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앞두고 있을 적, 미국이면 어디 주로 가냐는 질문이 꼭 따라왔다. 어떤 주든 상관없이 미국이면 다 좋았다. 조심하라는 말에 걱정을 덜고 싶었기에 정확히는 안전한 미국이면 어디든 괜찮았다. 갈 수 있는 학교를 줄지어 세워 봤고 개중에서 안전하고 친절하기로 유명하다는 대학교가 사우스다코타주에 있었다. 원래도 미국 지리를 잘 몰랐지만 사우스 다코타는 정말이지 초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하는 사람마다 사우스다코타 주로 간다고 답하면 다들 여전히 얼굴에 뜬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급하게 미네소타 옆에 있는 주라는 설명을 덧붙였고 어떤 때에는 시카고까지 언급해야만 그제야 사람들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편의시설이 어디까지 제공되어 있을지 전혀 예상이 안 되는 주에 가려니 기대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음식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싶은 조막만 한 기대감을 품고 사우스다코타에 도착했다. 파견된 학교는 주 안에서도 아주 작은 도시였는데 도시 크기만큼이나 기대감이 작아지니 실망도 덜 했다. 운전은 못 했지만 차 타고 갈 수 있는 마트라도 있음에 안심했고 도보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감사했다.
바쁜 몇 주가 지나고 나서 느낀 건 이만큼 지루한 미국도 없지만 이만큼 안전한 미국도 없다는 거였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따뜻했다. 사람만이 아닌 것이, 운이 좋게도 화창한 날씨가 아주 짧게나마 존재하는 시기에 와서 하루하루가 날씨만으로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학교 안에는 날다람쥐와 토끼가 제 집인 듯 뛰어다녔고 조금만 밖을 벗어나 어디를 가든 쨍쨍하나? 선선한 자연이 눈앞을 벅차게 채웠다. 해가 가라앉으면서는 빨간 노을을 지면서 이어지는 핑크빛 물감이 하늘을 물들였다. 그런 날에는 산책을 참을 수 없었기에 거니는 것만으로도 미국에 온 이유가 전부 충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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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사우스다코타는 미국 중북부에 위치해서 머지않아 금방 겨울이 찾아온다. 자연히 주어진 이 날씨에 곧 휴일도 다가왔겠다, 이 조합을 놓칠 수 없어서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놓자는 마음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누구는 미네소타를, 누구는 시카고에 가는 와중에 나를 비롯한 내 여행메이트들은 차를 빌려서 로드트립을 가기로 했다. 다른 주를 가보는 것도 좋지만 우선 사우스다코타에 정을 더 붙여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머물렀던 주와 도시를 설명할 때가 다시 오면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기에.

학교에서 5시간을 넘게 운전해 도착한 곳은 서부에 있는 ‘래피드 시티’라는 도시였다. 이곳에는 ‘블랙 힐스’라는 지역이 있는데 여러 관광지가 자리 잡고 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크게 ‘러시모어’, ‘데드우드’, ‘배드랜드’ 관광지를 끼고 여행 일정을 짰고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로드트립 자체가 처음이었다. 차에서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한국에서 서울을 기점으로 다른 지역에 여행 가는 것만큼 힘이 들지는 않았다. 보통 6시간을 훌쩍 넘기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인데, 어렸을 적 기억으로 떠올려 보아 차에만 있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레 겁먹기도 했지만 들뜨는 건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란 거였고,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사우스다코타라는 것이었다.

뒷좌석에서 직사각형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눈 뜰 수 없이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드문드문 본 풍경은 자꾸만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여행 동안 도합 20시간이 넘는 시간을 차 안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지루했던 적이 없었다. 보고 또 봐도 좋았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앉아서 감상하고 있자니 끊임없이 경탄했다.
드넓은 들판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물들이 풀을 뜯어 먹는 광경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사파리 저리 가라 할 정도였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드라이브하면 동물이 없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겠다 싶을 정도로 방목이 많았다.
