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듯 말 듯 여름이 오고 있다. 계절이나 날씨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종종 어떤 기억들은 그날의 온도나 날씨로 기억에 남는다. 너무너무 슬펐던 여름, 너무 포근했던 겨울, 쓸쓸했던 봄......
이고은의 『계절의 이유』는 지나가는 계절에 삶과 슬픔을 함께 흘려보내며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에세이이다. 삶에서 만나는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죽음은 비단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늘 혼자만의 몫이다.
함부로 떠나보내지도, 터트리지도 못하는 감정들을 떠안고 살아갈 때, 이고은의 『계절의 이유』는 그것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독자를 이끌어준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이제 보니
우리는
작별의 공동체
- 김혜순, 『날개 환상통』 작가의 말
『계절의 이유』는 작가 이고은이 겪은 상실과 이별에 대한 50여편의 기행기이다. 이고은은 책 속에서 멀어져가는, 보내야만 하는 여러 인연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여러 시편을 떠올렸다.
가족이란 작별의 공동체라는 김혜순의 말, 어머니를 잃고 쓴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가 돌지』, 연이 닿은 이들, 그러니까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는 박서영의 시집.... 필연적으로 서로를 배웅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음에도, 고향조차 떠나본 적 없는 나는 막연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별이란 결국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배분된 것. 작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감상을 책을 읽으며 느꼈다. 그렇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소는 저마다의 기억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하나하나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도, 어딘가 깊이 잠들어 있던 감정들은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슬며시 눈을 든다.
- 61p, 「102동 604호」 중
기억은 빈 공실의 주인이다. 나는 재개발구역 동네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왔다. 지금은 개발된 곳도 있지만, 개발을 명목으로 방치된 곳이 더 많다. 어릴 적부터 추억이 많은 곳이다 보니 종종 출입 금지 지역임에도 들어가 그곳을 구경하곤 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하굣길,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마트, 텅빈 교회, 방치된 정자... 버려져 먼지와 시간만이 자리를 채운 그곳을 바라보면 이따금 그곳을 채웠던 사람들과, 그 속에 있던 내가 떠오르곤 한다.
이고은이 그려내고 소환하는 기억들 역시 그렇다. 슬픔을 떠나 보내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가 숱한 시간을 거쳐 담담히 꺼내놓은ᅠ소박하고 담담하다. 연필로 꾹꾹 적어내리듯 시간과 기억에 대해 그저 견딘 대로 응시할 뿐이다. 과장되게 슬퍼하지도, 억지로 의연하려 들지도 않는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주택의 한 구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히 웅크려 있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낮잠을 자나 보다 생각했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녀석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제야 죽은 고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 그때는 막연히 꺼림칙하고 불편하게만 느껴진 존재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고양이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했던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풍경 속으로 가만히 스며드는 일. 그것은 세상이 준 숨을 가장 온전하게 돌려주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 117~118p, 「마침표」 중
왜인지 책을 읽고 오래도록 남았던 에세이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예찬할 때, 종종 반대의 풍경을 생각하곤 한다. 살기 위해 새살이 돋는 과정에서 나는 고름이나, 부패한 사체에 살기 위해 들끓는 구더기들, 그것들은 어쩌면 삶에 더 가까운 것들이 아닌가? 이미 죽어 있는 고양이에 대한 평온한 서술이 오히려 죽음에 대한 숭고를 지켜준다고 느꼈다.
최근 들어 엄마는 종종 내게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해달라,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내가 느끼기엔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라고 느껴서, 괜히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목장을 해달라, 나무 한 그루면 충분하다.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괜히 말을 돌려버리거나, 아직 멀었다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작별에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막막하고 눈물이 난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비록 내게 여름은 상실의 계절이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은 내 몸과 마음에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득 채워 주었다. 이제 내게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나는 지금도, 그 찬란한 햇빛 아래를 걷고 있다.
- 139p,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중
작가에게 여름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상실의 계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여름을 사랑하며, 그 뜨거운 볕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생명성을 자각한다. 계절은 결국 시간을 덧입혀 계속해 그 의미를 만들어간다.
슬픔 속에서 보냈던 여름도, 기쁨 속에서 보냈던 여름도 결국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서 발굴해야 할 건 감정만이 아닐 것이다. 지나간 시간, 지나간 계절 속에서 수없이 많은 깨짐을 겪으며 점점 단단해지는 우리, 우리가 쥐고 있는 시간의 손금. 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