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 순간 기대와 예상을 배반하는 피아니스트 -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글 입력 2024.06.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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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liburn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행보는 줄곧 모두의 예상을 비껴갔다. 우승 기념 리사이틀 투어에서 모두가 콩쿠르 레파토리를 연주하길 기대했지만, 그는 콩쿠르를 준비하며 신물 나게 쳐온 곡들을 치는 대신 바흐의 신포니아를 포함한 다른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클래식 명문 레이블 데카와 계약한 후에 발매한 그의 첫 스튜디오 녹음 앨범은 그가 인터뷰에서 줄곧 열정을 보여온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그의 대표적인 레파토리로 알려진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 곡도 아닌, 쇼팽 에튀드 전곡이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신보 발표 후 2024 리사이틀 투어는 당연히 앨범 레파토리를 따르는 듯했지만, 국내 투어 약 한 달 반을 앞두고 돌연 프로그램 변경을 고지했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배반했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자신의 선택을 언제나 ‘옳게 만들어’ 버리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임윤찬의 인터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가 얼마나 묵묵히, 그러나 저돌적으로 음악에 헌신하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다. 그의 모든 선택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의 음악을 구현해 내기 위한 것에 달려 있다. 설사 모두의 기대와 예상을 배반하더라도 궁극에는 모두를 설득해 버리고야 마는 힘은 음악을 향한 그의 사명감과 진심에서 나온다.


이번 국내 리사이틀 투어에서도 어김 없이 '기대를 깨고' 그가 꺼내 든 프로그램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19-1번과 85-4번,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7회에 걸친 투어 중 필자는 롯데콘서트홀과 부천아트센터에서 총 2번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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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포문을 연 멘델스존의 <무언가>는 영제가 “Song without Words”인 만큼 얼마나 '노래'처럼 들리느냐가 관건인 곡인데, 임윤찬은 피아노로 노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서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뒤이어 마치 한 곡인 것처럼 쉼 없이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를 이어서 연주했다. 임윤찬은 매 순간 다채로운 음색으로 변화를 주며 계절의 풍경들을 그려나갔다. 음향이 섬세하기로 소문난 부천아트센터에서는 유난히 여린 음을 활용하는 부분이 많았다. 쉼을 생략하거나 자유자재로 루바토를 활용하는 등 곡의 맥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박자의 통제권을 쥔 채로 자유롭게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2부에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호로비츠의 버전으로 연주할 것이라 예고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투어에서 연주된 임윤찬의 <전람회의 그림>은 딱히 그 누구의 버전도 온전히 따르지 않았다. 호로비츠 버전에서 차용된 부분도 있었지만, 본인만의 변주와 해석을 가미한 '임윤찬 버전'이었다. 예컨대 ‘난쟁이’에서는 강렬한 베이스 트릴로 폭발음과 같은 효과를 냈고, ‘바바야가’에서는 두 차례 사나운 글리산도로 한층 더 요란하고 무시무시한 마녀의 모습을 표현했다.

 

특유의 명징한 음색과 한계가 없는 듯한 음량 조절이 <전람회의 그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상대적으로 울림이 큰 롯데콘서트홀에서는 특히 이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광활한 홀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풀 오케스트라 부럽지 않은 음량을 구현했는데, 어느 구간에서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피아노 한 대에서 하프 소리, 종소리, 온갖 관현악 소리, 정체불명의 굉음까지, 다채로운 음색이 시시각각 뿜어져 나왔다. 임윤찬은 본인이 상상하는 각각의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자 피아노 음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다.

 

‘튈르리 궁전’이나 ‘껍질이 붙은 병아리의 발레’, ‘리모주 시장’처럼 템포가 빠른 곡에서는 놀라운 속도로 질주하면서도, 정확하다 못해 날카롭게 할퀴는 듯한 음색이 역시나 돋보였다. 피아노를 때려 부술 듯이 무시무시한 음량과 템포로 폭발시킨 ‘바바야가’를 지나, 대망의 ‘키예프의 대문’에서는 온몸을 피아노에 내던지며 더는 커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음량의 한계를 다시금 뛰어넘었다. 곡의 종결부에서는 규칙적인 성당 종소리 위로 고음부의 찬란한 노래가 의도적으로 조금씩 어긋났는데, 눈앞에 유럽 대성당이 펼쳐지는 듯했다. 그렇게 임윤찬이 가이드하는 전람회를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관람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공연은 순식간에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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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어에서 임윤찬의 연주는 그의 실제 행보처럼 매 순간 기대와 예상을 배반했다. 반복 구간은 단 한 번도 똑같이 치는 법이 없었다. 루바토로 서정성을 강조할 것 같았던 부분에서는 정적 없이 밀어붙였고, 리듬에 맞춰 빠르게 돌진하리라 기대했던 부분에서는 뜻밖의 긴 정적이나 불규칙한 루바토로 음을 밀당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익숙한 멜로디라인을 갑자기 죽이고 숨어 있던 왼손 베이스의 노래를 비추는 식의 특기 역시 예측할 수 없는 구간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다. 언제나 신기한 것은 이런 그의 ‘예측불허함’이 결국 설득된다는 지점이다. 돌발적이지만 필연적인 대자연처럼.

 

마지막 ‘키예프의 대문’에서 완전히 산화해 버린 그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곳에 임윤찬은 없었다. 음악만이 남았을 뿐. 음악이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싶다가도, 또 그의 유명한 말처럼 음악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짜”라는 걸 온몸을 바쳐 실현해 내고야 만다. 

  

임윤찬은 커튼콜 때 특유의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걷거나 달려가곤 한다. 박수받는 것이 여전히 어색해서 나오는 다급한 움직임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눈에 그의 걸음은 그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는 내 갈 길을 가리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생각한 대로 치겠소. 그렇게 선언하는 것만 같다. 

 

음악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가겠다는 이 피아니스트의 행보를 우리는 그저 묵묵히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를 향한 뜨거운 호응과 지지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다. 무엇을 하든 결국 그는 우리를 설득시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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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향유하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감상이 퇴색되기도 하고 더 짙어지기도 한다. 그의 공연을 관람한 경험은 겪은 당시에도 강렬하고 자극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짙고 깊게 나를 파고드는 것 같다. 이 경험은 그가 들려준 음악만큼이나 나를 날카롭게 할퀴고 터뜨리고 붕괴시킨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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