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페스티벌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다. 밴드 음악에 익숙하지도 않고 하루 종일 무대를 오가며 즐길 만큼 체력이 강한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멀리서만 바라보는 세계였고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떼창은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 서서 음악을 들으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2025년 9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은 롤링홀 3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대규모 음악 축제였다. 메인 스테이지뿐만 아니라 사운드 캠프, 사운드 브리즈, 크로마, 버스킹 존까지 총 다섯 개의 무대가 운영되었고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관객들을 맞이했다.
페스티벌의 슬로건은 “Feel the Waves, Touch the Stars”였다. 그 문구가 처음엔 단순히 멋있게 들렸는데 막상 현장에서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관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니 왜 그런 말을 내세웠는지 알 것 같았다. 밴드 음악에 익숙하지 않고 오래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 일상에서 얻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평소 페스티벌보다는 좋아하는 밴드의 단독 공연을 더 자주 찾아갔다. 한 팀의 음악을 온전히 따라가며 몰입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익숙했고, 그게 더 편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특별히 페스티벌을 즐기겠다는 마음보다는 루시가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듣고 밴드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번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은 무대마다 뚜렷한 개성이 있어 옮겨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메인인 ‘사운드 플래닛 스테이지’ 외 4개의 스테이지들은 각 무대마다 다른 색깔이 있어 원하는 순간에 맞게 발걸음을 옮기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나는 것이 이번 페스티벌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사실 이번 페스티벌에서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무대를 챙겨 다닌 것은 아니었다. 함께 간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다니며 무대 사이를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의 공연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다렸던 루시의 무대를 보러 갔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band_lucy
루시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첫 곡 <아지랑이>였다. 한창 시험 준비로 지쳐 있던 시기에 노래 가사에서 큰 위로를 받은 기억에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사랑하기 위한 삶, 사랑하기 위해 한 사랑”이라는 구절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문장이다.
힘든 순간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따뜻하게 바꿔주었던 가사였기에 매번 루시 공연을 볼 때면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기를 늘 바라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야외무대에서 들려온 ‘아지랑이’의 선율이 마치 노래 제목처럼 은은하고 아른거리는 풍경을 만들어주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두 번째로 마음에 남았던 곡은 <내버려>이다. 이 곡은 <아지랑이>와 같은 앨범에 수록되어 있지만 사실 힘든 시절에는 잘 듣지 못하던 노래였다. 계속해서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때 “처음 온 길이라 넘어져도 어쩌라고”라는 가사가 마치 내 부족한 노력을 합리화하는 듯 들려서 차마 편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듣게 되니 그때의 내 모습이 함께 떠올라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한때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문장이 이제는 조금은 여유 있게 다가왔고 오히려 그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듯한 위로로 들렸다. 같은 노래라도 내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뜨거운 햇살이 더 두드러진 9월이었지만, 이번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은 단순히 좋아하는 밴드의 무대를 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인 여러 기억과 감정을 다시 꺼내어 보는 경험이었다. 어떤 곡은 힘든 시간을 위로했고, 어떤 곡은 과거의 부족했던 나를 떠올리게 했으며 또 어떤 곡은 이전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결국 이번 페스티벌은 나에게 단순한 공연 관람을 넘어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