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르시아 로르카 공원

글 입력 2024.01.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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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만 되어도 해가 지기 시작하고 30분이 지나면 이내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는 이곳의 겨울에 익숙해질 때쯤 지난여름의 어느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작 3개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을 뿐이었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 다다른 것처럼 시각, 청각, 후각 그리고 살갗으로 느껴지는 공기까지 모든 것이 다른 그 순간. 시간이 흐르면 계절이 변한다는 그 당연하고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이토록 크게 체감해 본 적이 없다.


7일 중 대부분이 흐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렸다 그쳤다 하는 눈 때문에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아마 10월의 중순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눈이 된 비가 줄곧 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시 가방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우산을 펴는 일도 이제는 성가시게 느껴진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마치 그것이 어떠한 재난이라도 막아주리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비 내리는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누비는 이곳의 사람들이 내게 끼친 영향이다. 물론 비 맞는 일을, 축축한 옷과 머리의 불쾌함을 개의치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원체 비를 싫어했던 것만큼 여전히 나를 한없이 처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산을 쓰지 않고 걷는 것은 조금이라도 자연스러워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낯선 도시를, 그 속의 거리를 걷는 나의 모습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생뚱맞은 곳에 떨어져 버린 무언가처럼 받아들여 지지 않기를 바라는 얄팍한 마음.


그러니까 도시를 가득 채운 회색빛을 가로질러 걸을 때, 따듯하다 못해 후덥지근 한 공기가 몸을 감싸고 있던 계절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저기 걷다가 마주한 작거나 큰 공원에 옷자락을 돗자리 삼고 앉아서 내리쬐는 태양을 느끼다 보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무엇이든지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 여름의 순간 나는 스페인 남부의 작은 도시에 있었다. 그곳에서 치즈케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가게에 들러 초코 맛 치즈케이크를 하나 샀다. 사실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단 것들은 다양해지고 화려해지지만, 그것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오직 치즈케이크만으로 가득 찬 곳이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맛있을 것이라고. 오리지널, 초코, 피스타치오. 단 세 줄로 이루어진 메뉴판의 담백함과 치즈케이크 그 한 가지에 몰두하는 진심이 보장할 터였다.


디저트는 기본부터-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음식 철학에 따라 오리지널 치즈케이크를 처음 먹었을 때 나머지 두 개의 맛까지 모두 경험해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그 불가항력적인 치즈케이크와 작은 도시에서 오래 머물렀을 때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공백이 나를 공원으로 이끈 것이다.


그 공백을 이용해 3주간 지속되고 있는 여행의 피로를 풀 수도 있었지만 왜인지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이 도시를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인지, 이 여행에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느껴서인지, 여행에 왔으니 어디든 돌아다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마 모든 것이 한데 뒤섞인 복합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도시의 공원에 방문한 것은 그날부로 4번째가 되었고 어느 시인의 이름을 따 온 그날의 공원은 지금까지의 공원들 중 가장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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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가장 뜨거울 3시 즈음이어서 그랬는지 공원은 매우 한적했다.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들 3명과 공원을 돌며 운동 또는 산책 그것도 아니면 목적 없는 발걸음인지 모를, 어쨌든 움직이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 뿐이었다. 평소 유럽의 공원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적은 수의 사람들이었다. 그 한적함의 여유를 즐길 생각에 들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다 문득 ‘한적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가 의문이 들었다.


‘한적’이라는 단어의 온도. 북적이지 않고 고요해서 따듯하게 느껴지는 말. 그러나 공원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고, 공허했다. 해가 쨍쨍한 대낮의 장소, 그것도 푸른 잎들이 가득한 공원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기분은 아니었다. 높게 자란 나무들이 무색하게 그늘도 거의 없어 앉을 자리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뜨거움이 느껴지는 나무 벤치에 앉아 소설집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이미 반 정도 읽었던 그 책은 ‘너무 한 낮의 연애’였고 그때의 햇볕은 정말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으므로, 그 책을 읽기에 퍽 괜찮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치즈케이크의 달콤하고도 쌉쌀한 맛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아껴놓았던 마지막 조각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 나를 이 공원에 붙들어 놓았던 두 가지가 사라진 후, 열기 가득한 이 공원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오후의 여유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잔디밭이 나오지 않을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의 이름까지 가진 공원인데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의 생가의 외로움을 덜어내 줄 화사한 정원 같은 것. 그렇지만 그때 내 눈앞에 보이는 건 푸른 잎이 우거진 수풀 사이로 이어진 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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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이어진 길의 끝까지 가볼 수도,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시야 너머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길을 걷기 시작하기엔 날이 너무 더웠고, 저녁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돌아섬의 명분을 만들어냈지만 사실 나는 무서웠다. 열심히 걸어 마주한 풍경이 내가 기대한 그림이 아닐 때의 실망감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지독히도 싫어했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꼭꼭 숨겨왔던 못난 모습이다. 내가 노력해 온 시간이 그저 물거품을 만들어내는 발길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나는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리곤 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기대와 포기, 포기와 기대는 차곡차곡 쌓여 수많은 후회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먼 곳까지 와서도 여전히 쉽게 그만둬 버리고 마는 내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부끄러웠고 그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내가 지나쳐 온 것들을 떠올렸다. 그때 잡지 못한 손, 쓰지 못해 날아가 버린 생각들, 시작 하지 못해 놓친 기회와 영원히 볼 수 없는 풍경.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이젠 구분조차 하기 어려운 배배 꼬인 마음의 결과물들. 내게서 떼어낼 수 없지만 더 이상 몸을 불리게 두지 않을 것들. 앞으로 나는 두려워질 때마다 푸르렀지만 이상하게 쓸쓸했던 그 공원을 떠올릴 것이다. 머리 위로 떨어졌던 뜨거운 햇볕을 머금고 발을 내딛고만 싶었던 그때의 그 마음으로, 내 발버둥의 결과가 파도의 포말이라면 분명 무엇이든 적시겠지, 생각하면서.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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