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르세라핌, 아이브, 에스파 등으로 이뤄진 4세대 여자 아이돌의 인기는 여전히 폭발적이다. 갈수록 곡 퀄리티가 하락한다는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이들의 위상 자체가 워낙 드높은지라 타격은 없다. 이 때문에 아이돌을 뛰어넘은 무언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자 아이돌의 반격도 슬슬 시작된 듯하다. SM의 ‘라이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자 아이돌의 강세는 ‘보이즈넥스트도어’, ‘제로베이스원’, ‘투어스’ 등이 그 원인들이다.
대형 기획사 SM은 ‘라이즈’의 데뷔곡인 ‘get a guitar’를 통해 앞으로의 남자 아이돌 방향성을 선율했고 하이브 역시 마찬가지로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통해 남자 아이돌의 새 면모를 확실히 했다.
이들을 꿰뚫는 키워드는 역시 청량함이 되겠다. 밝은 미소와 덮은 머리, 흰색이나 파스텔톤으로 무장한 스타일은 물론, 과격하기보단 유려한 춤 동작과 꾸밈없는 목소리가 이들의 매력 포인트다. 이들의 곡도 팡팡 터지는 후렴구 멜로디 덕에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올릴 만큼 귀가 시원해진다.
‘빅뱅’, ‘엑소’, ‘BTS’처럼 강인한 남성미를 뽐내던 시절은 온데간데없고 고등학교 첫사랑 성격의 이들이 차트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이유는 앨범 판매량과도 관련 있다. 아무리 여자 아이돌이 강세라지만, 아이돌의 수익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앨범 판매량은 남자아이돌을 이기기 힘들다. 아이돌 시장이란 무릇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의 수요가 더욱 큰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이들의 무드는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효과적인 전략인 것이다. 남성들도 환호할 만큼의 카리스마가 아닌 지극히 이성애에 몰두한 결과, ‘NCT dream’이나 ‘세븐틴’, ‘더보이즈’ 등처럼 수익 면에서는 높은 실적을 보였다. 이러한 그래프의 통합적 결론이 바로 4세대 남자 아이돌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들은 청량한 콘셉트 덕에 그야말로 수직 곡선이다. ‘투어스’는 데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아이유 다음인 멜론 차트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라이즈’는 ‘Talk Saxy’로 다변성을 꿰차면서도 ‘Love 119’로 또다시 여심 저격에 나서며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힙합 베이스의 블락비를 지내온 지코마저 ‘보이즈넥스트도어’의 데뷔곡으로 키치한 무드의 ‘돌아버리겠다’, ‘One and Only’를 선택하며 정상을 노리는 중이다.
이들은 ‘K’의 의미에 대한 답을 내놓기도 한다. 몇 달 전 발매된 정국의 앨범은 K팝의 방향성과 ‘K’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쏘아 올렸다. 팝적인 사운드와 영어 가사만으로 이뤄진 앨범에서 ‘K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렇다면 K팝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빠른 트렌드 차용과 댄스가 가미된 엔터테이너적인 요소들이 K팝의 특징으로 불려왔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다른 국가들의 음악인 아프로비츠나 라틴 팝 등과 비교하면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없던 것이 사실이었다. 빌보드를 대놓고 노리는 현재의 k팝 전략들은 역설적으로 가수의 태생이나 국적과 알맞는 음악을 부르게 하는 미국 음악 시장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문 또한 음악적 뿌리의 중요성을 되짚어보는 데 한몫했다.
그런 면에서 ‘투어스’는 꽤나 영리하게 접근했다. 데뷔곡인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는 J팝의 요소를 뻔히 차용하긴 했지만, 뮤비에서의 학교 배경이나 대부분이 한국어인 가사 때문에 되려 개학식 날 첫인사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주제가 보편적이면서도 한국적이게 느껴진다. 음악만으로 k를 살리지는 못한 지라 임시방편일 수 있으나 예전 ‘여자친구’와 비슷한 시도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눈이 간다.
특히 한국어 가사와 한국 학교 분위기를 담은 가사는 ‘뉴진스’가 ‘ETA’에서 혜진이, 지원이 등 다분히 한국적인 이름을 가사에 담으며 K스러움을 더한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봐도 충분하다.
라이즈의 ‘Love 119’도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그간 예전 아이돌 곡을 리메이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 외 장르의 터치는 거의 없었던 만큼, ‘응급실’ 리메이크는 독특하면서도 원곡이 한국식 발라드록이라는 점에서 한국적이다.이들의 개성인 달달함을 놓치지도 않았다. K팝의 시초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인 ‘시대유감’을 ‘에스파’가 리메이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SM 또한 나름대로 K팝 뿌리 찾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무드 자체가 해답이 될 수도 있다. 남성미 넘치는 남자를 선호하는 미국에서 정반대의 캐릭터를 내보이는 것은 위험할 수도, 신선할 수도 있는 시도다.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k팝 스타이면서 아시아인으로서의 섹스 심벌을 도전한 정국과도 대치되는 형태이기에 더욱 흥미롭게 여겨진다.
이처럼 이들은 본인들에게도 K팝 자체에게도 한 걸음 한 걸음이 중요한 행보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과연 이들이 4세대 여자 아이돌의 놀라울 정도로 각기 다른 개성과 더불어 K팝스러움이라는 과제까지 수행해낼 수 있을 지, 그 가능성과 재목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법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