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하늘이 유달리 하얗고 파랬다. 높은 창공이 솟구치듯 내려왔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내 쪽으로 몸을 넘어뜨렸다.
그러니 우리는 악장이 끝나고 저도 모르게 박수 쳐버린 게 아닐까? 덕분에 지휘자가 아직 체력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뒤돌아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리게티 ‘론타노’
아주 처음엔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그 생김새는 이명처럼. 듣기 좋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살며시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나 알기도 전에 그냥, 이미 그곳에 들여놓아져 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챌 수 있게.
오른쪽에서 오는 소리와 왼쪽에서 오는 소리가 살며시 중첩된다. 사방의 것들이, 이를테면 공기만 한 것들이 소리를 얻어 전면으로 떠오른다. 그냥, 판단의 의미를 다 내려놓고 바닥에 가라앉을 수 있을 만큼 내려앉게 된다.
소리가 저 앞에서 이곳으로 희미하게 뻗어 오면, 관객은 닿아오는 곳에서부터 아래로, 또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는 꽉 붙잡혀 있을 것이다.
이 수상한 분위기가 어디에서 기원된 것인지 눈을 굴리며 찾아봐도 명확하게 추적되지 않는다.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힘에 나는 뒤로 밀려나고, 또 밀려났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공기 중을 탐색하다 이내 착륙했다. 원래 있던 것들 사이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협연: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
거의 처음부터 ‘어’ 했다. 어느 포인트에서 ‘색다름’을 느꼈던가?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건반을 누른 바로 그 첫음부터 나는 그와 내가 처음 만나는 사이임을 인지했다.
그래, 내 세상에 처음 나타난 피아노는 어떻게 생겼나? 놀라울 정도로 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살아’보다 ‘있다’였다.
음이 사진처럼 그때마다 박제되듯이. 0에서 시작해 서서히 10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0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10. 나타날 때도 10이고, 그를 제외한 것은 0이다. 그렇게 시작했다.
발바닥이 흙 위에 딱 붙어 빈틈없이, 어디 튀어나온 곳 하나 없이, 평평한 면을 다 눌러버린다. 내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주로 ‘물방울’을 머릿속에 쉽게 떠올리곤 했는데, 그건 건반의 마지막 끝이 아주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때의 곡선을 마주했을 때였나 보다.
그의 건반은 한시도 땅 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끝까지 붙어 있다. 그 음이 연속된다. 든든함과 끈기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와중에 향기롭다. 지층 위에 딱 붙어 있으면 그 아래에 가해지는 무게가 눈에 들어와야 하지 않은가? 전혀. 오히려 소리의 바닥 끝까지 가벼운데, 그 마지막 선의 두께감이 아주 짙고 밀착력 있다.
이게 다 겨우 음 하나를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음이 끝없이, 정말 쉴 틈 없이 굴러간다고 생각해보시라. 거기다 느릿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절대 조급해지지도 않는다.
굳이 앞서 나가서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 같은 타이밍에서는 되레 아주 조금 뒤로 가서 압도한다. 분위기를 집어삼키는 그 가속의 구간에서는 오히려 아래로 깊게 무게를 더한다. 무조건 이 구간에서는 화살표를 앞에 두고 속도를 올리는 게 좋은 버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리를 내려치는 것도 아니고, 강타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바닥을 짚는다. 무섭도록 다 짚어나가는데, 놓쳐지는 음이 없다.
하나 정도는 뒤로 갈 법도 한데, 하나씩 무표정한 얼굴로 강도를 조절하면서 피아노 위로 상승하더니, 공간을 눌러버린다. 잡아삼켜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사운드가 꾹-꾹- 공간을 눌러낸다.
그 아래에는 향이 있었다. 조너선 노트가 흩뿌려질 영역을 절묘하게 짚어내면, 피아노가 소리를 공기 중에 퍼뜨린다. 아니, 점령하는 수준이겠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놓아지는 이 힘에 붙들린다.
카덴차는 어땠던가? 보라색 황소 한 마리가 깃발 하나를 들고, 치밀하게도 온갖 곳을 다 마중 나가는데 코끝이 아렸다. 빗소리가 지나간 다음에는, 고르게 퍼질 수 있도록 몸집을 작게 두고 방울방울 노래하더라.
