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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박서보와 흐엉 도딘이 전하는 ‘비움 그 충만’에 대한 고찰 [전시]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 이룬 충만함

by 최수경 에디터
2026.10.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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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워낸 끝에 충만해지는 것들이 있다. 서울 연희동에 새롭게 문을 연 박서보미술관의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얼핏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문장을 두 화가의 그림으로 보여준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흐엉 도딘. 두 사람은 살아온 시대도, 문화적 배경도, 그림을 만드는 방식도 다르다. 박서보가 젖은 한지 위에 선을 긋고 밀어내는 행위를 반복했다면, 흐엉 도딘은 광물 안료를 수십 겹 얇게 쌓아 올리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리만큼 닮은 감각에 도착한다.

       

       

       

      SPACE Ø |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도착한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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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가장 아래인 지하 2층 SPACE Ø에서 시작한다. 이곳에는 박서보와 흐엉 도딘의 1990년대 작품들이 교차하여 놓여 있다.

       

      박서보의 대표적인 작업인 ‘묘법(Ecriture)’은 1967년 시작됐다. 그는 선을 긋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자신의 감정을 덜어내고 자아를 비우는 수행과도 같은 회화를 이어갔다. 이후 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묘법에서는 한지의 물성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선을 긋고 밀어내며 화면에 일정한 골을 만들어냈다.

       

      한편 흐엉 도딘은 직접 만든 바인더와 광물성 안료를 사용해 얇은 색의 층을 수십 겹 쌓아 올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언뜻 하나의 색처럼 보였던 화면 안에서도 미세한 빛과 깊이가 드러난다. 색을 계속해서 더하는 작업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끝에 남는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고요함이다.

       

       

       

      SPACE 2 | 어둠 속에서 발견한 하나의 붉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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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으로 올라가면 박서보의 묘법이 변화해온 흐름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990년대 말의 짙은 흑색 한지묘법에서 시작해 2000년대 이후 자연의 색을 받아들인 색채 한지묘법으로 이어진다.

       

      박서보가 ‘아궁이색’이라 부르기도 했던 검은색에는 개인적인 기억도 연결되어 있다. 아궁이에 그을음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깊은 색에서 그는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어둡고 절제된 화면을 지나면 어느 순간 강렬한 색이 등장한다. 내게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 역시 이곳에 있었다. 붉은 화면으로 가득한 2010년작 〈묘법 No.100915〉이다.

       

      2000년 일본 후쿠시마의 반다이산을 찾았던 박서보는 작은 단풍잎 하나가 햇빛을 받아 강렬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훗날 당시를 떠올리며 햇빛 아래에서는 타오르고 그늘에서는 검붉게 변하던 단풍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고 회상했다. 그 순간에는 근심과 걱정마저 그 붉은빛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박서보에게 색이 화려함이나 자기표현을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그는 단풍을 비롯해 자연에서 발견한 색을 화면 안으로 가져왔다. 자연에서 자신이 얻었던 위안과 치유를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전하기 위해서였다.

       

       

       

      SPACE 3 | 서로 다른 두 개의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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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박서보미술관)

       

       

      전시의 마지막인 3층에 도착하면 앞서 마주했던 강렬한 색채는 다시 잦아든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8m인 정육면체형 공간 ‘Cube’에는 박서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했던 2023년의 대형 〈묘법〉 세 점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박서보의 흰색은 새하얀 순백과는 조금 다르다. 회색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흰색을 반복해서 올려 완성한 화면에는 조선백자의 회백빛과 삼베와 모시의 누르스름한 빛이 스며 있다. 표백된 흰색이 아니라 자연과 생활 속에서 오래 마주해온 한국의 흰색에 가깝다.

       

      그 맞은편에는 흐엉 도딘의 흰색이 있다. 흐엉 도딘에게 흰색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이어진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무렵 프랑스로 이주한 뒤 생애 처음으로 눈을 보았다. 그의 흰색에는 처음 마주한 눈의 감동과 눈이 녹으며 그 안에 숨어 있던 빛이 드러나는 순간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이곳에서 전시의 제목인 ‘비움 그 충만’을 가장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온통 흰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작품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캔버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날 전시장에서 마주한 가장 밝은 색은, 동시에 가장 깊은 무게를 품고 있었다.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 이룬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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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루고 소유한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충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그 곁을 오래 지키며,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시간 역시 삶을 깊게 만든다.

       

      따라서 전시를 관람하며 무엇보다 비워내야 할 것은 끊임없이 채워야 한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 가져야 한다는 조급함과 더 이루어야 한다는 초조함을 내려놓으면, 그제야 삶에는 고요가 찾아온다. 부족한 것을 찾아 바깥을 향하던 시선이 멈추고,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선명해질 것이다.

       

      두 사람이 오래도록 비워내며 완성한 작품 앞에서, 잠시 자신의 삶에도 시선을 돌려보기를 권한다. 나는 무엇으로 삶을 채우려 애쓰고 있는지, 무엇을 비워낼 때 비로소 고요해질 수 있을지. 그 질문의 답을 고찰해보는 것만으로도 '비움 그 충만'의 의미를 각자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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