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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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되는 작품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니 가족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가족이었다, 사실 너는 어디 가문의 딸이며 그 위상은 얼마나 대단한지....

 

훌륭한 로맨스 판타지 입문을 마친 독자에게 찾아오는 다음 클리셰, 바로 가족이다. 로판의 소갯말로도 곧장 쓰이는 문장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족, 가족, 그리고 또 가족을 강조한다. 문화예술에서 가족을 강조하는 건 흔한 일이다. 여러 매체는 가족의 따뜻함과 가족의 무심함을 동시에 그려내며, 이상적인 가족을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 가족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매체 속 인물에게는 힘이 되어준다. 가족의 잔인함은 그 어떤 서사보다도 잔혹하게 묘사되고, 우리는 가족 간의 다툼에서 과하게 몰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다면 로판 속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아무리 중세 유럽을 모방하고 있다지만, 로판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나오는 가족의 형태는 우리에게 익숙함과 동시에, 로판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내는 여러 서사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유독 가족이 아닌 '핏줄' 혹은 '가문'이라는 표현이 더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도 바로 이 '로판적 특수성' 때문이다. 가족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굉장히 정치적이고, 복잡하고, 여러 상황이 얽혀있다. 말 그대로 타고 타고 올라가면 같은 조상을 두고 있는, 핏줄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고 하던가, 물론 로판 속 가족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한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러나 미디어가 만들어 낸 보편적인 가족의 형태를 생각해본다면, 로판의 가족들은 우리의 '상식'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적당한 단어인 핏줄을 애용하는 것도 아닐까.

 

여러 로판 작품 속 가족들을 따라가는 이 글이, 낯선 세상 낯선 가족들 사이에서 눈을 뜬 당신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유사 가족에 미치는 이유


 

유사 가족. 핏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품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남주의 입양딸이 되었습니다」와 「세이렌: 악당과 계약 가족이 되었다」가 있다. 처음부터 가족이 아니었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가족이 되고 결국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인정하게 되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남주의 입양딸이 되었습니다」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작품 중 하나이다. 주인공 '레오니에 보레오티' (이하 '레오')는 제목 그대로, 원작 소설 속 남주에게 입양된다. 원작 소설의 남주이자 작품 내 주인공인 레오의 아버지가 된 '펠리오 보레오티'는 처음에는 그저 단순 호기심으로 아이를 입양한다. 작품 내 그 누구도, 심지어 황실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가문의 수장인 펠리오에게 결혼을 해서 자식을 보라며 등떠미는 자는 없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다소 충동적으로 입양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작품 초반부, 두 사람은 실은 오촌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렇게 두 사람은 어찌되었든 같은 핏줄이었다는 게 드러나지만, 펠리오가 레오를 입양하기 전까지는 당사자들도 가족인 걸 몰랐고, 게다가 친척 관계인 걸 알게 되었더라도 레오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기 전까지 펠리오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완전한 남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이지만 가족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이렇게 작품 내 두 사람의 모습은 독특하게도 진짜 핏줄이지만 유사 가족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저 같은 집에 사는 사람, 조금 더 나아가서 레오는 펠리오를 지옥 같은 고아원에서 꺼내준 은인, 펠리오는 레오를 겨우 찾은 핏줄 정도로만 생각한다. 가족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펠리오는 그저 재미로 아이를 입양한 것에 대한 스스로의 오만을 반성하고, 레오는 펠리오를 비롯한 보레오티 가문의 사용인들의 따뜻함 속 진정한 가족의 온기를 느끼며 유사 가족을 넘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이 되어간다.