높은 빌딩의 부재도 한몫했다. 윈도우 배경 화면 같은 풍경들이 반복됨에도 눈이 피로하지 않았던 이유에는 높은 회색 빌딩을 대신해 존재했던 주택들과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낮은 기점에서 시작해 높게 펼쳐진 하늘 덕분이었을 거다.
첫날 방문한 ‘러시모어’에는 무려 10달러의 주차료를 내고 들어섰다. 러시모어는 산에 미국 대통령 4인을 조각해 놓은 랜드마크이다. 미국의 역사적인 인물 4명의 얼굴이 높은 산꼭대기에 조각되어 있는 모습을 보곤 순간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런 조각들은 지금 시대에 기계가 하기도 어려운 분야일 텐데 1920년대부터 14년 동안 400명이 오롯이 사람의 힘으로만 해냈다는 사실에 괜히 장엄해져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가장 놀라운 건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저녁 시간에 도착해서 곧 있을 야경식까지 보고 가기로 했다. 아무 데나 가만 앉아서 고개를 올려보니 하나의 별을 필두로 별이 보이기 시작하니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듯했다. 러시모어여서 특별한 것도 있었지만, 사우스다코타에서는 별이 유독 잘 보인다. 가로등이 있어도 휘황찬란한 불빛이나 밤늦게까지 조명이 켜진 건물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 같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이 순진하고 깨끗한 자연이 이곳에서만큼은 오래도록 유지되길 빌었다. 별에게 비는 소원으로.
‘자연’하면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배드랜드’다. 처음에는 국립 공원을 3시간 정도 돌아야 한다고 해서 심히 당황했다. 아무리 미국 여행이 처음이라도 3시간 동안 걸어 다닐 생각에 설렘 대신 걱정이 들어찬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여행은 로드트립이었지 않나. 땅덩어리가 큰 미국에서는 차에 타고 긴 시간을 관광할 수 있는 국립 공원이 버젓이 존재했다. 만들어진 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정차하고 내려서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는 일의 반복이었다. 뾰족하고 다채롭게 깎인 바위산과 그랜드 캐니언에 비할 법한 협곡 등장의 연속이었다. 중간중간에는 들소와 버펄로, 프레디독, 염소 (정확히 이들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등의 야생 동물도 자주 보였다.
카메라로 담으려고 하면 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반도 담기지 않았다. 후에 갤러리를 보니 비슷한 자연 경관이 대부분이었지만 차에서 내릴 때마다 어찌 그리 마음이 풍요로워졌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순간은 국립 공원에서 빠져나올 때였다.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의 이 순간이 말 그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란 사실은 분명했기에 맞을 수 있는 햇볕과 바람을 피부에 저장하고 싶었다. 창문을 최대로 내리곤 눈은 바깥 풍경에 조준하고 얼굴을 창가에 괸 채로 끝나가는 순간을 만끽했다. 담고 담아도 턱없이 부족할 거란 걸 여행 내내 느끼는 일은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노을을 만났다. 안락한 차 안에서 귓가를 가득 채우는 음악을 비지엠 삼고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해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는 이대로 시력을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우스다코타에서 저무는 해를 본 지 벌써 4주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질리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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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 또한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학교 정중앙 벤치에서 쓰고 있다. 노트북 화면과 자판에서 눈을 돌리면 가득 채워져 있는 초록빛들과 내 주변을 서성이다가 급기야 바지에 앉은 벌꿀 덕에 바쁜 서울 도심이 아닌 자연에 둘러싸인 타지에 있음이 실감 난다.
5개월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무수하고 복잡한 결의 감정을 쌓고 놓고 가게 될까. 그 시간 동안 잃어지는 것들이 있대도 총합으로 따지자면 얻는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교환학생이 아니었다면 살아가는 내내 어쩌면 몰랐을지도 모를 사우스다코타, 그 속에서 맞닥뜨리는 예상 못 할 사건들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 그러니 운명처럼 짝지어진 나의 사우스다코타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누려 봐야지. 여기서 교환학생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사실이 아주 분명하니까 더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