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 Class 1>은 흥행과 호평을 동시에 잡아 소년 만화 장르물로서의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다. 속도감 있는 액션, 몰입도 높은 관계성, 케미를 한껏 살린 젊은 배우들의 호연까지. 분명 장르적으로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는 점엔 이견이 없지만, 다음 시즌인 <약한영웅 Class 2>를 기다리며 한편으론 이 작품이 여타 소년 만화 장르물과는 확연한 차별점을 줄 수도 있었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해보고 싶다.
처음 <약한영웅 Class 1>의 소개글과 로그라인을 보았을 때 “다양한 종류의 폭력에 맞선 약한 영웅들”이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주된 감상 포인트는 육체적으로 약한 주인공 연시은이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도구를 이용하는 색다른 액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육체적인 능력으로 위계 질서가 정해지는 남학교 세계관에 신선한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을 거라는 지점에서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육체적 능력이 아닌 다른 무기로 이런 세계관에 의문을 던지고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며 새로운 대안적 "영웅"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약한영웅"이란 제목에 그보다 더 걸맞은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이 과연 기존 소년 만화 장르의 문법을 비틀면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자못 기대했다.
그러나 공개된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지칭하는 것이자 이 작품의 주요 컨셉이기도 한 “약한 영웅”이란 주제가 정말 효과적으로 드러났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인공 연시은의 액션은 분명 신선하고 통쾌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제나 최종 문제 해결은 육체적으로 월등히 강한 수호의 등장으로 마무리되었다. 더군다나 극중 시은은 육체적인 능력이 약하다고 언급되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굽히지 않는 정신적 담대함과 끈기로 무장되어 있는 데다가 정작 실전에서는 제법 신체도 잘 활용한다. 물론 이는 드라마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약한 영웅"이라는 주제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일 아쉬웠던 것은 극 후반 스토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범석과 수호의 대립이 다소 안일한 방식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수호는 타고난 신체적 재능과 직설적인 성격 덕분에 어떤 폭력 앞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다. 반면에 학교와 집 안팎으로 언제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범석은 소심한 성격과 나약한 신체 조건을 타고난 인물이다. 만사에 유쾌하고 당당한 수호와 우유부단하고 예민한 범석이 대립할 것이라는 건 당연한 전개였을 것이다.
문제는 캐릭터 설정으로 놓고 보았을 때 모든 매력적이고 호감인 성격은 수호에게 몰아주고 제일 밉상인 부분들만 범석에게 몰아주고는,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가는 부분을 큰 고민 없이 전개했다는 것이다. 수호는 대단히 호감인 성격으로 설정된 것을 넘어서 어떠한 결핍도 없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부모가 없고 불우하다는 가정 환경은 그저 팩트일 뿐,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성격적 결함이나 결핍도 없는 인물이다. 반면 그와 대립하는 범석에게 부여된 설정은 어떤가. 가혹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에게는 수호처럼 신체적, 정신적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수호 옆에서 과거에 얽매여 끙끙대는 범석은 상대적으로 '찌질'해 보일 수밖에 없다. 수호와 마찬가지로 시크하고 담대한 성격을 가진 시은과 영이까지, 이 드라마에서 범석은 사실상 유일하게 불편하고 답답한 빌런 역할을 도맡고 있다.
그렇게 밉상으로 설정해 뒀으면서 그가 처한 폭력에 대해 어떤 해결도 없이 그저 빌런으로 치닫고 강제로 추방 당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야만 했다는 것은 참 속상하다. 그저 찌질하고 야비한 빌런으로만 마무리되기에는 범석에게 부여한 수많은 설정들이 자극적으로 소비되고 만 것만 같다. 마초적이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계관에 쉽게 편입되지 못하는 약한 인물은 결국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빌런으로 다가오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힘겹게 왕따당한 과거를 털어놓은 범석에게 "너가 뭘 잘못했길래?"라고 반문하는 수호의 모습은 마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찌질한' 모습을 반복하는 범석에 대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이는 마치 범석이 왕따 당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찐따에게 잘해주면 안 되는 이유" 등으로 회자되곤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이 결국 학교 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고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나 싶어 더 안타깝다.
누군가 소년 만화 장르가 오락성에만 충실하면 되었지 뭘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약한 영웅>이 세 인물의 관계성을 묘사하는 데 진지했고, 단순히 오락성만 추구하는 가벼운 작품으로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무게감에 걸맞는 성찰이 더 있었으면 훨씬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다. <약한영웅 Class 2>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에 맞선 약한 영웅들"이라는 로그라인에 더 걸맞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