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절 변화에 둔감한 사람이다.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고 옷장의 구성이 바뀌어야 비로소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래서인지 계절보다 시간을 먼저 의식하는 편이다. 이번 주에만도 '벌써 6월이야?'라는 말만 두 번은 한 듯하고, 어느새 지나가 버린 시간 앞에서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이고은 작가의 도서 <계절의 이유>의 초반부를 읽으며 처음 떠올린 질문도 비슷했다. 나에게 '계절의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야라 그런지 빠르게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저자가 이야기하는 계절과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책은 상실과 성장, 만남과 이별을 계절의 흐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고, 누구에게나 떠나보내야 하는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특히나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표면적인 위로보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감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에세이와 공감
사실 나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면서도 평소 에세이를 자주 읽는 편이 아니다. 늘 에세이라는 장르는 결국 한 개인의 기록이라는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절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작가의 경험은 출발점일 뿐, 그 안에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과 감정을 발견하게 만든다. 개인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되는 순간이 있었고,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했다.
더욱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었다. 책에는 특정 장소와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풍경과 공기, 빛의 온도까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덕분에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중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다음 구절이다.
내가 머물던 장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모든 기억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좋은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에게는 작별을 고하고 싶다.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기에,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
- <계절의 이유>, p61.
이 문장을 곱씹어보니 나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특정 장소를 떠올릴 때 그곳에서 했던 생각이나 감정이 함께 따라오고, 분위기만으로도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공간들이 여럿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공간과 기억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벚꽃 흩날리던 날
책 속 여러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챕터는 ‘벚꽃 흩날리던 날’이었다. 아마도 반려동물 때문일 것이다. 내 삶에서 고양이는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보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존재를 바라볼 때면 시간의 흐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반려견 스티치를 떠나보낸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쓴다.
이제는 벚꽃을 봐도 슬프지 않다. 꽃이 지고 나면 또다시 피어날 것을 알기에, 떨어지는 꽃잎을 봐도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사랑했던 것은 사라지지 않고, 계절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스티치의 기억이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 <계절의 이유>, p38.
물론 실제로 모든 것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시간의 흐름을 상실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아 현재를 구성한다.

그렇게 결국 책을 덮고 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내게 계절의 이유는 무엇일까.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다. 나는 종종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전에는 몰랐던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들. 지금의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계절이 오고, 그 계절은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삶을 놓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다음 계절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지독한 낙천주의자 같은 이 태도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끌어왔다.
책의 첫 장에는 이고은 작가님이 직접 적어준 짧은 문장이 있었다.
‘김효주 님께, 지나온 모든 계절이 아름답게 반짝이기를 바랍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나는 늘 지나온 계절이 아름답기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후회도 있었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아름다웠는지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계절들이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니 말이다.
<계절의 이유>는 결국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에 가깝게 느껴졌다. 늘 지나간 시간을 붙잡거나 애써 밀어내기만 했던 나에게 이 책은, 삶에 남은 흔적들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의 기억으로 차곡차곡 담아둘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 점에서, 바쁜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을 계절과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