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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는 _ 때 가장 아름다워 [사람]

내 얼굴을 사랑해보려고요

by 유예현 에디터
2026.08.24 16:39

거울을 보는 건 왜 질리지 않을까. 백 번, 천 번, 만 번, 평생 동안 어느 정도는 비슷할 이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에 난 왜 이리 중독된 걸까. 줌 회의를 켜면 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시선은 내 얼굴이 나오는 화면으로 자꾸만 새어 가는 걸까. 이건 자아도취와는 다르다. 딱히 예쁘거나 잘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말하자면 예쁜 구석을 찾아보려는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점검하는 거다. 그 몇 초 사이에 내가 더 못생겨지진 않았는지. 남들은 다 똑같다고 하겠지만 나만 아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고개를 어느 쪽으로 틀었을 때, 붓기가 어느 정도일 때, 이마가 얼마나 가려졌을 때, 낮일 때와 밤일 때, 내 얼굴은 수도 없는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자라면서 유년기를 몇 개의 장면과 몇 개의 문장으로 간직하게 되는 것 같다. 기억력이 안 좋은 탓인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흐릿한 유년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몇 안 되는 뚜렷한 기억은 유난히 깊이 박혀 있다.

 

얼굴에 대한 기억 하나.

 

초등학교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안경잡이’들은 안경을 벗는 것을 일명 ‘생얼’과 동일시했다. 안경을 낀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미지의 가능성이 있었다. 만화에서처럼 안경을 벗으면 눈부시게 아름다워지거나, 반대로 더 추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전자의 가능성을 바라며 핸드폰 카메라로 수도 없이 셀카를 찍어보았다. 그렇게 셀카 수십 장으로 쌓아 올린 용기에 힘입어, 어느 날 나는 안경을 닦는다는 핑계로 슬쩍 ‘생얼’을 공개했다. 돌아온 것은 “미간이 넓어 안경을 쓴 게 낫다”라는 아이들의 가혹한 평가였다.

 

그때 이후로 오랫동안 나는 안경을 쓰면 콧대가 낮아져 미간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안경을 벗으면 이미 너무 넓은 미간이 드러날 것이라는 두려움 사이에서 살았다.

 

얼굴에 대한 기억 둘.

 

혹시 거울로 자신의 옆모습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거울 한 개로 자신의 옆모습을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시선만 옆으로 보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 하지만 거울 두 개가 있다면? 큰 거울 하나, 손 거울 하나면 된다. 큰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옆으로 돌린 다음, 손거울을 들어 큰 거울에 비친 옆모습을 점검하는 것이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때 배식을 받으러 선 줄에서였다. 그때까지 내 옆모습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예상치 못한 더블 펀치를 맞게 된다. 내 옆에 서 있던 친구와 나를 물끄러미 보던 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넌 옆모습이 진짜 납작하다.” 퍽! “근데 턱은 엄청 튀어나와 있어.” 퍽퍽! 완패였다. 방어할 생각조차 못했던 그 공격은 꽤 질긴 상처를 남겼다.

 

이후로 오랫동안 웃을 때 누군가 내 옆에 있는 걸 싫어했는데, 웃을 때면 어쩔 수 없이 턱이 더 돌출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누군가 내 옆에 있는 게 의식될 때면 슬쩍 고개를 돌려 정면과 측면 그 사이 어딘가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길게 쌓아 온 빌드업은 단순히 내가 외모 강박이 있었고, 여전히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요즘 집과 서울을 오가며 하루 평균 3~4시간 정도를 이동에 할애하게 되었다. 이제는 영상을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장시간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나 토크쇼를 자주 틀어놓는다. 그러다 어제, 유튜브에서 매주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기준이탈모임’의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의 제목은 ⟨“나는 93kg일 때 가장 아름다워.” | 내 기준이 확실하면 평가에서 자유로워진다⟩, 외모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네 명의 패널이 약 40분간 떠드는 영상이었다.

 

 

 

 

한국 사회가 특히나 편협한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것이 건강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뻔하지만 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뻔한 소리의 향연일 것이라 생각했던 영상에서 나를 움찔하게 만든 말이 하나 있었다.

 

‘나의 미적 취향’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섹션에서 패널 중 한 명인 박시영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마찬가지고 남한테도 마찬가지고 기대하는 건 있는데, 표정. 저는 생김보다는 표정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봤을 때 가장 공들여서 만들어야지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이 표정이거든요. 피부 상태나 얼굴 생김이나 이런 것들은 그냥 가만히 있을 때 필요한 것들이고 사람은 끊임없이 얘기하고 막 움직이고 하잖아요. 이럴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그 움직임.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쌓아온 경험과 그 사람이 가고 싶어하는 이상향과, (역사이기도 하고) 그 다음에 가야 될 이정표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곧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표정이. 그리고 그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요."
 

 

오래 전 내 친구가 내 옆모습에 대해 했던 말에 날리는 카운터펀치 같았다. 어린 나는 미래에서 슈퍼히어로처럼 날아오는 그 주먹을 보았을까. 그러게.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보는 나’의 표정일 뿐인데. 나는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을 텐데. 나는 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모습만을 가지고 내 아름다움을 쟀던 걸까.

 

불현듯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내가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라 했다. 눈이 예쁜 사람이 아니라, 눈이 반짝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만나기 흔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왜 그 말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걸까. 수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던 내 눈빛에서 반짝임을 엿본 적이 있던가.

 

그리고 어젯밤, 나를 지나갔던 수많은 표정이 떠올라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그래, 내가 누군가를 아름답다고,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던 순간에는 무엇이 있었더라.

 

얼마 전 보러 갔던 움직임 기반의 공연이 떠올랐다. 퍼포머 둘은 아름답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긁히는 소리, 듣기 불편할 정도로 거칠고 의도적으로 늘어진 숨소리가 퍼포머들의 옷깃에 달린 핀마이크로 확대되었다. 거의 완전한 암흑 속에 한동안 그 소리만 존재했다. 희미하게 켜진 손전등 불빛 속에서 두 몸은 가까워졌다. 가까워진 몸은 서로를 의지하기도, 찍어 내리기도 하면서 한참을 씨름했다. 어느 순간 불이 다시 켜지고, 그제야 흐릿했던 형체들이 선명한 테두리를 얻었다. 그때 내 앞에 있던 퍼포머는 살면서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본능적으로 그것은 짐승의 표정이라 생각했다. 흥미로운 먹잇감을 눈앞에 둔 짐승. 히죽 벌어진 입과 살짝 드러난 축축한 혀, 또렷하다 못해 빛나는 듯했던 눈매.

 

아, 그건 무서울 만큼 살아있어서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문자 하나를 받았다. 대외 활동에서 우연히 만나 연락처를 주고받은 사람이었다. 문자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얼굴이 너무 생그러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고 적혀 있었다. 말간 초록빛이 생각나는 그 단어가 내 얼굴을 묘사하는 게 어색하고 현실감이 없었다. 하하. 아니, 사실 지금 내 얼굴은 조금 자아도취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아름다움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이렇게나 많은데, 조금쯤 자신에게 취할 수도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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