정말 특이했던 건, 나는 그의 음의 겉선이 이토록 두텁다고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소리 선의 끝자락에 눈이 갔다는 점이다. 정말 마지막 끝선에는 꼭 조명이 달려 있었다. 가뜩이나 진득해서 미칠 노릇인데, 끝에는 내 손가락 마디만 한 파란 종소리가 담겨 있으니 뭐 하나 그냥 넘겨 들을 수가 없다.
다시 이 악장의 익숙한 첫 시작이 돌아왔을 때는 날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너무 좋은데, 페이지를 읽어주는 이가 어찌나 활자를 하나하나 다 살려서 읽어주는지. 이 1악장만 해도 연주가들에게 이 곡이 얼마나 빡빡한지,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그 포인트들이 확대되어 살아 있으니 내가 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2악장이 시작되고, 검은 정장을 입은 연주가는 눈을 감고 왼손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기도, 양손을 내려놓고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기다리기도 하며,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오른편에 앉아 그가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 그 손 모양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음악 안에서 지금 얼마나 자신의 것을 소리로 드러내려 하는지 표정으로, 또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짙은 감각의 파도는 소리의 감정 안에서 마구 요동치는데, 연주가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지 않았다. 모든 열기가 손 안에, 악기 위에만 가득했다.
전율을 노래하고, 거대한 보랏빛 파도를 들여놓지만, 오히려 사람은 뒤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 앞서 있는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사실 불필요한 얘기지만,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워낙 특이해서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파도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물기에 젖지 않은, 바람 한 톨에 흩날리지 않는 저 꽃 하나가 놀랍다. 어떻게 생김새는 100년이 넘은 나무인데, 분위기는 꽃을 닮아 있나?
3악장이 다가올 적엔 아주 살짝 겁을 먹었고, 겁먹을 만한 사운드를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으르렁거리며 만들어냈다. 진짜 오늘의 조합은 피아노 독주자를 한껏 빛내주기보다, 오히려 함께 모여들어 튀어버리는 조합이다.
호랑이와 황소가 들이받는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기교고 뭐고 모르겠고, 돌격해오는 앞바람에 그냥 눈앞에 놓이면 놓인 대로, 빗겨가면 빗겨가는 대로 마주했다. 여기에 후진이고, 다른 선택지고 아무것도 없다. 그냥 끝날 때까지 제대로 승부를 봐야 한다.
끝으로 향해 갈수록 추진력이 붙고, 있지도 않았던 머뭇거림이 사그라진다. 작은 별 가지고는 묘사 불능이다. 라흐마니노프가 어느새 땅에서 자라나 하나의 밤이 되고, 우주가 되었다. 그걸 놓치지 않고 끝까지 다 지켜봤다. 하나도 빠짐없이. 애초에, 놓아주질 않는다. 그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3번 ‘폴란드’
길을 걷는 때에는 다 까닭이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1악장의 여정을 떠나는 와중에서만큼은 별다른 생각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왜일까? 지휘자의 지휘봉 끝이 유달리 젠틀하기도 했고, 낮게 웅얼거리는 저녁 쪽의 이야기를 은밀히 잘 이끌어냈기 때문이겠다.
신기했던 것은 호흡의 타이밍이었다. 조너선 노트가 먼저 앞서 있던 것도 아니고, 오케스트라가 먼저 앞서 나간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 뒤로 물러나지도, 앞서 나가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정박에, 딱 필요한 순간에 앞길을 깔아놓았다. 오늘은 꽤 여정이 길지 않은가. 시작부터 너무 이르게 모두가 잠에서 깰 필요는 없었다.
멀지 않은 지점에서 나타난 익숙한 선율, 딱 들으면 “차이콥스키인가 봐” 하고 추측하게 되는 선율은 더 이어 듣고만 싶은데 금방 사라져 버려서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남는다. 하지만 그 뒤의 것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해서, 떠나보낸 줄도 모른 채 떠나보냈다.
