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흔히 보고 또 봐도 전율이 흐르는 명작을 두고 하는 말로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춤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들을 뜻한다.

   

나에겐 만화 <진격의 거인>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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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소년 매거진’에서 10월 호부터 월간 연재된 이 작품은 11년 7개월 만에 총 34권의 단행본과 한 권의 특별판으로 마무리되었다. 전 세계 누적 발행 부수 1억 4천만 부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권 수가 비교적 짧은 편임에도 1억 부를 넘겨 권당 평균 판매량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의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벽 안’과 ‘벽 밖’으로 나뉘는 거대한 스케일의 세계관 그리고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까지 살아있는 것 같은 강렬한 캐릭터성과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철학까지 단순한 만화가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대 서사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에 빠져들다 보면 그 세계를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2023년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진격의 거인展 FINAL> 전시에서 그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작가의 거친 화풍이 느껴지는 복제 원화부터 실물 전시품과 작품 속 ‘지하실’을 구현해낸 공간, 그리고 스페셜 영상과 작가의 오리지널 원화까지 더욱 풍성해진 전시로 원작의 세계관을 더욱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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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 초본이 주는 묵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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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한다. ‘벽 안’과 ‘벽 밖’ 두 개의 선택지를 통해 시점을 다르게 보여줌으로써 작품으로 만났던 주요 장면들을 색다른 느낌으로 안겨준다.

 

‘벽 안’은 작품의 주인공인 엘런, 미카사, 아르민의 세상이다.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을 통해 느끼는 좌절감과 그 너머로 언제 보일지 모르는 거인의 공포 그리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이 작품 하나하나에 녹아 있다.

 

만화로는 느낄 수 없던 섬세하고 거친 작가의 작화를 직접 느낄 수 있었는데 인간이 극한의 공포를 앞두고 있을 때 느끼는 절망감이 선으로 표현되어 그림이 움직이지 않는데도 마치 거인이 눈앞에 있는 듯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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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밖’은 벽 안의 인물들과 대적하는 에르디아인들의 세상이다. 그들은 거인의 힘을 물려받은 민족으로 마레 제국 내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어쩌면 벽 안의 인류보다 더 높은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 차갑고 냉혹한 세계를 살아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버리고 간 같은 혈통인 ’벽 안‘의 인류를 증오하며, 거인의 기술을 활용하여 마레인들의 군사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시는 같은 장면을 상반된 두 인류의 시점으로 다르게 보여주며 작품에서 보여줬던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벽 안과 벽 밖, 잘못을 저지른 쪽은 어느 쪽인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은 어느 쪽인가?

 

정의 내릴 수 없는 싸움을 따라 흐르다 보면 어느새 다시 한번 작품에 과몰입 하게 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투신이나 거대한 스케일을 표현해 낸 장면들은 원화 벽면에 관련 배경을 크게 넣음으로써 작품의 생동감을 더욱 살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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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류의 전투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되는 부분인 엘런과 라이너의 거인 전투신, 리바이 병장과 짐승 거인의 전투 등 혈투를 통해 갈등의 최고조를 보여줌으로써 운명의 장난 같은 두 인류의 대립 구도를 장면마다 곱씹어 볼 수 있다.

 

작가는 발매 10주년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장면의 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고 답하였는데 금방이라도 종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작화를 보고 있으면 작가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거인의 포효가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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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잔혹해. 그리고 아름다워 -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직접 체험해보는 상상의 세계


 

원작의 스토리를 따라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작은 커튼 앞에 서게 된다. 옆 벽면에 아홉 거인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읽으며 기다리다 보면 영상이 시작될 때 커튼 안 쪽으로 입장하게 된다. 커다란 와이드 스크린 앞 집들이 참혹하게 부서져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작품 속 전쟁터에 들어오게 된 것 같아 숙연 해진다.

