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 시청은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 때론 참을 인 세 번으로도 풀리지 않는 분노가 있는 법. 그럴 때는 격노하지 않고 적들과 대치하는 신이 넘쳐나는 작품 하나를 틀고 이렇게 대리 만족을 한다.
‘내가 당신의 멱살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밉다고 사람을 쳐서는 안 되겠지요. 마음으로는 벌써 몇천 대나 때렸지만 도무지 분이 풀리질 않아 저기 저 주인공에게 나가떨어지는 악의 무리를 그냥 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너. 멀리 안 나가요. 잘 가세요!’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나를 힘겹게 한 자에 대한 소심한 복수이자 간접적인 적폐 청산이랄까. 휘몰아치는 아드레날린으로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 나는 깨달음 비스무리한 것을 얻었다. ‘이야...이거 액션으로 명상이 된다?’
영화 <익스트랙션>은 ‘구출’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스트레스에서 사람 하나를 구해 냈다. 그리고 뒤늦게 입문하게 된 이 작품에 늦바람이 제대로 들어 여태 출구를 못 찾고 있기도 하다. 액션다운 액션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이미 성지 같은 영화.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는 영화 <익스트랙션>.
좋은 게 왜 좋은지 설명하는 일이 이토록 영롱했던가. 이 글은 영화 <익스트랙션>에 대한 나의 열렬한 팬심이자 자발적인 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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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익스트랙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훑자, 익스트랙션 세계관
1. 마성의 구출 전문가 ‘타일러 레이크’
과거 최정예 특수부대 군인이었던 ‘타일러 레이크(크리스 헴스워스)’. 현재 그는 의뢰인에게 돈을 받고 사람을 구출하는 용병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작전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어떻게든 의뢰인이 부탁한 사람을 구출해 내는 자칭 이 바닥 능력자. 왠지 그라면 지옥에 떨어진 사람도 구출해 올 것만 같다. 듬직한 피지컬에 동굴 목소리는 덤. 전투 능력을 갖춘 무적 포스의 그를 보고 있으면 ‘저기에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탈출할까?’ 하는 기대감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그가 위험한 임무에 자꾸만 몸을 던지는 것에는 남모를 이유가 있다.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아픈 타일러다. 마음의 빚이 있다. 아들의 죽음, 아내와의 이혼. 가족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자책하며 살고 있다.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듯 사지로 자기 자신을 몰아가며.
2. 기본 스토리 라인
구출 액션의 대명사 <익스트랙션>은 리얼한 액션 자체로 승부를 본 영화다. 깔끔한 액션과 심플한 이야기 전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스토리는 군더더기 없이 단순명료 그 자체!
[의뢰인에게 일을 받는다 - 구출하러 간다 – 구한다] 가 이야기의 큰 틀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구출 작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수 또한 영화 안에 골고루 포진되어 있다. 구출과 주인공 스스로의 생존이 동시에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처절할 수밖에 없는 전투들이 작품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나를 좀 봐줄래? 이제부터 좀 멋질 거거든?’ 하는 느끼한 뉘앙스로 손가락 오그라들게 하는 일 같은 건 절대 없다. 그런 부끄러움 없이 그저 시원하고 개운하게 감상하면 된다.
3. <익스트랙션> 줄거리
1편인 <익스트랙션>은 ‘타일러 레이크’가 납치된 인도 마약왕의 아들인 ‘오비 마하잔’을 구출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일이 틀어지고 작전에 난항을 겪는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타일러는 결국 대가 없이 의뢰인의 부하인 ‘사주’를 도와 ‘오비 마하잔’을 끝까지 함께 구하기로 한다. 적에게 사방으로 둘러싸인 다리에서 힘겹게 아이를 구해 냈으나 그만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게 된 타일러. 불분명한 그의 생존을 끝으로 1편은 마무리 된다.
