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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신비평 시대 이후 현대의 미술 작품들은 작가 개인의 의도나 작품 속 명확한 서사와 독립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많은 그림들은 그렇게 동작하지 않았다.

   

사진기의 등장 이전, 세상의 형체를 또렷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림뿐이었기에 그림과 미술은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아름다움에 몰두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 궁전, 왕립미술관 등 한정된 장소에서만 이러한 그림을 관람할 수 있었다. 당시 쓰였던 작품들 역시 최대한 풍경을 세세히 묘사하는데, 이 역시 시각 정보가 완전히 제한된 상태에서, 대상을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진기는, 회화 작품이 '대상을 똑같이 재현'함에 있어 그 의무를 앗아가버렸다.

 

이후 미술계는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만 했다.


대상의 찰나를 포착하는 인상주의, 사물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입체주의, 인간의 무의식과 감정을 투영하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일상적인 저급 문화를 예술로 끌어올린 팝아트와 키치에 이르기까지, 회화는 재현을 넘어선 다채로운 사조들로 뻗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림'을 본다.  수천만 화소의 디지털 이미지가 인터넷을 떠돌고, 기술 복제가 숨 쉬듯 당연해진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굳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시스티나 성당에서 <아담의 창조>를 마주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다름 아닌 그 그림의 진품만이 가진 아우라(Aura)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먼, 어느 유일무이한 현상의 시간과 공간이 얽혀있는 기이한 직조물."

 

원본이 간직한 '지금, 여기'라는 일회적 현존성은 결코 복제될 수 없다. <위험한 그림들>에 수록된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그림들은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아름답고도 처절하게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해 태어났다. 비참함, 숭고함, 슬픔, 거룩함 같은 감정들은 사실의 전달을 넘어 보는 이의 심장을 파고들기 위해 때로 극적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는 순간, 수백 년 전 과거의 인간들이 겪었을 감동과 공포의 아우라에 기꺼이 잠식당한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당대 역사적인 사건들을 아름답게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그려낸 그림들이다. 비참함, 숭고함, 아름다움, 슬픔, 기쁨, 거룩함. 그 모든 감정들은 사실이라기보단 보는 이에게 '전달'하기 위해 극적으로 강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그림들을 목도한 순간,  그 아우라에 잠식된다. 몇백 년 전, 몇천 년 전 과거의 인간들이 겪었을 그 감동을 감히 상상해보며 말이다.

 

이원율의 <위험한 그림들>은 이러한 역사적 그림들에 대한 배경 지식과, 함께 보면 좋은 그림들을 함께 저술한다. 그림에서 목도한 충격과 감상은 배경지식과 실제 역사와 더불어 더욱 풍부한 감상으로 와닿게끔 맥락을 연결해준다. 책에서 다루는 세 가지 상징적인 그림을 통해 그 아우라의 맥락을 함께 살펴보자.

 

 

 

폴 들라로슈,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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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속 주인공은 '레이디 제인 그레이'이다. 이름이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는데, 당시 16세기 중세 영국 왕실 계보, 특히 종교 중심으로 살펴보면 재밌다.

 

중세란 신이 가장 중요한 시대, 그중에서도 가톨릭 교황청이 중세의 거의 전 종교를 좌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16세기는 이제 그 공고한 종교가 정치적 무기로 변모하고 있던 격동기였으며, 서서히 근세 국가로서의 틀이 잡혀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작자 미상, 캐서린 파, 1545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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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헨리 8세는, 아들을 얻기 위해 가톨릭 국가 스페인 출신의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강행한다. 그녀와의 사이에선 훗날 블러디메리라 불리는, 메리1세 여왕이 태어났다.

 

이때 헨리 8세는 가톨릭과 결별, 스스로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성공회가 되는 종교개혁을 강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아들을 얻기 위해서뿐 아니라, 가톨릭 교황청의 수하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독립하기 위한 수단이라 볼 수 있다.

 

이후 그는 시녀 출신의 앤 불린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훗날 엘리자베스 1세가 되는 엘리자베스 튜더를 낳는다. 여기서 헨리 8세에게 홀대받으며 자란 캐서린의 딸 메리 1세는 가톨릭의 상징으로, 반면 앤 불린에게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튜더는 개신교의 희망으로 성장한다.

 

레이디 제인은 앞선 두 공주와 달리 서퍽 공작의 소생이지만, 어머니가 왕족 출신이었기에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개신교도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얌전한 소녀였고, 에드워드 6세를 포함 메리, 엘리자베스와 같은 직계 계승자들이 있었기에 제가 여왕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헨리 8세 사후 왕위에 오른 어린 에드워드 6세는 폐결핵으로 돌연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이때 가톨릭파와 개신교파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진다. 왕위 서열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가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개신교도, 그중에서도 제인의 시아버지인 존 더들리는 에드워드 6세를 설득해 제인 그레이에게 왕위를 넘기게끔 한다. 제인 그레이 역시 상상도 못한 왕위 계승에 충격을 받았지만, 개신교도파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휘둘려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헨리 8세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도 가톨릭파는 여전히 건재했고,  제인 그레이의 혈통적 정당성도 문제가 되었다. 민중과 가톨릭의 지지를 얻은 메리는 9일만에 다시 왕위를 찬탈하게 되고, 제인 그레이는 런던탑에 갇히게 된다.

 

 

 

안토니스 모르, 메리 1세 초상화,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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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1세는 의외로 제인 그레이를 탓하지 않았다. 제인은 당대 영국 여성 중 손꼽히는 지식인이고, 총명했으나 순수하고 선량해 평생을 이용 당하기만 했다. 그런 그녀를 불쌍히 여긴 메리는 위험인물이자 반역자 신분임에도, 개종을 권유하며 자비를 베풀었다.  그러나 제인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국 처형 당하게 된다.

 

그 후 메리 1세는 영국을 완연한 가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개신교도들을 처형하였다. 그녀가 처형한 개신교도가 너무 많은 탓에, 영국의 템스강이 피로 물들었다는 얘기까지 돈다. 그래서 그녀에게 '블러디메리'라는 별칭이 붙었고, 이 '블러디메리'가 이름 붙여진 붉은 칵테일도 있다.

 

메리는 이후 스페인의 펠리페와 결혼을 추진한다. 펠리페는 메리의 어머니인 캐서린 왕비의 나라이자,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왕자였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메리는 말년까지 후계자를 갖지 못해 결국 엘리자베스 튜더를 후계로 지명하게 되었다.

 

개신교 박해, 블러디메리 등의 별칭, 엘리자베스 1세의 인기 등으로 메리 1세에 대한 사후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지만, 사실 업적이나 객관적인 평가로 보아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여왕이라고 한다. 만일 메리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영국이 기적적으로 가톨릭 국가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도 있다.

 

메리 1세 사후 엘리자베스가 즉위하며, 영국은 개신교 박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헨리 8세로부터 이어진 이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 극심한 종교전쟁을 잠재우기 위해 중도적 노선을 취하며, 영국 국교회를 확립시킨다.

 

 

 

조지 휘팅 플래그, 처형식을 준비하는 제인 그레이,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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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9일 동안 왕비였던 제인 그레이. 그녀의 일생은 악마화된 주변인, 역사적인 인물들에 의해 이용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뜯어보면 치열한 정치와 종교적 싸움 속에서 희생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한 평생 이용 당했던 가련한 제인 그레이의 삶을 더 비극적으로 묘사하고자 한다.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깊은 참담함의 분위기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과 연결지으면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여담으로 홍차 브랜드 트와이닝에서는, 이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모티프로 '레이디 그레이'라는 가향 홍차를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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