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앉아있지만 움직이고 있는 [공간]

글 입력 2024.03.27 13: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느새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지도 1년이 넘어간다. 주말에만 하는 일인지라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진 않는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다가 손님이 들어오시면 '어서오세요~~~~!!!'를 하며 벌떡 일어나서 응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길게는 30분 이상부터 짧게는 초 단위까지. 다양한 시간 동안 매장 안에 손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독 나의 흥미를 끈 건 짧게 있다가 가시는 분들이다.


그분들은 필요한 용무만을 위해 편의점에 오신다. 단순히 입이 심심해서 군것질거리를 찾으러 오거나, 한참을 고민하며 안줏거리를 고르진 않는다는 말이다. 나도 손이 느린 편은 아니라. 그분들의 효율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결제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웃긴 건,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넣는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발굴하거나 얻을 수 있고 심지어는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의 눈은 빠르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 짧은 순간동안 이 사람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들어올 때의 걸음걸이나 눈빛, 말투, 심지어는 어떤 과자를 사고 어디 은행 카드를 쓰고 무슨 반지를 끼는지에 대한 정보가 손쓸 새도 없이 눈에 와르르 들어온다. 손님들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나는 여기에 고정되어 존재하는 NPC이다. 마치 카메라를 지지대 위에 고정해 둔 것처럼, 내가 상대를 보는 위치나 구도가 언제나 같다. 같은 프레임과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자극에 노출되다 보면, 데이터가 자연스레 그리고 굉장히 일관성 있게 (비교하기에 용이하게) 쌓인다. 이는 곧 각 손님들의 차이나 특성이 더 극대화되어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 손님은 내 눈을 잘 안 쳐다보시네.'

'이 손님은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계시네.'

'이 손님은 말투가 굉장히 유머러스하시네.'

….


손님이 다수가 되면 더욱 더 재밌어진다. 손님들 간의 대화 속에서 관계성을 잠시나마 엿볼 수도 있고, 매장에 들어오기 전과 매장에서 나가고 난 뒤를 상상해 보며 웃기도 한다. 아파트 앞에 있는 편의점인지라 가족 관계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이 손님의 아빠가 이 손님이었어? 이 손님의 딸이 이 손님이었어? 하는 반전을 겪다 보면,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건지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KakaoTalk_Photo_2024-03-27-11-10-54.jpg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잘 웃는 편이라 사람 응대가 자신 있었지만 좋아하진 않았다. 이런 일을 쭉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 번도 안 해봤다. 워낙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서 피곤하달까나. 그리고 고정된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게 매력적이지 않았달까. 그런데 불특정 다수를 동일한 프레임에서 연속적으로 만나고 스쳐 보내보는 경험. 이 흔하지 않은 경험을 몸소 체험하고 보니 사람 자체가 지닌 입체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매료되어 가고 있다.


이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세상과 우주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입체적인 세상을 엿볼 때 색다른 영감을 얻어갈 수 있다. 직접 여행을 떠나고 움직이지 않고 편의점에 앉아만 있어도, 매순간 새로운 존재가 들이닥치고 다양한 세상이 걸어들어오는. 이런 일이 어디있겠는가. 가장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이 일이 어쩌면 가장 자극적인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주는 또 어떤 우주의 계산을 도와주려나…

 

 

 

한정아.jpg

 

 

[한정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