4. 샘 하그레이브 연출×크리스 헴스워스 주연×루소 형제 제작
<익스트랙션>과 <익스트랙션 2> 시리즈 모두 ‘샘 하그레이브’ 감독의 연출작이면서 루소 형제(헐리웃 대표 형제감독)가 제작과 각본을 맡은 작품이다. 시나리오 작업은 동생인 ‘조 루소’ 감독이 맡았다.
*샘 하그레이브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 시리즈 연출로 유명한 루소 형제 감독의 마블 영화에서 ‘스턴트’를 담당했던 샘 하그레이브. <익스트랙션>은 전직 마블 스턴트 배우 겸 무술 감독 출신의 ‘샘 하그레이브’가 감독으로서 연출한 첫 작품이다. <익스트랙션>은 샘 하그레이브 감독이 자신의 주 전공인 ‘액션’에 사활을 건 작품이기도 하다. 다양한 작품에서 쌓은 체계적이고 탄탄한 액션 경험을 살려 그만이 구현할 수 있는 고난도 리얼 액션을 영화에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1편의 스토리를 두고 아쉬운 평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아쉬움마저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신으로 충분히 커버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저것 다 잡으려다 놓치는 형국보다 본질이라고 여기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편이 더 나으니까.
작정했네 작정했어 <익스트랙션 2>
1편? 재밌었다. 그런데 2편? 그거 받고 더 강렬해졌다. 보통 첫 작품이 흥행하면 그다음 작품에서 미끄러진다는 소위 2년 차 증후군을 겪는다는데 글쎄. 2020 익스트랙션의 속편인 <익스트랙션 2>는 그런 거 모르겠고요 아무튼 더 좋아져셔 왔습니다, 하고 3년 만에 멋지게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2편에서는 작품이 전반적으로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다. 스케일은 물론이요, 타일러의 감정 신 비중도 조금 더 늘어났다. 두 부분을 잘 절충하기 위해 많이 고민한 것 같았다.
액션 보면서 이렇게 시원하고 청량했던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만족감이 최상이다. 스펙터클한 액션들로 꽉꽉 채워진 <익스트랙션 2>. 안 보면 손해다. 지금부터 함께 달려 보자.
<익스트랙션 2> 줄거리
1편에서 죽다 살아난 타일러 레이크(생존 내막은 영화 초반에 확인 가능). 2편은 그가 다시 현장에 복귀한 이야기다. 새 임무는 교도소에 갇힌 가족 구출하기. 그런데 그 가족이 전처의 여동생과 그의 아들딸이란다. 심지어 처제의 남편은 조지아의 마피아 조직 일원.
남편 ‘케테반’의 감시를 받는 처제 가족을 구하러 감옥으로 달려간다. 구출 과정에서 타일러가 케테반을 사살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케테반의 형 ‘주라브’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마피아 식구들을 총 동원하여 복수를 다짐한다.
마피아 세력에게 쫓기며 처제 식구들도 지켜 내야 하는 우리의 타일러. 2편 역시 목숨을 건 구출이 메인 서사다. <익스트랙션 2>는 더 열악해진 구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타일러와 그의 팀원들 이야기이다.
<익스트랙션 2>의 매력 하나씩 짚어 보자
1. 구출, 어디까지 해 봤니
산 넘어 산. 아...아득한 구출이여. 신이시여 정녕 타일러가 살길 바라십니까? 싶을 만큼 구출 관문이 잔혹해졌다. 죄수들로 가득한 감옥에서부터 달리는 열차 안, 고층 빌딩 꼭대기의 처마까지. 난이도만 해도 별 다섯 개짜리다.
허나 그가 누구인가. 구출의 대명사, 믿음의 아이콘 타일러 레이크 아니던가! 이제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은 생각조차 안 난다. 1, 2편을 연이어 본다면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기본적으로 깔고 가게 된다. 걱정되면서도 어딘가 걱정이 되지 않는달까. 복귀해서 더 열심히 일하는 타일러의 모습을 보면 괜한 걱정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각지에서 시련 투척해 봐라. 타일러가 참나? 안 참지. 속편에서도 역시 타일러가 타일러했다.