 

소설에 빙의한 레오는 초반부 내내 자신의 진짜 자리는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흔한 빙의물의 클리셰인 '눈을 떴더니 낯선 세상 속'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 펠리오의 입양 선언으로 작품이 시작되는 점, 독자가 펠리오와 함께 아이 입양 과정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레오의 심적 상황은 배제된다. 작품을 완전한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레오는 누가봐도 빙의한 사람이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우연찮게 두 사람이 친척인 걸 알게 되었어도 독자는 물론 펠리오 입장에서는 '역시 레오는 대단한 아이였어, 역시 보레오티의 핏줄' 정도로 끝이 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이후, 그제야 레오의 불안감이 묘사된다. 독자는 이야기가 상당히 진행된 시점에서야 레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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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자와 마찬가지로, 펠리오도 레오를 진정으로 이해하며 가족으로서 품어주게 된다. 주인공인 레오가 아닌 펠리오의 심리적 상황 묘사를 따라가며 자연스레 독자도 레오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내며 유사 가족에서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자, 우리가 유사 가족을 좋아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이렌: 악당과 계약 가족이 되었다」는 유사 가족의 온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계약 결혼의 클리셰도 착실히 밟는 작품이다. 주인공 '아리아'는 악당 가문으로 여겨지는 '발렌타인' 대공가의 장남과 계약 결혼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전형적인 계약 결혼물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주인공들의 나이가 매우 어렸다는 점, 그리고 장남의 아버지, 즉 대공이 아리아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여 며느리가 아닌 딸로 삼고 싶어했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계약 결혼을 곁들인 유사 가족의 형태로 작품은 진행된다.

 

작품 자체가 상당히 어둡고 피폐하며 숨 돌릴 구간이 많지 않은 특성상 주인공 두 명의 사정도 상당히 안쓰럽다. 우선 이 작품은 회귀물로, 아리아는 최우선적으로 살기 위해 대공가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지옥과도 같은 아버지의 학대를 피하고 이전 생보다 더 오래,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에 손을 뻗어주었던 발렌타인 대공의 장남을 구하기 위해 계약 결혼을 제안하게 된다. 악당 가문이라는 명색에 걸맞게 대공가의 사람들은 어린 아리아의 눈에는 상당히 무서운 인상이지만, 발렌타인 대공은 아리아의 친부의 학대를 바로 눈치채고는 아리아를 거둔다. 발렌타인 가문에서 아리아는 소문과는 다른 대공가의 분위기에 점점 적응을 하며, 이전 생에서는 받아보지 못했던 '어린 아이를 향한 조건 없는 따스함'을 느끼며 훨씬 밝게 성장한다. 물론 그녀의 건강 또한 이전 생보다 나아져서,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그녀를 내내 괴롭히던 불치병이 완전히 고쳐지게 된다.

 

계약 결혼과 소꿉 친구라는 설정에서 오는 설렘도 분명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유사 가족이다. 물론 아리아가 발렌타인 대공의 아들과 결혼하게 된 시점에서 그녀의 성 또한 발렌타인이 되었지만, 어린 두 아이를 배려한 탓으로 두 사람은 부부보다는 같은 보호자를 둔 어린 아이들로서 성장하게 된다. 아리아가 발렌타인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시아버지인 발렌타인 대공이 아리아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는 점을 무시할 순 없다. 아리아는 어린 시절, 학대의 트라우마로 대공가 사람들에게 미움 받지 않을까 내내 걱정했지만 대공가 사람들은 조건 없는 따스함을 보여주며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한다'의 표본을 보여준다. 대공 부부뿐만 아니라 발렌타인 내의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아리아를 지지해 주는 든든한 가족이자 아군이 되어준 것이다.

 

 

 

핏줄이 너무해


 

가족이라는 표현도 아까운 자들로 인해 유사 가족을 우리가 더 지지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들 정도로 로판에는 도통 제대로 된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유사 가족은 소수이며, 이로 인해 주인공이 놀림 혹은 조롱을 받는 것도 하나의 클리셰라면 클리셰이다. 하지만 로판 속 여러 가족들을 보다 보면 핏줄이라는 게 얼마나 잔혹한지를 깨닫는다. 핏줄의 잔인함, 냉혹함, 그리고 모든 원흉이 된 핏줄. 유사 가족의 안티테제로 주로 등장하는 이 요소 역시 다양한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망나니의 누님이시다」와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이다. 워낙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고 없어서는 안 될 소재인지라 대부분의 로판에서 등장하는 게 바로 이러한 형태의 가족이지만, 두 작품은 유난히 더 이 핏줄로 인한 고난과 아픔이 강조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여 소개하게 되었다.

