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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하루가 멀다하게 AI가 진화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나도 요즘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있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일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존 본능 때문일까. 처음에는 구분이 됐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 둘의 경계가 사라졌다. 왜 나아져야 하는지조차 판단이 되지 않는 채로, 그냥 계속 달리고 있다.


언제까지 성장하고 자기계발에 몰두해야 하는 걸까. 죽을 때까지? 그러면 행복할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즈음에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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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목표가 되어버린 시대


 

스페인 철학자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가 쓴 이 책은 현대인이 처한 상태를 '정신적 빈곤'이라고 진단한다.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고갈된 상태를 말한다. 화면을 통해 끊임없이 자극 받고, 반응하고, 비교하고, 또 다른 콘텐츠로 넘어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은 줄어들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도 옅어진다. 저자는 이 환경을 '옴니스크린'이라 부른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디지털 환경이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까지. 이모지가 등장하기 전에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어휘를 동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표현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그러나 이모지 하나로 감정을 대체하게 되면서 표현은 획일화되고, 언어가 지닌 사유의 힘은 약해졌다. 사소해 보이는 변화지만, 이런 것들이 쌓여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 자체를 침식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포스트 행복'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의 행복은 선하게 살다 보면 운 좋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해서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고, 행복은 삶에서 집착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행복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맛집 방문, 해외 여행, 직장에서의 승진, 자기계발의 성과. 행복의 모습은 구체적인 체크리스트가 되었고, 이를 이루지 못하면 전적으로 개인의 탓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핵심은 이것이다. 과거의 행복에는 '행운'이라는 요소가 있었다. 행복은 노력한다고 반드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불행하더라도 그것이 곧 나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스트 행복은 이 방정식에서 행운을 제거했다. 성공은 긍정적 사고와 연결되고, 실패는 노력 부족으로 귀결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잠재력을 개발하고 긍정적 감정을 유지하라는 압박 속에 놓인다. 행복을 쫓을수록 오히려 불안이 커지는 역설. 읽으면서 내가 요즘 느끼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 그런데 왜 나아져야 하는지는 모르겠는 상태. 이 책은 그것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로 읽어낸다.


 

 

우아함이라는 낯선 처방


 

저자가 이 상황에 대해 제안하는 태도는 '우아함'이다.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단어가 처음에는 솔직히 잘 다가오지 않았다. 자기계발의 압박과 디지털 환경의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우아함이라니. 세련된 외양이나 고급스러운 취향을 떠올리기 쉬운 단어이기도 하고.


그러나 저자가 되살리는 우아함의 본뜻은 전혀 다르다. 어원적으로 우아함이란 '잘 선택할 줄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충분한 시간, 신중함, 판단력에서 비롯된다.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 속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치 없는 것을 걸러내며, 핵심적인 것들로 자기만의 기준을 구성하는 것. 반면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늘 선택할 시간이 부족하고,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다가 오히려 그것에 갇힌다.


이렇게 보면 우아함은 넘쳐나는 자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지적 전략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것, 그 판단을 위해 속도를 늦추는 것이 우아함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가식 없이 자연스럽고 평온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약해진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도 지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남는 질문


 

쉬운 책은 아니다. 철학서답게 개념이 촘촘하게 쌓여 있고, 다루는 범위도 행복, 시간, 공간, 언어, 감정, 두려움, 교육까지 넓다. 읽는 중간중간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우아함이라는 태도만으로 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잘 선택하라'는 말은 맞지만, 선택의 기준을 세울 여유조차 없는 사람에게 그 말이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리감도 끝까지 완전히 좁혀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유효하다고 느낀 건, 책이 주는 해답 때문이 아니라 책이 던지는 질문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내 삶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고 있는가. 더 나아지려는 이 노력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낸 강박에 끌려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면, 이 책은 그 멈춤의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붙잡아줄 것이다. 어쩌면 멈춰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 책이 말하는 우아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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