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시간을 보내고 높은 언덕을 오르며 집을 가다, 몸의 뒷면이 너무 따뜻해서 잠깐 등을 돌렸다. 그리고 등지고 있던 노을에게 고개를 반쯤 돌렸을 때쯤, 얼굴에는 따스한 호박색의 빛이 묻어나있었고 그 빛과 마주했을 때 나는 오늘 하루를 위로받았다. 나는 자기 객관화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매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 보낸 것 같은지 생각하며, 오늘을 평가해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낼지 생각을 한다.
어느 날은 스스로 서울에 왜 왔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서울에 가고 싶었을 때의 그 마음가짐과 서울에 가기 위해 내가 노력했던 것들. 서울에 가면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계획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던 그 순간들 그리고 돌아온 부모님의 말씀은
"난 이미 계속해서 너의 의견을 충분히 묻고 얘기를 들었으며,
앞으로도 어떤 일들을 결정할 때마다 항상 깊은 고민을 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한단다.
나도 결심을 이제 다 했으니, 반짝반짝 빛나는 이 상황을 응원해 주고 싶단다. 한번 해봐. 도와줄게."

누가 취향에 대해 물으면 "음 글쎄 나는 다 괜찮아"라고 했던, 취향이라는 게 없던 무미건조하고 말라가던 내게, 서울은 큰 슬픔이었고 그 슬픔에서 시작 된 글쓰기는 양분이 되었으며, 식물을 돌보듯 나를 돌봤고 그렇게 나는 푸르른 생기를 되찾아 갔다. 이제 나는 취향이라는 게 생겼고 내가 원하는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졌고 누군가의 앞에서 고민하는 일이 줄었다. 그렇게 예전과 비교한 나의 삶은 다시 끔 온유해졌다. 어느덧 푸른 여름은 지나고 무르익은 가을이 온다. 가을이 온다는 것은 일 년의 후반기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 무덥고 생동감 넘치는 여름은 가고 부드럽고 차분한 가을로 계절이 변하고 있다.
계절의 마음 재채기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회의감이 들어 이러한 나의 감정을 가진 채, 남자친구와 전화를 했는데 나의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곤 무슨 일이 있냐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도 호박색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나는 길가에서 멍하니 지평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게 맞나 싶어서. 일만 하는 게 잘 살고 있음의 표시가 되어주는 건 아닌데. 전화를 끊고 문득 나의 이런 감정이 남자친구에게도 묻어 영향을 줬을까 봐 밤에 다시 통화로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했다. 모든 불을 끄고 창문을 열고 간간이 보이는 밤하늘을 보며 했는데, 남자친구의 긍정과 여유를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회의감을 마주하는 다른 시각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회의감이 온다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낮은 곳에서 날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거니까 난 그걸 종종 즐겨"
"우리가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낮을 시기이니까 괜찮아 같이 단단해져가자, 넌 너대로 살아. 될게라는 말 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네가 삶을 대하는 열정적인 태도에서 나도 자극을 느껴, 우리 같이 열심히 하자"

가장 낮은 곳에서 날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거라 그걸 즐긴다니. 난 한없이 속상했었는데 앞으로 저런 마인드로 살아봐야겠다 싶기도 했고 지금이 불안정하고 낮을 시기도 어찌 생각해 보면 맞는 이야기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고 해주니 다시 끔 불안정했던 나의 생각들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아이유가 유퀴즈에 나와서 한 말 중에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느꼈을 때가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일이 주는 자극적임'에 중독이 되어 나를 잘 돌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나와 일에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울리게 와닿았다. 어찌 보면 내가 계속 하루를 잘 살았는지를 평가하는 것도 오늘 내가 열심히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 그런 일이 주는 자극적임에 중독이 되어 나의 하루를 일로써 판단하는 것은 아닐지.
그러니 스스로 열심히 하되 너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하길 바라서, 일이 주는 기분 좋은 성과의 쾌감도 있지만 그냥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잘 보낸 스스로를 다독여 줄줄 알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면모로 스스로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지길 바라며, 그 간 이러한 일들을 겪고 오늘 언덕을 오르며, 눈에 들어온 노을의 호박색 빛이 내게 정말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