 

「망나니의 누님이시다」는 표면적으로는 주인공 '레지나'의 복수물이자 회귀물이다. 첫 번째 생에서 레지나는 황녀로서 최선을 다한다. 아버지인 황제가 죽고 나서는 어린 나이에 황위를 이은 동생 '테오르'를 대신하여 섭정을 하며 제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동생은 망나니인지라 나라를 제대로 돌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결국 레지나의 약혼자가 주도하는 반란군에 의해 황실은 멸문하게 된다. 회귀를 하게 된 레지나가 이번 생에는 동생보다 더 한 망나니가 되어서 무사히 황실을 탈출함과 동시에 약혼자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게 작품의 주요 상황이다.

 

평범한 회귀물에 복수가 가미된 작품으로 보이지만 상당한 반전이 숨겨진 작품이다. 또한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만 볼 수 없는, 등장 인물들 간의 연대가 특히 감명 깊은 작품으로 짧지만 확실한 한 방을 주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이야기 할 때는 주로 사랑과 그 사이의 연대, 진심, 그리고 용서가 주요 주제가 된다. 실제로 이 네 개의 키워드가 작품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레지나의 가정사도 빼놓을 순 없다.

 

레지나는 황제에게 일말의 감정도 남지 않았다. 황제는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을 불쌍하게 여겨 테오르에게는 조심스럽지만, 정작 똑같이 어머니를 잃은 레지나에게는 그런 세심함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회귀 후 레지나는 황제를 단 한번도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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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는 작품이 진행될수록 많은 이들의 진심을 느끼게 된다. 망나니인 동생조차도 실은 지극히 누나를 아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작품 내 최종 흑막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후에는 끝내 용서한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사람, 오직 황제만은 용서하지 않았다. 황제는 뒤늦게 후회하며 레지나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쌓이고 쌓인 레지나의 감정은 이제 너무 쌓여버린 바람에 완전히 굳어지고 말았다. 작중 내내 레지나는 황제의 뒤늦은 반성과 후회의 태도에 당황한 적은 있어도 마지막까지 용서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황제에게 단 일말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사실 이런 형태의 전개에서 주인공이 결국 아버지, 혹은 가족을 용서하는 것까지 일반적인 이야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레지나는 끝까지 아버지를 아버지로 바라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반항한 날 이후, 레지나에게 아버지는 없어진 것이다. 너무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나, 그녀가 받은 상처를 타인이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무리 지은 관계 또한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진짜 가족일지라도.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역시 앞선 작품과 비슷하게 회귀물에 복수가 첨가된 작품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겉으로만 판단해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억울하게 가족 전체가 폭군 '루페르트'에 의해 몰살당한 주인공 '라리에트'가 회귀하며 시작된다. 가족의 죽음이 억울하다 생각한 라리에트는 필사적으로 루페르트의 최측근이 되어서 가족을 지켜내겠다는 목표 하나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반전은 라리에트의 '무지'이다.

 

일반적인 로판 속 주인공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시간선,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로판 속 주인공들은 이 정보를 이용하여 큰 돈을 벌기도 하며, 크게는 세계를 구하기까지 여러 일을 성공적으로 완료한다. 이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로판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흔히들 '사이다'라 불리는 소재 또한 주인공의 정보력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라리에트에게 주어진 정보는 회귀 시점, 폭군이 현재는 황녀로 위장하며 살고 있다는 점과 후에 그 폭군에게 가문이 박살난다는 것 밖에 없다. 물론 이 점을 이용하여 아직 '황자 루페르트'가 아닌, '황녀 라페르트'의 측근 시녀가 되어서 가까워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어째서 루페르트가 황녀로 살고 있는지,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전 황제와 현 황제 사이에 어떤 일이 오고갔는지, 타국과 그녀의 모국이 어떤 관계인지, 최종적으로 왜 억울하게 가족이 멸문당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말 그대로 '무지'의 상태인 것이다. 독자와 같은 정보력에서 출발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신선하다는 반응도 지배적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라리에트는 독자와 함께 점차 진실에 가까워진다.

