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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가정의 달 5월이다. 주말의 거리가 삼삼오오 외출 나온 가족 단위의 사람들로 들썩인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 이벤트가 많은 시기다. 어버이, 자식, 스승, 그 외 소중한 이에 대한 암묵적인 사랑을 고농도로 압축하여 표현하느라 다들 평소보다 바쁜 기색이다. 사랑을 카네이션으로 퉁치지 않는 것으로 마음 깊은 곳의 애정을 전한다. 이는 ‘말 안 해도 제 맘 아시죠?’와 같은 뜻이다. 모쪼록 모든 가정이 평안하길 바란다.


다양한 가족 풍경이 존재하겠지만 우리집은 부단히 지지고 볶는 쪽에 속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살가운 딸은 아니다. 내게 가족은 한지붕 아래서 복닥거리는 각별한 사람들. 이들에 대한 사랑은 참 묘한 감정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다. 사랑도 있지만 고마움과 원망과 측은지심도 공존한다는 거. 미우나 고우나 결론적으로 내 사람들이다.


가까이 있어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제 식구의 속내라 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보고  있어도 못 보고 듣고 있어도 못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척에 있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천 리에 있다고 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다. 거리를 논하기 전에 안테나부터 세심하게 기울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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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롭게 알게 된 가족이 있다. 청각장애인 부모와 그 자녀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은 삶에 대한 열정과 서로를 향한 마음이 하도 절절해서 보고 있으면 같이 뜨거워진다. 이들로 하여금 가족에 대한 복잡하고 오묘한 모든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편적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랑하기에 더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려는 태도. 기승전사랑으로 끝까지 밀어부쳐 결국 더 멀리 나아가는 이들을 이번 원고에 꼭 담고 싶었다. 이 영화가, 그리고 코다에 대한 이야기가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영화 <코다>에 들어가기 앞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 

 

사실 청각장애인의 어려움만 대략적으로 아는 정도지 그들의 2세인 코다의 사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그만큼 ‘코다(CODA)’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면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대상이기도 하다. 코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이 영상이 도움이 될 거다.

  



청각장애인의 삶 × 코다의 삶


 


 

 

영화 <코다>는 청각장애인 가족이 말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코다로서 살아가는 십대 소녀 ‘루비’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와 장애, 관계와 사랑, 음악과 꿈 이야기이기도 하다. 


 

1. 24시간도 부족한 루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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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며 가족의 어업을 돕느라 ‘루비’는 쉴 새가 없다. 게다가 그녀는 식구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청인이기도 하다. 루비는 잘 알고 있다. 코다(CODA)로서 사는 자신이 세상과 가족을 잇는 유일한 다리이자 소통 창구라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통역사와 보호자의 삶이었다. 생계 문제부터 부모님의 병원 문제까지 그녀의 개입은 이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가족에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생선 비린내 나는 농인 가족 여자애로 놀림 받는 루비는 학교 생활마저 퍽퍽하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낙이었던 그녀에게 짝사랑남 마일스의 존재는 한줄기 빛과도 같다. 때마침 마일스가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길래 자신도 겸사겸사 합창단에 따라 들어간다. 십대 소녀 루비에겐 나름의 일탈이었다.


마일스와의 듀엣 공연이라는 짜릿한 기회까지 얻게 됐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평소 가족이 비웃음을 당하는 비참함, 가족을 더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속이 곪아 있던 루비는 가족일이 마일스를 통해 밖으로 새어 나간 사실에 폭발해 버리고 만다.


마음은 언제나 가족으로 무겁고 노래를 좋아하는 자신의 꿈도 사치인 것만 같아 답답한 루비다.



2. 청각장애인 루비 가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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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아버지와 오빠는 자신들이 직접 생선을 팔기로 결정함으로써 부당하게 돈을 떼이는 구조에 전면 승부를 띄운다. 급작스러운 가족 사업으로 일은 더 바빠지고 루비의 역할은 배로 더 중요해진다. 가족 사업을 홍보하는 방송 인터뷰 때문에 루비가 개인 일정을 포기하는 것쯤은 어느새 당연한 일로 치부된다.


루비가 없는 어느 날 결국 탈이 나버린다. 아버지와 오빠 둘이서만 조업을 나간 날 무전을 받지 않은 이유로 해경에게 어업 금지 조치를 당하고 벌금까지 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항상 들리는 사람으로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딸의 말에 의견이 제각기 갈리는 가족들이다. 오빠 레오는 동생을 꼭 필요로 하는 부모님에게 서운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딸 루비 역시 자신을 통역사로만 대하는 것 같은 식구들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생계를 이어가려는 절실함 앞에서 어느 평범한 소녀의 꿈도 꺾인다.



3. 꿈과 가족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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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가 가장 생기 있는 순간은 노래를 부를 때이다. 잠시나마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노래는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그녀의 소중한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꿈을 십대의 낭만으로 치부해 버리는 엄마 앞에서 씩씩한 루비도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간다.


그녀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은 합창단 음악 선생님 미스터 V. V는 루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는 목소리라는 걸. 사람들 앞에서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고 도망쳤던 소녀는 스승으로 인해 듀엣곡을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버클리 음대 오디션을 위한 개인 레슨까지 받게 된다.


결단이 선 루비는 가족 앞에서 버클리 음대에 가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솔직하게 말한다. 하지만 루비에게 의지해 온 기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부모님은 딸의 부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막막해진다. 딸이 꿈을 이룬 순간 자신들의 곁을 떠날까봐 무섭다.


