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영화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예매한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티켓. 웃기게도 나는 관람할 영화의 시놉시스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저 영화제에 가본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움직였기에, 예매한 영화에 관객과의 대화(GV)가 포함된 줄도 몰랐다. 그렇게 향한 부천시청 상영관.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착석했던 나는 영화가 끝난 뒤, 입장하는 감독과 배우들을 보고서야 적잖이 당황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대화
영화 <아무도 모르는>의 이관주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인 김수경, 최준영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관객과의 대화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나는 그저 다른 관객들의 질문을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관객들에게 감탄하던 찰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감독의 눈빛이었다.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그 눈빛은, 그를 무언가 꿈꾸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꿈을 담고 있는 눈’이라는 묘사는 이제 너무 흔해져 버렸다. 꿈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시대에,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 서사 속에서 당연하게 등장하곤 한다. 세상 모든 작품 속 인물이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한 인물상을 현실에서 직접 접한 기억은 없다.
이관주 감독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질문을 굉장히 즐겁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영화의 배경이 왜 노르웨이인지, 특정 연출의 이유는 무엇인지,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점을 고려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고, 감독은 그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세하게 풀어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조차 기획 의도를 까먹기 일쑤고, 상업적인 작품을 볼 때도 제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헷갈릴 만큼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획 의도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거창한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영화의 세계를 설명하며 빛나던 감독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꿈’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언제나 진로를 고민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직 대학생이니 천천히 앞날을 고민해도 괜찮을 거라 위로하면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들여다봐야 했다.
‘꿈’이란 무엇일까.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방탄소년단의 노래 ‘낙원’의 가사가 문득 떠오른다.
우린 꿈을 남한테서 꿔 (빚처럼)
위대해져야 한다 배워 (빛처럼)
너의 dream. 사실은 짐
미래만이 꿈이라면
내가 어젯밤 침대서 꾼 건 뭐?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다음달에 노트북 사는 거
아니면 그냥 먹고 자는 거
암것도 안 하는데 돈이 많은 거
꿈이 뭐 거창한 거라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
이 노래는 꿈이 거창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나는 늘 꿈이란 매우 거창한 것이며, 나의 수십 년 앞날을 책임질 정도로 내가 간절히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강박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고작 이십 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 대학생이 앞으로의 60년을 설계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60년을 책임질 어마어마한 일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고민이 내 시작을 오랫동안 가로막았다.
60년을 통째로 설계하는 것보다, ‘다음 달에 노트북 사기’ 같은 목표를 세우는 편이 훨씬 가볍다. 마음의 부담감도 덜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현실적이지 않은 바람일지라도, 수십 년 뒤의 삶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훨씬 머리를 덜 써서 마음이 편하다. 좀 우습지만 모두가 한 번쯤 마음 편히 꾸는 꿈이기도 하다.
마음 편히 꾸는 꿈.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내 마음 중심에 깊숙이 자리한 오랜 꿈은 건드리면 불편해질 뿐이었으니까. 항상 주변부를 맴돌며, 꿈이라 부를 수 있는 적당한 목표들만을 애써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것들은 목표로 삼아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애초에 깊게 좋아하지 않았기에 실패해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꿈을 한 번도 건드려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꺼내기 부끄러운 나만의 도전 과정이 있었다.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이 있듯, 나는 이 에세이에도 그것을 언급하기가 두렵다. 그만큼 중심부를 건드렸던 과정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것을 드러냈을 때 받을 평가가 무서웠고, 나만이 알고 싶은 꿈이라 여겼는데, 역시 사람은 밖으로 나와 경험해 봐야 하는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꿈’에 대한 고찰을 다시 진심으로 시작할 용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불편했던 꿈은 여전히 불편할 것이다
글이 영화제에서 관람한 영화와 관객과의 대화라는 지점에서 멀어진 것 같지만, 나는 같은 궤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제 또한 축제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지던 내게, 이 영화제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꿈꾸는 모습을 부끄러워했던 내게, 그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관심 있는 것에 직접 나서서 다가가 본 경험 또한 정말 오랜만이었다.
시작하지 못하는 마음이 나를 오히려 붙잡고 있었음을, 감사하게도 영화 <아무도 모르는>의 GV에서 깨달았다. 영화의 흥행보다 영화의 무게를 먼저 가늠하는 독립영화가 내게 준 것은 내가 꿈의 성공 여부보다 그 깊이를 먼저 알아갈 용기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지금까지 불편했던 꿈은 앞으로도 불편할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은 가장 연약하고 민감한 부분을 내보이는 것과 같으니까. 앞으로 하게 될 모든 도전은 나의 치부를 드러낸 상태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주변의 평가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주변부만 돌며 산다면 편할 것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큰 스트레스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파편들이 나의 미련을 증명하듯 나를 찔러왔다. 여전히 서점에 가면 만화 코너를 서성이고, 미술학원이 보이면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꿈의 근처라도 가보려고 미술품 전시를 찾아다녔으니 말이다. 도전할 용기가 없으니 남의 도전 후기를 찾아보는 것은 덤이었다.
사소하게 여기려 애썼던 기억들이 결국 돌고 돌아 이 자리로 나를 이끌었다. 대학 전공조차 도피처였던 내 지난 시절을 단번에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첫 장편영화에 도전한 이관주 감독을 보며, 나 또한 나의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뎌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