요란하지 않지만 꽤 용맹한 자명종 하나를 꺼내 들었다. 대놓고 소리를 지르지는 않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이불 끝을 잡아당겨 냈고, 스멀스멀 전진하는 바다 하나를 이용해 이쪽으로 생기를 은은히 불어넣었다.
고른 수면 위에 철썩철썩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그 위를 무서운 줄 모르고 날아다녔다. 부딪힐 듯 부딪치지 않고 서로를 스쳐 다녔다. 요동치는 것과 향하는 것들을 머리 위에 두고, 나는 흰색 의자에 앉아 고개를 높게 들고 눈에만 담았다.
하늘이 유달리 하얗고 파랬다. 높은 창공이 솟구치듯 내려왔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내 쪽으로 몸을 넘어뜨렸다. 그러니 우리는 악장이 끝나고 저도 모르게 박수 쳐버린 게 아닐까? 덕분에 지휘자가 아직 체력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뒤돌아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이어진 2악장은 내게 이국 땅의 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슨 색의 치맛자락일까 상상하게 만드는 리듬으로 시작되었다. 시작은 구두를 신은 발끝에, 나아가는 길은 넓게 펼쳐낸 팔과 손 안의 부채를 닮아 있었다.
무슨 말일까? 왈츠를 추다 보면 누군가 팔을 바깥으로 뻗을 때가 있다. 팔 안쪽이 드러나면, 그 팔 길이만큼 시원하게 뻗어낸 속 시원함이 서울시향 안에 담겨 있고, 부채가 부드럽게 고갯짓하며 인사할 때의 우아함이 오늘의 선장의 지휘봉 끝에 맴돌고 있었다.
부드러운 말을 건네야 할 때였다. 장난감을 들고 있는 어른의 다정한 눈인사를 나눌 때이기도 했다. 오늘의 주역은 아무래도 관악기인 듯했다. 숨소리도, 떨림 하나도 들리지 않게 음을 조절해내고 있었다. 여정이 옆으로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풍경을 보여주고, 손짓을 건네고, 슬쩍 웃어주면서!
3악장에 이르자, 해가 뜬 지는 좀 되었고, 이유도 모르게 멜랑콜리해지는 때가 찾아들었다. 누구 하나 나를 놀리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다. 뭔가를 잃어버렸거나, 혹은 잊어버린 게 분명한데 찾는 일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지친 걸까? 괜스레 울적해진 걸까. 지나간 어제보다 다가오는 오늘이 아쉬운 까닭은 무엇일까? 소중히 여긴다고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하는 걸까?
그저께는 무엇을 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웃음이 났다. 어찌 나는 지나친 것도 소중히 여기질 못하면서 당장을 아쉬워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관악기의 구름을 가만 따라갔다. 고요한 들판을 그려보았다. 그 위에는 다 붙잡지도 못할 하늘이 있었다. 우리는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다. 조용히.
4악장에서는 다시 긴 호흡의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양탄자 위에서 하는 작은 마술피리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 조그만 것이 어디를 가는지도 일러주지 않은 채 여정을 떠났다. 제 길이 있나 보다.
고개를 숙여 가만 살펴보면 내 상상만큼은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쉽사리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현악기가 단체로 짧은 꽃춤을 시시각각 추기 시작했다. 꽤나 장난스러워 보이는데, 꽤 매혹적이라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나는 내가 앞으로 가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타박타박 신발 소리를 냈다. 아니, 났던가? 옷을 새 부리에 붙잡힌 채 끌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 주저앉아 있던 몸이 다시 일으켜 세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음은 아직 들판에 남아 있는데, 음악은 어느새 다음 장면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5악장. 이 피날레에 다 터뜨리려고 이만큼 인내해왔나? 싶은 한 방이 첫 시작에 화려하게 깔려 있었다. 보다 씩씩하고, 소리가 곧게 세워져 내게 절묘한 통쾌함을 선사해주었다.
다채로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에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까? 추측하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벽돌을 쌓고 또 쌓고, 높은 곳으로 향해 올라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불꽃놀이를 하러 하늘 쪽에,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더니 자수가 세상 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어여뻤다. 나는 그제야, 저 오케스트라 가운데에 서 있는 지휘자를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 파란이 와도 결국 한 음씩 짚으면 그만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