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대부분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니체라는 이름은 꽤 익숙했다. 특히 연예인들이 니체의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인터넷에서 니체의 문장들이 인용되는 것을 보면서 ‘니체는 대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철학을 갖고 있길래 이렇게 유명한 걸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받아 들고 난 뒤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664쪽에 달하는 두께를 보고 나니 이것이 흔히 말하는 ‘벽돌책’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떤 페이지는 글보다 각주의 양이 더 많아서 논문같기도 했다. 읽기 전부터 이 책에 대해 찾아보니 니체의 철학이 집약되어 있어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처음부터 너무 고난도의 보스를 고른 것은 아닌가 싶었다. 괜히 어려운 책을 골랐다가 니체라는 철학자와 첫인상이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읽기 전에 나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책의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마음에 들어오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니체의 철학을 공부한다는 마음보다는, 책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문장들을 하나씩 수집한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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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책의 목차를 보면 ‘기쁨과 격정에 대해’, ‘읽기와 쓰기에 대해’, ‘친구에 대해’, ‘아이와 결혼에 대해’, ‘자살에 대해’, ‘구원에 대해’, ‘사람의 분별력에 대해’ 등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많다. 1부부터 4부까지 상당히 많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내가 끌리는 부분부터 읽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이 이 책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책의 두께와 어려운 문장에 압도되지만, 내가 궁금한 부분부터 읽으니 니체의 말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번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어려운 철학 개념만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니체의 고통과 죽음, 실연과 기쁨, 격정과 비판, 춤과 웃음, 자기극복이 깊이 새겨진 ‘삶의 기록’이자 문학작품으로 소개한다. 니체는 심한 질병으로 대학을 사임한 뒤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고, 걷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철학자가 책상 앞에서 딱딱한 논리만 펼쳐놓는다는 느낌보다는, 길을 걷고 삶을 살아가면서 떠오른 생각을 강렬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물론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아니다. 특히 여성에 관한 니체의 일부 표현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불편하게 느껴졌다.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라고 해서 모두 멋있는 문장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문장까지 마주하고 나니, 한 사람의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동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읽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이 있었다. 어떤 문장은 삶에 관한 것이었고, 어떤 문장은 사랑에 관한 것이었으며, 또 어떤 문장은 인간관에 관한 것이었다. 굳이 하나의 의미로 묶기보다는, 읽으면서 내가 멈춰 섰던 문장들을 그대로 남겨보고 싶다.
그렇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
삶을 좋은 것으로 보는 나로서는 한 쌍의 나비와 비눗방울들이,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저마다 누리는 소소한 것들이 가장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p.76 [읽기와 쓰기에 대해]
단기간 이루어지는 수많은 바보짓 ㅡ 그것을 너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너희의 결혼은 단기간 이루어지는 수많은 바보짓에 종지부를 찍고 긴 어리석음을 시작하고 있다. (....) 너희는 앞으로 너희를 넘어서 사랑해야 하리니! 그렇다면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그러기 위해 너희는 사랑의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리라.
p.134 [아이와 결혼에 대해]
많은 이들이 너무 늦게 죽는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너무 일찍 죽는다. "적당한 때에 죽도록 하라!"는 가르침이 아직은 낯설기만 하구나.
p.135 [자살에 대해]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p.240 [어문학자들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침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수다스러운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p.270 [구원에 대해]
삶이 아름답게 보이려면 그 삶의 연극이 잘 연출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배우가 필요하다. 나는 훌륭한 배우들은 모두 허영심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연기하고, 관객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연기를 보기 바란다. ㅡ 그들의 모든 정신은 이 의지에 있다.
p.274 [사람의 분별력에 대해]
결국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니체의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느꼈던 막막함과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664쪽이라는 두께가 이 책을 읽지 못하게 만드는 벽처럼 보였다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안에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문장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내는 책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을 몇 년 뒤의 나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니체가 정해놓은 답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의 문장을 통해 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어쩌면 우리에게 니체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것들을 다시 묻게 만드는 사람이다. 삶을 왜 사랑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지금의 나를 넘어설 필요가 있는지. 이 책은 이런 질문들을 쉽게 끝내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 개의 문장을 마음에 담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니체를 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니체 때문에 나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었다면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니체가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