 옮겨다니면서 했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침대에서, 책상에서.. 엄마는 그런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지만. 그래야 답답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더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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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시는 그 지루함을 눌러준다. 전시가 모두 끝나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허한 마음에 깨달았다. 전시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어떤 일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전시 주최사는 더욱이 그렇다. 관람객과 참가업체 그리고 다양한 협력업체들과 소통하는 일이 주된 업무이고 어쩌면 목적이다. 소통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 관람객과 참가업체가 잘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에. 전시는 일종의 언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을 피곤해했다. 사람 대하는걸 못하진 않았지만 어려워했고 복잡한 관계에서 복잡한 고민이 생기는 것도 싫었다. 대학에 오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것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사람이란 정말 자극적이고 입체적인 세계라는걸 깨달았다. 걸어다니는 세계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물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깊게 들여다봐 홀라당 빠지지 않도록, 너무 대충 들여다봐 오해할 일이 없도록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를 적당한 거리에서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균형을 조절하면서 점점 노하우를 얻게 되는 것이 경력이고 연륜이겠다.


박람회가 끝난 회식에서 아이처럼 웃는 상무님을 보면, 삶은 꽤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회사의 체계는 누가 만들어주거나 원래 존재하는게 아니라고 하신 말씀도 자꾸 생각난다. 파일명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나 혼자 유독 심각히 들었다. 나만의 디테일이 쌓여 그게 규칙이 되고 체계가 되어 회사를 지탱한다. 디테일하게 살고 싶어졌다. 나에 대한 사소한 발견들이 모이고 모여 내 삶을 지탱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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