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의 안녕을 : 사월의 사원 [공연]

글 입력 2022.12.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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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여서 모난 존재들을 한 데 그러모읍니다. ‘선의’에 대한 믿음과 오해로 희곡을 씁니다.

 

작가님의 이 한 줄을 읽고 혜화를 찾게 되었다. 자의적으로 연극을 보러 온 게 몇 년 만인지 떠올리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극장으로 도망갔다. 극장 안의 세상이 또 다른 현실이 되어 잠시나마 이 기분을 없애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존 객석에 앉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무대 위 ㄷ 자로 설치된 객석에 앉게 되었다. 무대 위의 무대를 객석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내가 지나온 기존 극장 객석이 정면으로 보였다. 설마 공연 내내 저 객석을 마주 보고 있어야 하나? 막을 내려주겠지? 등의 생각을 하다 보니 안내 멘트가 나오고 곧 암전되었다. 막을 내리지 않고 객석이 훤히 보이게 연출을 한 이유가 있을 거야 (실제로 공연 중 기존 객석을 활용하는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를 되뇌며 공연의 시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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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싸(박수진)가 캐리어를 끌며 지수(이세영)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주변 소음으로 그녀가 현재 공항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공장에서 해고당한 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메싸는 본인이 살던 마을로 가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가 힘겨워 보인다. 그녀가 말하는 수린이 누구일까 의문을 가진 채 무대는 영혜(우미화)의 집으로 바뀐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렸던 모친이 곧 요양원에 들어갈 자신을 죽기 전까지 보살펴 달라고, 그래주면 네가 평생 살 수 있는 집 한 채를 주겠노라는 제안을 했고 영혜는 이를 받아들였다. 절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혹은 유쾌하게 말하는 영혜를 보며 마냥 편하게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받게 된 이 집은 영혜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커 마음이 가는 이들을 하나둘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지수와 죽은 애인의 환영을 보는 동성애자 bl 만화가인 해영(나경호)은 폭력을 당한 직후라는 비슷한 상황 속에서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영혜, 지수, 해영은 얼핏 보면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해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언제든지 이 둘이 떠나고 혼자 남게 될까 불안해 보이는 영혜와 과묵했던 영혜가 수다스럽게 변한 모습이 걱정되는 지수와 해영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대하는 듯하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버텨내기에도 버거운 이들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적당한 선을 가진 타인을 선택하곤 한다. 나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영역에 있는 타인.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선 너머를 넘나드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그 순간을 알아챈 순간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선을 넘으면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관계가 상처만 남긴 채 영영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

 

영혜의 어머니가 있는 요양원에서 근무 중인 현주(조연희)는 여러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혼 후 전 남편과 지내고 있는 아들 기정(라소영)의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고 곧 재혼할 아빠 말고 엄마와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해고당할 예정인 현주에게는 두 사람을 버텨낼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영혜는 현주와 기정을 본인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모두 잘 지내길 바라는 영혜의 마음과는 달리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네 사람이 모였으니 시작부터 쉽지 않다. 해영은 자꾸만 선을 넘고 트리거를 건드리며 다가오는 현주가 불편하고,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지수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폭력으로 풀어내는 기정과 부딪힌다. 결국 갈등이 폭발한 이들은 상처만을 남긴 채 영혜의 집을 떠나게 된다.

 

캄보디아 곳곳을 헤매던 메싸는 드디어 수린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어린 딸을 데리고 낚시를 떠난 남편을 잠시나마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말리지 않았고, 결국 딸 수린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 순간은 평생 상처로 남아 메싸를 괴롭히고 있었다. 한참 물가에 서 있는 메싸에게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얼마 전 수린이 뭍으로 떠올라 사원에 안치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사실 여러모로 집중하기 어려웠던 장면이었다. 이 부분이 메싸의 서사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을 할머니의 대사가 캄보디아 어 녹음으로 나오고 빔을 통해 기존 객석 방향의 한글 자막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기존 객석 부분이 훤히 보이니 집중이 깨져 자꾸만 시선이 분산되었고 할머니의 대사도 많아서 극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꼭 관객을 향해 연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장면인 만큼 여기에서는 메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존 극장 객석을 수린이 빠져 죽은 장소로 설정한 탓에 메싸는 관객을 등지고 있었고, 할머니를 바라볼 때 옆모습이 보였지만 그마저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극의 대부분을 기존 객석 위치에서 연기를 했고 움직임마저 정적인 역할이라 출연진 중 메싸 역 배우분의 연기하는 얼굴만 기억나지 않는다.

 

메싸를 관객에게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놓은 연출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무대 위에서 열연을 한 배우의 목소리만 남는 것은 극장을 찾아 배우의 연기를 생생하게 보고자 했던 관객의 입장으로서는 속상한 부분이었다.

 

*

 

현주를 제외한 모두가 떠난 큰 집에 남겨진 영혜는 수다스럽게 변했던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시 예전의 과묵했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을 잃은 사람으로 보이는 영혜는 어딘가 텅 빈 듯하다. 외로움이 전해질 정도로 고독한 사람의 눈은 그 누구에게서도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우연히 만난 현주에게서 영혜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놀러 온 해영으로 인해 분위기는 전환된다. 해영을 본 영혜는 울음을 터트린다. 아주 오랜 시간 꾹꾹 담아온 눈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상치도 못 한 순간에 왈칵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언제 터졌어도 놀랍지 않았을 눈물이 언제 어느 때에 이렇게 가득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한참 확인을 안 한 듯 잔뜩 쌓인 우편물을 가지고 온 해영은 캄보디아에서 온 지수의 편지를 발견한다. 우리 모두의 안녕을, 우리 모두의 평안을,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끝끝내 살아남기를 기도하고 있는 지수의 목소리가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

 

텅 비어 있던 영혜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 준 해영, 캄보디아에서 메싸와 함께 수린의 명복을 빌어준 지수, 그리고 극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기정을 데리러 갔을 현주, 극장을 빠져나오며 한 계단 한 계단 놓여 있던 수린의 장난감을 바라보는 극장 안의 모든 이들.

 

사람의 온기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약간의 따스함을 남기고 떠난 자리가 엄청난 상처로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남은 상처들을 약간의 따스함으로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상처가 온기로 가득 차기를, 우리 모두가 돌아갈 집이 부디 따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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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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