 

이 영상은 2019년 도쿄에서 개최된 <진격의 거인展 FINAL> 전시를 위해 제작된 영상으로 진격의 거인과 갑옷 거인의 장대한 전투가 약 10분간 펼쳐진다. 원화의 그림체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 애니메이션판과는 또 다른 압도적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4채널의 입체 사운드가 전시관 전체에 울려 퍼져 단조로울 수 있는 시각적 체험에 청각 효과를 더해 세계관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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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실물 전시품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낡은 미카사의 머플러, 그을리고 찢긴 조사 병단의 망토 등 참극을 전하는 물건들을 보며 작품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전시 상황에 있던 인물의 물건처럼 느껴져 무겁고 거대한 이 싸움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최초로 ‘엘런의 집 지하실’을 고증하여 실물로 재현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하실은 거인과의 전투를 통해 수많은 인류의 희생하면서 탈환한 서사의 변화구와 같은 상징적 장소이자 작중 ‘벽 밖’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는 이야기의 전환점이다. 사진으론 담을 수 없는 지하실 특유의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로 지하실에 대한 고증이 이뤄져 있어 이곳에서 비밀을 간직한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모든 서사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지하실에 위치한 주요 물건들도 세밀하게 고증되어 있으니 방문을 앞둔 관객이라면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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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 면을 가득 채운 거대 스케일의 디오라마도 빠질 수 없다. 커다란 바위로 짓이겨진 엘런의 집과 지하실이 보이는 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작중 가장 바깥에 있는 ’월 마리아‘의 전투 장면을 디오라마(3차원의 축소 모형) 재현하고 있다.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조사 병단들의 피겨는 진격의 거인 팬이라면 작중 어떤 장면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포즈와 표정이 세밀하게 구현되어 있어 작품의 장면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재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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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한쪽 벽면엔 낯선 모양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는데 관객이 직접 거인이 되어보는 포토존으로 벽의 뒤로 가 거인의 시점에서 월 마리아를 바라볼 수 있다. 반대로 거인이나 인간으로 선택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흥미로운 포토존도 재현되어 있는데. 월 마리아 최종 탈환 작전 속 짐승 거인과 돌진하는 거인들을 입체감 있는 구조로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거인이 되어 함께 뛰거나 조사병단이 되어 이에 맞서는 포즈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 전시가 주는 ‘선택’의 의미를 체험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쪽을 향해 진격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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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바쳐라! - 11년 그리고 7개월. 선의 흔적으로 가득한 작가의 방


 

주요 캐릭터를 소개하는 구간인 ‘영웅들’ 곳곳에는 인물들의 서사와 성격이 디테일하게 설정되어 있어 작중 주요 장면을 보며 인물의 시점에서 감정이나 생각을 보니 개개인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촘촘하게 짜인 덕분에 더욱 비현실 같은 이야기가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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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당시 작가의 생각과 후기가 그림 밑에 작게 표현되어 있었는데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이기에 마냥 진지한 사람일 것 같았지만 글에서는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이 느껴져 피식하고 웃게 되었다. 특히 여러 장면에서 거울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는 후기는 작가가 작품과 같은 포즈를 하고 연기했을 생각을 하니 멀게만 느껴지던 천재적 작가에게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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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압권이었던 공간은 10년 연재 마지막을 앞두고 이뤄진 작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벽면을 가득 채운 스토리보드와 그 페이지를 꽉 차게 메우고 있는 선들을 보니 수없이 지우고 채워나갔을 작가의 고뇌로 가득 찬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인터뷰에서도 작가는 솔직하게 말한다. 연재를 오래 할 수 있는 만화를 그려야 수입이 늘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대사 시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예술과 현실 그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워왔을 그의 흔적들 속에 둘러싸여 스스로 수없이 되묻는 시간들을 가졌을 작가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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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단 한 장으로 존재하는 작가의 오리지널 원화가 이번 전시에선 크게 의미한다. 진격의 거인 세계관의 마침표를 찍은 두 장의 원화를 오리지널로 만날 수 있는데 작가의 청춘을 다 바쳐 그린 작품의 마지막을 그린 순간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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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바쳐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쉽게 해내지 못한다.


작품 속의 병사와 전사들이 그랬듯 작가 또한 자신을 바치며 만들어진 명작에 다시 한번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형 전시 <진격의 거인展 FINAL>은 2026년 6월 19일부터 11월 1일까지 DUEX 홍대 1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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