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것은 당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게임]

정해진 결말을 향한 당신만의 과정
글 입력 2024.12.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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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시간이다.

These are the end-times.

 

살아남는다는 희망도 없었다.

There was no hope of survival.

 

이것은 당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This is how you died.


 

정해진 결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살아가는 것은 그저 비참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최후의 시간 속, 당신은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치열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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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좀보이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2013년 개발 과정 중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얼리 엑세스 게임으로 등장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한 버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딘가 얼렁뚱땅, 어설퍼 보이는 이 게임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플롯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좀보이드. 그렇지만 그저 평범한 서바이벌 게임으로 착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계 속 치열한 생존 투쟁 끝에 살아남는 다른 주인공들과 다르게, 이 게임의 주인공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해피엔딩, 새드엔딩, 히든엔딩… 여러 엔딩으로 재미를 끌어올리는 기존 인디 게임들과는 다르게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엔딩은 단 하나, 죽음이다.


죽음, 즉 ‘게임 오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엔딩을 반복하며 플레이어는 점차 게임 속 세계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진다. 오픈월드 형식의 게임에 리스폰 지역을 제외한 넓은 지역에 알맞은 시스템은 물론, 난이도별로 분류된 다양한 모드를 즐기며 플레이어는 더 큰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살기 위해 배우고 희노애락을 즐기는 것이 게임의 목적.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어딘가 우리의 삶과 닮은 듯하다.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과 그 속에서 배우는 자신만의 생존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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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관점에서 이 게임은 현실성이 지극히 높은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이 게임은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뒤틀린 현실을 그대로 고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아이소메트릭뷰, 쿼터뷰 형식의 게임이다. 이는 3차원의 물체를 2차원, 즉 2D나 평면처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시야처럼, 캐릭터의 뒤나 옆에서 접근하는 물체나 좀비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미친 듯이 현실적인 디테일들은 단순히 쉐프의 ‘킥’처럼 사용되는 것이 아닌 게임 산재한 ‘주재료’, 즉 게임의 메인 포인트가 된다.


게임의 극대화된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은 단연 ‘생존자 특성’이다. 게임 내 모든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성별과 직업은 물론, 다른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각종 특성이 나온다. 이 특성들은 파라미터로 표현되며, 생존에 이득이 되는 특성은 마이너스로,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특성은 플러스로 표현된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일까? 당연하게도 무조건 마이너스, 즉 유리한 특성을 가진 채로는 게임을 시작할 수 없다.


이런 생존자 특성은 프로젝트 좀보이드를 좋아하게 된 계기와도 같다. ‘개인적인 특성’이라는 말에서 드러나지 않던 재미와 현실감은 그 특성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와닿는다. 대표적으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스트레스 증가로 엉망인 컨디션을 만들어 버리는 ‘골초’ 특성이나 좀비에게 발각될 확률이 증가하는 ‘넘치는 존재감’ 특성이 있다. 긍정적 특성으로는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튼튼한 ‘강철 위장’ 특성과 힘 스탯이 늘어나는 ‘통통함’ 특성이 재미있다. 현실성이 뛰어난 만큼 쉽게 죽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임 시스템 속에서 이러한 생존자 특성은 게임을 좌지우지하는 키 포인트가 된다.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약 70개의 생존자 특성과 미국 켄터키를 배경으로 한 넓은 지역, 캐릭터가 느끼는 정신적 상태를 표현한 무들과 전투 스킬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상상 이상의 재미를 전달한다. 또한 플레이어가 임의로 다양한 모드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를 통해 게임의 기존 룰을 무시하고 새로운 특성을 추가하거나, 시야 제한을 줄이는 등 게임의 재미를 확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챌린지 형태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기에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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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것은 결국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얼마나 남은지 알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마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 속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도전하는 프로젝트 좀보이드처럼 말이다.


게임 속 작은 실수는 ‘게임 오버’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의 크고 작은 실수들은 ‘게임 오버’를 대신해 후회와 자책 같은 고통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모든 실수는 언제나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부딪히고 돌아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생존의 베테랑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취의 기쁨을, 좌절의 분노를, 상실의 슬픔을 그리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낀다.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죽음을 향한 과정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낸다. 그렇기에 결말을 알면서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별 다를 바가 없다.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며 매일 충실해야 한다. 살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재시작 같은 옵션조차 없는 우리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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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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