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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오디세이 - 그리고 너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리라 [영화]

트로이까지는 꾀로 됐는데

by 곽한별 에디터
2026.08.17 14:43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 나이 또래 어린이가 있을까. 몇 번이고 다시 읽어서 신들의 이름과 관계를 줄줄 외웠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저승의 신 하데스였다(아마 어렸을 때부터 나의 취향은 말수 없고 자기 할 일 잘하고 사랑꾼인 남자였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오디세우스를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영화관에서 다시 만났다.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왔고,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좋았다.

 

이미 책과 영화에 대한 리뷰가 많고, 오디세우스가 어떤 일을 겪는지도 대부분 알고 있으니 좋았던 부분을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신화 속에서 몇 줄로 지나갔던 사건들을 실제 인간이 겪었을 시간으로 바꾸어 보여주는 장면들은 재미있었다. 트로이 목마 안에서 적군이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던 병사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버텼을까. 헬레네를 되찾는다는 아가멤논에게 정말 사랑이나 명예만큼이나 무역 항로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지략가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오디세우스에게도 자신이 세운 계략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오디세우스가 전쟁 이후에 보낸 시간이었다. 트로이 전쟁은 10년 동안 이어졌고, 전쟁이 끝난 뒤 그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다시 10년이 걸렸다. 나는 그 두 번째 10년이 오디세우스에게 필요했던 속죄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신들의 장난에 휘말린 영웅의 모험담처럼 보인다.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은 외눈박이 괴물을 만나고, 그 일로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면서 바다에서 계속 고생한다. 오디세우스도 자신이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신이 자신의 앞을 막는다면 신을 막겠다고 한다. 신과 싸우겠다고 한다.

 

오디세우스라면 그럴 법하다. 그는 원래 꾀를 내고 방법을 찾아 위기를 빠져나가는 사람이었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미친 척하며 쟁기를 끌다가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가 쟁기 앞에 놓이자 차마 앞으로 나가지 못해 거짓말이 들통났고, 그렇게 끌려간 전쟁에서는 결국 트로이 목마를 생각해 내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을 끝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궁금했던지 병사들의 귀는 막아놓고 자기 몸만 배에 묶어 기어코 노래를 듣는다. 신이 막으면 신과 싸우겠다는 말도 이런 사람에게는 꽤 자연스럽다.

 

하지만 귀향이 길어질수록 오디세우스가 마주하는 것들이 달라진다. 병사들이 돼지로 변하고,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자신이 제대로 기리지 못했던 죽은 병사들의 넋은 그를 원망한다. 제우스의 법을 어기고, 인간 사이의 신뢰를 끊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일들이 그를 따라온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피하면 끝날 줄 알았던 귀향길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자꾸만 다시 마주하게 된다.

 

물론 트로이 전쟁을 시작한 사람은 오디세우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에 들어간 뒤에는 수많은 선택을 했다. 트로이 목마를 생각해 냈고, 그 계략은 전쟁을 끝냈으며 동시에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 전쟁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계속 방법을 찾고, 신과 맞서고,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이타카에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다 결국 함께 고향으로 향했던 부하들을 모두 잃는다. 그 뒤에는 칼립소와 함께한 7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도 끝났고, 함께 떠났던 사람들도 사라졌고, 고향으로 가는 길마저 멈춰버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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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em Basse, 〈Ulysses on the Island of the Goddess Calypso〉(1634)

 

 

그 긴 시간이 끝난 뒤 다시 바다로 나온 오디세우스에게 남은 것은 뗏목 하나뿐이다.

 

이번에는 신과 싸우겠다고 하지 않는다. 바다를 이길 방법을 찾지도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뗏목 위에 몸을 눕히고, 자신을 신에게 맡긴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붙잡지 않은 채 파도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간 끝에 고향 이타카에 닿는다.


오디세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제대로 재회하기 전,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들을 가정법으로 꺼내놓는다.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세상이 달라졌다면. 내가 기억하던 고향이 더는 그대로 있지 않다면. 당신도 달라졌다면. 그리고 20년 동안 전쟁과 죽음을 겪으며 너무 많이 달라진 나를 당신이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신전에서 살해당하기 전 절규하는 여사제의 얼굴에서 오디세우스는 여신 아테네를 발견한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손을 맞잡는다.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 아테네였는지, 오디세우스가 만들어낸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순간 오디세우스는 자신도 속죄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을 품은 듯 보인다.

 

이타카에서의 갈등을 해결한 오디세우스는 왕권을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넘기고, 페넬로페와 함께 다시 서쪽으로 떠난다. 그 이유는 자신과 함께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의 넋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다.

 

한 인간이 자신의 과오를 발견한 뒤 그것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아무리 긴 시간을 고생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자신이 만든 모든 결과를 책임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오디세우스에게 영화 속 신들은 계속해서 한 가지를 요구한다.

 

거친 파도에 너를 완전히 내려놓으라고.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기억하라고. 네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도 내려놓으라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한다.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다시 서쪽으로 길을 떠난다. 다만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되돌릴 수 없는 것까지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려 하지는 않는다.

 

처음의 오디세우스는 신이 자신의 귀향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과 싸워서라도 이타카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긴 항해의 끝에서 그는 방향키를 놓는다.

 

아테네가 그의 귀에 속삭인다.

 

너는 그제서야 완벽한 때를 알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드디어 너는 집에 돌아가리라고.

 

 

테라코타 부조.jpg

 460–450 BCE Greek, Melian Terracotta plaque (Odysseus returning to Penel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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