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시에 대해 말하는 법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

글 입력 2024.04.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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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대해 말하는 법 [1]

전시 경험에 대해 질문하기


 

현 회사의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는 작은 갤러리들이 즐비한 한남동에 위치해 있다는 거다. 비록 출근길에는 버스를 한 번 더 타고 들어가야 해서 번거롭지만, 점심시간을 틈타 평일 낮 한적한 갤러리의 작품을 조용히 구경할 수 있다는 건 일상 속 나름의 호사였다.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시달리던 중 점심의 전시는, 작가와 나를 긴밀하게 연결해 외로움을 달래주곤 했다.

 

이런 이유로 전시를 자주 보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술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엔 망설임이 있었다. 단순히 시각적 쾌감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감상하는 편이라 ‘좋다’는 막연한 감정에 구체적인 이유를 붙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다.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것을 글로 써 타인에게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전시 감상은 언제나 글쓰기 소재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때문에 내가 전시 관련 글을 써보겠다며 일부러 문화 초대를 신청한 건 도전이라면 도전이다.

 

그리고 글을 쓰며… 난 그 도전을 막심하게 후회했다. 인과 없이 떠다니는 일차원적인 감상을 작품에 덧붙여도 괜찮은 걸까. 소재가 무엇이든 기승전 내 얘기로 귀결하는 재주밖에 없는데… 문화 초대라는 걸 받았으면 인상주의라던가, 마띠에르라던가 어디서 주워들은 ‘아무튼 멋있는 말’들로 작품을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차피 못한다.) 여러모로 궁색한 지식을 세상에 들킬까 봐 주눅이 들어 며칠이 지나도 글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어제는 때마침 운 좋게 전시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단순히 시각적 쾌감에만 의존해 전시를 봐도 되는 걸까’하는 질문에는 ‘굳이 모두가 디깅할 필요는 없으니 감상으로도 충분하지 않냐’는 답을, ‘전시 감상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자기만의 지엽적인 테마를 하나 정해놓고 그것을 위주로 글을 구성하는 편’이라는 경험담을 돌려받았다.

 

무엇보다 도움이 된 건 ‘나도 전시 감상 글이 막막하다’는 공감이었다. 다들 각자의 빈틈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감상을 믿고 더듬으며 글을 쓰는 거였다. 그렇다면 나 역시 잘 알지 못하는 전시에 대해 용기 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에 대해 말하는 법 [2]

주관적 감상을 믿고, 자신의 전시 경험을 말하기


 

Axel Jungstedt_In the Quarry. Motif from Switzerland_low.jpg

©Nationalmuseum Stockholm

악셀 융스테드 <스위스의 채석장에서>

 

 

악셀 융스테드의 <스위스의 채석장에서>라는 작품은 투박한 노동의 현장을 담았다. 도구와 바위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쇳소리, 땀에 범벅이 된 인부들, 흙먼지가 날리는 퍼석하고 텁텁한 공기가 연상되는 이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은 ‘고되다’ 혹은 ‘지긋지긋하다’였다. 한눈에 봐도 취향이 아닌 작품이라 대충 훑고 지나치는 나와 달리 P는 이 작품의 역동성과 묵직함이 멋스럽다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를 사로잡은 걸까. 나는 다시 한번 작품으로 돌아가 좀 더 머물러 보기로 했다.

 

내게 눈앞의 풍경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미적 재능이 있다면 이런 허름한 장면을 굳이 담지 않았을 텐데… 대체 이 화가는 왜 채석장 노동자의 일과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담은 걸까. 문득 드는 궁금증에 악셀 융스테드라는 화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읽었다.

 

"그는 채석장뿐 아니라 광산, 냇가의 빨래터 등에서 노동하는 노동자의 생활에 주목했다.”

 

그는 이런 장면’도’ 담은 것이 아니라 이런 장면’만’을 담은 화가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권태로운 노동의 장면이 그에게는 가치로웠던 거다. 같은 세상을 봐도 저마다 주목하는 것이 이토록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새삼 재밌었다만, 여전히 이 작품은 작품 자체로 내게 어떤 소유욕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한나 파울리 <아침 식사 시간>,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악셀 융스테드의 작품을 빠르게 지나쳤다면, 그 반대로 내 관심사를 잘 담아내 눈길을 오래 사로잡았던 화가도 있었다. 바로 한나 파울리다.

 

 

[크기변환]아침식사.png

©Nationalmuseum Stockholm

한나 파울리 <아침 식사 시간>

 

 

그녀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자기만의 렌즈를 통해 재현하는 표현력이 특히 탁월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라는 작품 속 흰 식탁보는 언뜻 보면 하나의 색(흰색)으로 보이지만, 사실 다양한 채도와 명도를 가진 색이 얼기설기 뒤섞여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쨍한 햇빛에 눈부실 때의 잔상을 표현하기 위해 흰색 위 색색깔을 과감하게 덧칠한 거다. 아마 화가가 이 작품에서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건 ‘오후 햇빛의 영롱한 눈부심’이었을 것이다.

 

 

[크기변환]그랜드피아노앞에서.png

©Nationalmuseum Stockholm

한나 파울리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그녀의 작품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에서 역시 신비스러운 감상을 남겨 오래 감상했던 작품 중 하나다. 꿈속 한 장면처럼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고 세밀한 묘사가 전부 생략된 이 작품은 러프한 동시에 몽롱한 심상을 주었다. 초점이 또렷한 그림들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흐릿한 그녀의 작품은 모든 부분을 반드시 선명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나는 대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구석이 있는 듯한 한나 파울리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그녀 이름을 기억해 가기로 했다.

 

 

 

전시에 대해 말하는 법 [3]

전시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기


 

혼자 전시를 가는 것도 좋지만 전시를 보다 촘촘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동행해 수다를 떠는 편이 가장 좋은 것 같다. ‘휴, 나만 모르는 게 아니구나’ 하며 안도할 수 있고 ‘이걸 이렇게 느꼈다고?’ 하며 타인의 시선을 흡수할 수 있고 ‘특히 이 부분이 너무 좋다!’며 호들갑을 잔뜩 떨어 자신의 취향도 한 번 더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호했던 이번 전시 감상의 포인트를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의 리뷰를 지표 삼아 더욱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은 고작 나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곳을 재조명해 시야를 넓혀준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관람자의 시선이 오고가는 '전시'는 아주 좋은 시선 교환의 장이다. 글을 쓰며, 팀원들의 시선을 빌려 전시를 구석구석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한 것처럼, 화가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구석구석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금까지 내가 전시를 찾아온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문필진 명함.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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