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몸을 움직인다. 걷고, 앉고, 일어나고, 뛴다.
매일 움직이면서도 정작 그 움직임을 자세히 의식하는 일은 드물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야 몸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 길게 몸을 뻗어 선을 만들어내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몸이 얼마나 많은 움직임을 품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무용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진다.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움직임을 보며 순간 감탄한다. 그 움직임이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동한다. 한 번의 동작이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반복하고 땀을 흘렸을 시간들.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무용수를 볼 때면 동작의 모양만큼이나 그 동작을 만들어내는 몸을 바라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움직임 뒤에 쌓인 시간에 먼저 박수를 보내게 된다.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는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공동체의 기억으로 이어지는지를 춤으로 보여준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캐나다, 일본, 한국 등 세계 8개국 대표 안무가들의 30개 작품을 선보인다. 시민과 함께하는 부대 프로그램들을 통해 서울을 하나의 거대한 몸으로 연결한다. 춤을 다시 공동체의 언어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몸은 우리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가"
아함프로젝트의 [뉘엿 뉘엿-아스라히]
아함프로젝트의 [뉘엿 뉘엿-아스라히]는 바로 이 질문을 한 사람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을 겪은 할아버지의 기억과 치매 환자의 '일몰증후군'에서 출발해,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기억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자신의 손주를 전쟁 중 헤어진 형으로 착각하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전쟁과 이산, 상실과 침묵을 견뎌온 한 세대의 삶을 무대 위에 펼친다.
라이브 영상과 움직임이 결합된 무대는 전쟁의 공포와 그리움, 기억의 왜곡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흔들리는 천 너머로 흐릿하게 드러나는 표정과 몸짓, 손짓은 기억 속에 남은 장면처럼 아스라이 다가온다. 조각난 천 사이로 선명하게 포착되지 않는 모습들은 오히려 그 안에 남겨진 감정을 더욱 짙게 만든다. 다양한 시각화를 통해 같은 장면을 여러 겹의 기억으로 바라보게 한다. 흔들리고 멈추는 몸의 언어는 말로 남지 못한 감정과 침묵의 역사를 형상화한다. 전쟁의 상처는 과거의 사건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동시대의 현실로 이어진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살아온 사람들과 가족을 통해 전해지는 삶의 흔적은 무대 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한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감정이 다른 무용수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간이다.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때로는 곁에서 감싸 안으며 한 사람의 슬픔을 함께 나눈다. 혼자 품고 있던 애잔함이 함께 나누는 기억이 되는 순간처럼 보인다.
객석에는 유난히 어르신 관객이 많았다.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이산이라는 말로 묶어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삶 어딘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흐려지고 때로는 뒤섞이더라도, 그 시간을 살아낸 몸에는 무엇인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대 위에서 흐릿하게 겹쳐지는 기억과 멈추고 흔들리는 몸을 한참 바라보게 된다.
'뉘엿뉘엿'은 하루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저무는 시간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빛이 사라지기 직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얼굴과 감정, 그리고 말없이 남겨진 삶의 온도를 의미한다. 무용수들의 몸은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잊힌 존재들을 애도하는 동시에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비춘다.
그렇게 한 사람의 기억은 무대 위에서 다른 몸으로 옮겨가고, 다시 객석에 앉은 우리의 기억과 만난다. 혼자 품고 있던 기억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춤은 그렇게 말보다 먼저 서로의 기억에 닿는다. 작품은 끝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잊었고, 무엇을 끝내 기억해야 하는가."
안무가 함도윤은 고전발레를 바탕으로 발레의 선형성과 연극적인 감정선을 융합한 '확장된 발레'의 미학을 제시하며, 관객과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컨템퍼러리 무용극 형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베르나르다 알바] [고도를 기다리며] 등 문학작품에서 출발한 작업 역시 원작의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으로 확장해왔다. 사회적 억압, 산업재해, 청년실업 등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들을 개인의 서사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들은 ‘나에게서 시작했지만, 당신에게도 있었던 마음’을 무대 위에 남기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올해 SIDance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작품 안에서도 다시 이어진다. 서로 다른 문화와 미학, 감각과 신체 언어가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듯, 한 사람의 기억 역시 다른 몸과 만나 공동체의 기억이 된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춤은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