2. 전무후무한 롱 테이크 신
*롱 테이크: 하나의 숏을 길게 촬영하는 것 *원 테이크: 한 번의 컷으로 끝나는 촬영
샘 하그레이브 감독이 이 영화의 수많은 액션 신 중에서 어느 부분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바로 타일러가 ‘헬기와 맞서는 롱 테이크 신’이다. 헬기를 타고 열차에 접근한 적들과 격렬하게 대치하는 타일러와 그의 동료 ‘닉’의 격투 장면은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주먹 불끈 쥐고 허벅지를 내려쳐가며 감탄성 비속어를 남발하며 보았던 그 장면! 끝내주게 멋져서 계속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열 번은 돌려 본 그 장면!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져버린 롱테이크 신은 <익스트랙션>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익스트랙션 2>에서의 롱 테이크 신은 한 번의 컷으로 모든 걸 담아낸 원 테이크 신이 아니다. 카메라의 움직임부터 주변 배경, 액션 동선까지 사이사이의 모든 장면들이 튀는 데 없이 연결에 있어 하나로 보이도록 감독인 그가 세심하게 편집한 결과물이다. 그만큼 샘 하그레이브 감독이 철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게 바로 이 롱 테이크신이다. 자연스러움은 역시 디테일한 연출에서 나오나 보다.
3. 탄탄한 액션 합
격투 신에서 액션과 리액션의 합이 좋다. 특히 리액션이 찰지다. 적들과 엉겨붙어 있는데 서로 한방에 깔끔하게 나가떨어지는 상황이 사실 이해 안 갈 때가 많다. 익스트랙션에서는 끝까지 처절하게 뒹굴며 싸우는 신들이 대부분이라 더욱 사실적이게 다가온다.
배우들 또한 현실감 있는 액션 동작들을 멋지게 소화해 냈다. 특히 타일러의 동료 ‘닉’의 거침없으면서도 섬세한 격투 동작들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리얼함을 위해 수많은 액션 동작을 연마했을 모든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4. 보다 성숙해진 주인공
1편에서 타일러의 개인 서사에 다들 갈증이 있었는지 스토리 부분에 질타가 꽤 있었다고 한다. 2편은 그 점을 반영하여 주인공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비중있게 풀어냈다고. 그래서였는지 속편에서는 타일러라는 인물이 전보다 조금 더 입체감 있게 다가왔다.
단순히 개인 서사 하나 더 늘어난 게 아니다. 주인공의 변화된 태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야기에 밀도가 생겨났음을 말하고 싶다. 타일러는 과거를 안고 사는 인물이다. 가족에 대한 아픔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어찌되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임무를 수행하는그 속내에는 진짜로 무엇이 들어 있는 건지 늘 궁금했다.
<익스트랙션 2>에서는 주인공 타일러 레이크에게 심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는 그. 어쩌면 그에게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에서 이어질 타일러의 인생 2막이 기대가 된다.
5. 3편에 대한 여지
타일러와 그의 동료 닉은 구출 작전에 거침없이 목숨을 던졌고 그로 인한 결과가 3편과 연결된다. 전작과는 달리 속편에서는 다음 편이 나올 거란 여지를 확실히 끝에 심어 주었다. 2편에서는 유독 그들만의 진한 동료애를 자주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 둘의 유대 관계가 아마 다음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익스트랙션 3>에서는 타일러가 어떻게 또 구출할까? 얼마나 독보적인 액션 신이 등장할까? 이런 기대를 하며 다가올 3편을 기쁘게 기다려 본다.
익스트랙션을 향한 팬심 사심 진심을 외치며
마지막으로 영화 <익스트랙션>을 향한 나의 팬심과 사심과 진심을 여기에다 외쳐 본다.
저 기다리는 거 잘 못해요.
맛집에 줄 서는 것도 싫어하고 식혀서 먹어야 하는 것도 빨리 먹다가 입천장 다 데여요.
그런데 <익스트랙션 3>는 기다려요. 이런 기다림은 행복에 속하거든요.
감독님, 배우님, 스태프 여러분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돌아오는 날까지 복습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