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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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감각이 삶의 지속에 무조건적인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현실에 대한 막막함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 무렵을 요약하자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첫 시작을 디뎌도 모든 도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으로 갈무리된다. 매일이 혼란스럽고 막막하고 답답한 나머지, 비약의 기법으로 쓰여진 응석을 부리곤 했었다.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가운데 제일로 나의 마음을 붙들어준 깨달음은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이었다. 소셜 미디어 등에서 처음 보고는 우스갯소리로 들리던 문장이 어떤 계기로 하여금 피부로 와닿는 깨달음을 주었다. 우선 귀여움은 나를 구해주었다.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땅 위로 건져내었다. 끌어올려지던 순간은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했으나, 그 힘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귀여움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리란 기대는 당연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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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여움을 구매했다. 그날은 바깥으로 차가운 비가 내리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략 몇천 원을 주고 서점과 편집숍이 결합된, 회현역 인근의 복합문화공간에서 스티커 한 장을 샀다. 주방, 공원, 과일과 같은 주제에 속하는 물건들이 그려진 조그마한 스티커였다. 내가 집어 든 것은 ‘der Park’, 공원이라는 주제를 지닌 것이었다. 초록색 배경의 그것에는 ‘Freizeit(여가 시간)’, ‘Spaziergang(산책)’, ‘Picknick(소풍)’이라는 글자에 걸맞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안팎이 모두 회색으로 칠해진 공간에서 상당 시간을 보냈던 무렵이라, 초록색의 활기참과 나무, 백조, 구름의 이미지가 나의 마음속을 마구 구르며 진동을 일구었다. 독어독문학 전공자로서 학교의 향취(!)가 풍기는 독일어 문구도 마음에 쏙 들었다. 결국 사그라든 구매욕이 다시 불타올라, 잘 열리지 않는 나의 지갑마저 들쑤셨다.

 

그렇게 그 조그마한 스티커 하나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이제는 이것이 어디로 향하던 누구도 모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함께 구매한 책 사이에 소중히 끼워 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말을 넘겨서 새로운 아침, 회색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마땅한 위치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결국 컴퓨터 모니터 옆 탁상달력에 기대어 세워두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돌려 바라볼 수 있고, 동시에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가져다 놓은 것이 생겨 뿌듯한 심정이었다. 조금이라도 이 공간을 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해방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   *   *


그렇게 새로운 매일이 시작되었다. 단지 스티커 하나를 가져다 놓아두었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상쾌할 수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에 빠졌을 때, 스티커를 마주하면 순간적으로 행복감이 차올랐다. ‘아,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며 “다시 해보자!”는 의지가 싹텄다. 귀여움은 잠시 머리를 환기하는 한편으로, 다시 현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를 유도했다.

 

그 이후로 나의 책상에는 귀여운 것들이 점점 더 생겨났다. ‘der Park’ 스티커의 이웃으로, 고양이가 이야기하는 스티커와 귀여운 아기 짐승이 볼을 뭉개고 누워있는 피규어도 들여놓았다. 귀여움이 더욱 늘어나자 나의 마음속에는 근거 없는 풍요로움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귀여운 것을 향해 ‘우리 애기’라고 부르는 습관은 일종의 책임감을 일깨워, 힘들 때마다 나는 그것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래, 내가 열심히 해서 너희를 먹여 살릴게!’라고 생각하며 한 가족의 가장처럼 약속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귀여움은 정말로 불가항력의 기쁨을 주었다. 그것이 정말로 그러했음을 깨달은 것은 어느 날 책상을 정리하다가 깨달았다. 유달리 나의 책상에 이것저것이 놓인 것을 알아차리고 나니, 그것들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알았다. 귀여운 스티커와 피규어들은 그저 눈앞에 놓인 것을 막연하게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텐데, 그 시선이 하필 나를 향해서 말로는 채울 수 없는 애정을 주었다. 말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살아있지도 않은 것들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의미를 지어내냐며 비웃어도 이것은 무생물에조차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거는 인류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귀여운 것이 주는 힘을 실감한 후로 더욱 귀여움을 탐닉하게 되었다. 귀여운 문구류, 귀여운 동물, 그리고 가끔은 귀여운 사람을.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귀했다. 마치 어린 시절 보물 상자에 숨겨두고 아무도 없는 사이 나 홀로 뚜껑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보던 추억처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보곤 했다. 겨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내 삶이 만족스럽도록 느껴졌다. 우스운 일이었다. 모든 힘을 쏟아 노력하고 가끔 성취를 거두어도 금세 의심하고 깎아내리며 모든 것을 부정하던 내가 이렇게나 별것도 아닌 것에 내 삶을 완전히 긍정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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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17번째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도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귀여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그곳에 흥미가 생겼다. 내가 모르는 귀여움의 세계가 얼마나 광활할까. 그 귀여움들은 어떤 배경에서 비롯된, 어떤 성격의 존재들일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코엑스로 향했다.