오빠의 생각은 다르다. 가족이 동생의 발목을 잡는 것에 늘 미안함을 느끼고 있으면서 자신들을 무능하게 바라보는 동생에게 화도 난다. “우린 무력하지 않아!” 하는 오빠의 말에 루비도 흔들리긴 마찬가지다. 가족 없이 혼자서 무언가를 해본 적 없는 루비도 자기 자신이 두렵다.


음악을 향한 꿈을 좇아야 할까? 위기에 처한 가족을 도와야 할까? 루비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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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합창단 무대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가족들. 무대를 지켜보고는 있지만 사실 맘 편히 즐기는 건 아니다. 눈치껏 박수를 치고 분위기를 대강 읽는 것으로 감상을 이어간다. 같은 공간이지만 낯선 세계이기도 하다.


루비가 듀엣곡을 부르는 순간, 모든 소리가 음소거 된다. 관객들도 잠시 루비 가족의 시점에서 소리 없는 무대를 보게 된다. 잠깐이지만 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주위를 느껴 본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미화되거나 과장된 것 없이 그들의 입장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순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동안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낯설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해 본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 아빠 프랭크는 생각이 많아 보인다. 그는 루비에게 “오늘 네가 불런던 노래는 어떤 얘기였어?”하고 묻는다. 루비는 대답한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을 말하는 노래야.” 아빠는 자신에게도 불러 줄 수 있냐며 딸에게 노래를 부탁한다. 루비의 목에 자신의 손을 얹고 온 마음을 다해 노래를 느껴 보려는 아빠. 서로의 진심이 고요하게 오가는 밤이다.




양쪽에서 바라보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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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가족은 딸을 집에서 내쫓기 위해 합동 작전을 펼친다. 작전명은 버클리 음대 오디션장에 루비 바래다주기. 루비의 꿈은 이제 가족 모두의 꿈이 되었다. 딸의 오디션을 몰래 보고 싶어 오디션장으로 잠입하는 열정까지 보인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곡 ‘Both Sides Now’를 부르기 시작하는 루비. 그러다 2층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가족과 눈이 마주친다. 머뭇거림도 잠시, 루비는 수어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에 햇살 같은 웃음이 번진다.


루비의 노래가 유난히 자유롭고 거침이 없다. 그녀가 손으로 만들어 내는 가사가 더 선명히 다가온다.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다는 노랫말 위로 루비 가족의 지난날이 흐른다. 슬픔은 마냥 슬픔이 아니고, 약점이 되려 약점이 아니듯 모든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삶이라고 노래는 우리를 위로한다. 한쪽에 있으면 그 반대편이 원래 보이지 않은 것이니 여전히 알 듯 모를 듯 한 것도 우리의 삶이라 말한다.


루비의 합격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 루비 가족. 사랑으로 이들은 더 멀리 나아간다. 보이지 않던 문이 활짝 열리며 삶이 한 차원 확장되는 순간이다. 떠나는 루비의 표정이 가볍다.

 

 

루비의 오디션곡

 Both Sides Now 가사 中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이제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From win and lose 

이기는 쪽과 지는 쪽에서 


And still somehow

그런데 아직도 어쩌면


It's life's illusions I recall 

기억에 남은 건 인생의 환상일 뿐


I really don't know life

인생의 실체는 잘 모르겠어

 

 

 

복지적 관점에서 바라본 코다(CODA)


 

1. 코다의 특수성과 환경적인 어려움


코다는 어릴 때부터 농인 문화와 청인 문화 두 가지를 동시에 겪는 특수한 경험을 한다. 체계가 다른 이중언어를 병행하는 어려움은 성장기에 정체성 혼란을 낳기도 한다. 부모와 사회의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코다는 가족 통역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코다는 부모에게서 언어적인 영향을 받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한창 스펀지처럼 배우고 의사 표현도 자유롭게 하는 시기에 언어 발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성장이 지연되는 것이다. 농인 부모와 자식 간의 의사소통 문제는 훗날 그들의 관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코다 가정이 겪는 어려움은 생각보다 수면 위로 드러나 있지 않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상태다.



2.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상담·생활 지원책이 필요


실제 청각 장애인의 자녀 규모가 얼마만큼인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그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 코다 자녀가 수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수어 교육에 대한 기회와 지원 역시 시스템적으로 잘 갖춰진 상황도 아니다. 코다를 위한 체계적인 수어 교육과 함께 코다 가정에 대한 다각적 지원이 시급해 보인다. 가정 전체의 의사소통 문제와 그로 인해 가정 내 코다가 겪는 개인적 어려움을 1:1로 파악하는 전문가의 상담 개입 또한 필요하다.


코다 가정을 위한 수어 교육을 주축으로 생활 부분에서 겪는 불편함은 없는지, 심리적으로 겪는 문제는 없는지 등 세심한 상담 서비스도 순차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보다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3. 우리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공동 구성원이다


시작은 영화였고 영화를 계기로 코다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굳게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정말 오랜만에 열렸다. 묻어 두기만 했던 전공이 이렇게 또 쓰이는 구나 싶어 감회가 새롭다. 감상도 감상이었지만 복지 전공자의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본 것도 있다.


혼자 슬쩍 생태도를 그려 보기도 했다. 코다 가정을 가운데다 두고 가족 내의 관계성은 어떠한지, 현재 결핍은 무엇인지, 어떤 자원이 부족한지, 외부 체계에서 어떤 유용한 자원을 끌어올 수 있을지 등을 가지치기 하면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가정이 겪는 어려움 또한 온전히 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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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CODA)는 항상 내 주위에 존재한다’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적인 인식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그들을 지지해 주는 사회적 관심과 함께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까지 병행될 일이다. 하나의 커다란 울타리 안에 건강하게 뿌리내린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려 본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영화와 복지로 엮으며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래서 코다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멀리 퍼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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