 

라리에트는 최측근 시녀로 지내면서 황실의 속사정 및 루페르트가 어째서 금지된 연금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지 등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라페르트, 아니, 루페르트와의 감정이 깊어지던 중, 마침내 루페르트는 황태자를 거쳐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물론 이 시점의 루페르트는 이미 라리에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가문이 멸문당할 일은 없어졌다. 이것만으로 이미 목적을 하나 달성한 것이지만, 문제는 이 이후의 일이다.

 

라리에트의 아버지는 실은 진짜로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심지어 딸 라리에트를 이용한 반역이었다. 라리에트는 전 황제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자식이고, 현 황제는 자손을 만들 수 없어서 현 황자와 황녀는 물론 루페르트 또한 황제의 친자식이 아니다. 이런 막장 속 라리에트의 아버지는 그녀의 핏줄을 내세워서 '정당한 반역'을 꾀한 것이다. 당연히 라리에트는 이 사실을 알고 기겁하다 못해 가족과의 연을 완전히 끊어버리려고 한다. 그녀에게는 황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 뿐더러, 정당하다며 합리화를 하는 아버지에게 동조하기에는 루페르트의 과거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리에트의 이 핏줄로 인해 라리에트와 루페르트의 사이는 파국 직전까지 가지만, 서로만을 생각한다는 진심이 통하여 둘 사이는 원만하게 해결된다.

 

작품은 유난히 핏줄의 부정적인 면모가 자주 등장한다. 당장 라리에트의 사정뿐만 아니라 루페르트가 황제가 된 것도 마찬가지로 핏줄 때문이다. 그는 황제의 친자식이 아니었다. 이는 황제도 알고 황후도 아는 사실, 황후는 황제와 이 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용하게 된다. 이 나라 황실의 피가 전혀 이어져있지 않은 황후의 핏줄, 루페르트가 황위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에 제대로 복수를 하는 셈이 된다. 이 사실을 어릴 때부터 세뇌에 가깝게 들은 루페르트는 인생의 목표가 오직 황위뿐인 폭군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황후는 황제의 핏줄인 루페르트를 사랑할 수 없었다. 루페르트도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핏줄이 이어준 연민과 동정만이 남아있었다.

 

로판에는 막장 가족만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이상적인 가족도 흔히 등장한다. 그러나 서사를 위해,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작품의 개연성을 위해 유난히 가족의 잔인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

 

「망나니의 누님이시다」는 은은하게 그 속성을 부여하며 일말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은 가족을 주로 보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외의 가족들은 모두 부모가 당연하게 자식을 사랑하고, 부부는 서로를 당연하게 아끼는 가족으로 등장한다. 어쩌면 이러한 차이점이 레지나와 황제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틈을 더욱 견고히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는 핏줄의 잔인함을 내내 강조하는 작품답게 작품 내 가족의 형태는 모두 서로를 도구로 이용하는, 전형적인 귀족 가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 수위가 처참하고 피폐해서 단순 회귀+복수물로 작품에 입문했다가 예상치 못한 피폐함으로 작품에 과몰입하게 된 독자도 다수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 가족의 역할은 서사의 잔인함을 부여하는 데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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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가족은 전형적인 안티테제로 손꼽히는 두 유형에서 끝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숨겨진 자식이었다, 도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물론 이후 이야기 전개에 따라 육아물의 경로를 밟을 수도, 피폐한 복수물의 경로를 밟을 수도 있다.

 

가족이 주는 무게감으로 인해 로판에는 가족 서사가 빠질 수 없다. 독자의 확실한 몰입은 결국 얼마나 흡입력 있는 문장이냐에 따라 갈리기도 하지만, 소재와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당장 현재를 살아가며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족을 대입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필수적인 선택이 된 건 아닐까 싶다. 가족이 주는 힘은 강하지만, 때로는 그 강함이 독이 되니까. 너무나 강해서 우리는 쉽게 작품 속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고, 함께 공감하며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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