 

이날도 바깥이 회색빛이었다. 저녁 무렵부터 비 소식이 있었다. 회현역에서 초록색 스티커를 샀던 그날처럼 우산을 한쪽 팔에 끼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장 바깥에도 사람이 상당하더니, 전시장 내부는 그야말로 사람 밭이었다. 이 정도라면 다른 행사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들로 넓은 길이 가로막혀 길을 터서 진입하기도 어려운 탓에 우선 가볼 수 있는 부스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걸음마다 수많은 부스가 눈에 걸렸고, 그 부스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무한한 세계가 있었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창작의 영역은 정답이 없는 만큼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느냐는 것부터가 불명이다. 각각의 창작자들이 자기만의 컨셉을 구축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기까지 어찌나 힘이 들었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세계가 완성되어도 현실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인고의 시간이 말끔히 갈무리되어 이곳에 모두 모였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과 노력의 위압감이 존경으로 느껴졌다.

 

귀여움이란 그렇게나 대단한 일이다. 귀여운 평면의 세상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부러 시간과 노력을 쏟다니. 게다가 누구도 시키지도 않은 일을, 어쩌면 칭송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을 말이다. ‘귀여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사람의 열정을 그토록 들쑤시는 것이다.

 

*   *   *

 

아주 작고 소박한 것들이 주는 감동이 있다. 누구나 어느 상황에서건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귀여움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의미 없는 것이라 부를 수도 있으나, 사람에게서 생긴 상처를 사람을 닮은 것으로 치유받는다는 모순은 대단하다고 본다. 귀여움은 오롯이 인간의 발명이지만, 대면하는 인간 이상의 가치를 끌어내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모일 수 있는 것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그것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의미는 ‘좋아한다’는 느낌에서 기인한다. 좋아한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다가오는 실체감을 지닌다. 상처 입고 막막한 현실에서도 불가항력의 미소를 띠게 만드는 강력한 힘, 허공으로 손을 뻗어도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새삼 일깨우는 사람의 온기, 따스함을 상기시키는 촉감을 통해 현실로 정신을 되돌려놓는다.

 

귀여운 모습이 지닌 지배적인 힘은 이렇게나 평화롭고 분명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간에게 마땅히 필요하리라 본다. ‘힘들어도 해야지 어쩌겠어’, ‘누구나 그렇게 힘드니까 그냥 버텨’와 같은, 현실적이지만 지극히 쉽고 평면적인 조언은 오히려 비수로 꽂힐 뿐이다. 다만 말의 포장지를 바꾸듯, 귀여움이 주는 산뜻함으로 마음을 북돋우고 용기를 불어넣는 힘이 어찌 대단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러한 힘을 믿고 있다.

 

그러니 귀여움을 좇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쉽지 않은 매일을 향해, 이렇게 인사를 보내고 싶다. 여러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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