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가 끝난 이후 버스에 올랐다. 환승을 하면 좀 더 빠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감상에 잠겼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부터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젊은 시절, 시를 썼던 주인공 에드 색스버거. 시집까지 냈지만 결국 그는 시인 대신 우체국 직원이 됐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에드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에드가 냈던 시집 <너무 지난 날>을 읽었다면서 "당신은 천재"라고 말하는 마이어스. 그는 자신의 모임에 에드를 초대한다. 에드는 그들과 어울리며 다시 시를 써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복잡한 감정 속에서 낭독회를 맞이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에드에게 공감했다. 몇 달 동안 쓰지 못한 시가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멈춰버린 채 좀처럼 써질 기미가 없는 글들이 나를 에드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아니면 에드보다 조금 더 불운한 사람으로. 그래도 누군가에게 '재발견'된 주인공과 달리, 그마저도 성취하지 못하고 흘러가버릴까 봐 조금 두려웠다. 혹은 시를 쉽게 다시 쓰지 못하는 에드처럼 한동안의 공백이 수십 년으로 성큼 늘어날까 무서워졌다.
우리 모두는 '발견'되지 못한 채 잊혀질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음악이나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예술가 지망생들은. '발견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입장에서, 영화의 스토리는 그 불안을 정확하게 꿰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에드는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낭독회에서 마주한 청중들의 반응은 에드를 현실과 혼란 속에 내던져 놓고, 모임에서 열정을 담아 준비했던 낭독회는 미지근한 평가를 받으며 그들을 분열시켰다. 이 과정에서 에드는 자신을 천재 시인이라며 인정하고 존경했던 모임원들 중에서 자신의 시를 진짜 읽어본 사람은 마이어스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이어스는 천재 시인을 발견했다며 에드를 소개했지만, 정작 모임원들에게 시집을 빌려주지도, 읽어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에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자신의 글을 피드백해달라는 윈에게 조언을 남기고는 자리를 뜬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천재 시인'이라 불리던 순간들은 시집의 존재처럼 과거의 것으로 내려두었다는 듯이.
시사회가 막 시작되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만한 작품이라는 취지의 소개를 들었다. 실제로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중간 객석에서 공감의 웃음과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유머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예컨대 에드의 시간과 마이어스의 독선 같은 것들. 게다가 글로리아와의 관계도 애매했다. 애정이라기엔 둔탁했고, 뮤즈라기엔 취약했다. 그건 어쩌면 에드가 근본적으로 모임에 섞이기 어렵다는 거리감처럼 느껴졌다. 정작 글로리아도 그 모임에서 유리하는 구석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만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윈에게 건넨 조언이었다. 대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당신도 내 시를 읽지 않았으니 나도 당신의 글을 읽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젊으니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라. 나는 에드의 그 말에서 바라지 않았던 이질감을 느꼈다.
아직 젊으니까, 어리니까. 불안해하지 마라. 초조할 필요 없다. 나도 몇 번이고 인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그러나 에드의 그 말이 과연 윈에게 도움이 됐을까. 눈앞에 살아있는 증거가 있는데. 누군가는 '천재 시인'이라 부르지만, 결국 젊은 시절의 시집 하나만 남은 채 더는 시를 쓰지 못하게 된 어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윈이 순응할까. 자신의 글을 천천히 다듬으며 성장해나갈 수 있을까. 달갑지 않은 모순이었다.
결국 일상으로 돌아온 에드에게 마이어스와의 일들은 어떠한 감각으로 남았을까. 지나간, 그랬었던, 과거를 소환한, 이제는 아닌. 그런 수식언으로만 남을까. 나는 에드가 뒤늦게라도 유명한 시인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에드는 결국 그러지 않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이었지만, 동시에 마이어스와 출판 시장의 틀에 휘둘리느니 그 편이 더 자유롭고 시인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포스터가 말하는 '재발견'은 마이어스가 에드를 발굴했다는 뜻이 아닌, 에드가 과거의 자신을 재발견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결국 에드가 얻어낸 '뒤늦은 명성(LATE FAME)'은 과거의 자신이자 한때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빛나지만, 빛바랜 것들을. 그리고 어쩌면 끝내 과거에 불과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