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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루이자 메이 올컷의 대표작 작은 아씨들은 시대를 넘어 수없이 영화로 각색되어 왔다. 1917년 흑백 무성영화로 처음 세상에 나온 이후, 수많은 감독들이 이 고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시 그려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94년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작품과 2020년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영화 모두 원작에 충실하지만, 내가 오늘 다룰 거윅 감독의 작품은 ‘여성’과 ‘독립’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적인 감각이 엿보인다.


처음 2020년에 극장에서 봤을 땐 그저 따뜻하고 미학적으로 예쁜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보면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교차시킨 시간의 흐름과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인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레타 거윅이 만들어낸 <작은 아씨들>은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니라 ‘여성의 삶과 선택’을 색채와 시선의 구성으로 세밀하게 드러낸 작품이었다. 자매들의 사적인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 시대 배경이나 연출 기법을 알고보면 영화가 훨씬 풍성하게 다가온다.

 

 

 

색채로 보여주는 시간의 교차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방식이다. 이야기가 7년 전과 7년 후를 오가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나도 처음 볼 때는 그러했다. 하지만 여러번 보니 거윅 감독은 이를 색채와 조명으로 명확히 구분해냈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의 장면은 하이키 조명을 사용하고, 현재의 장면은 로우키 조명을 사용한다. 과거는 붉고 따뜻한 조명이 비추며, 가족이 모닥불 앞에서 웃고 떠드는 따스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반면 현재는 파란빛과 어두운 조명으로 차갑고 현실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같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색감만으로 두 시기의 온도 차가 느껴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러한 색감의 대비를 통해, 행복했던 과거와 각자의 삶에 부딪히는 현재의 간극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주목할 만한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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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조가 혼자 쓸쓸히 거리를 걷는 현재 장면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과거의 조와 자매들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같은 거리를 걷는 장면이다. 또, 해변 장면에서도 같은 구성이 반복된다. 과거의 해변은 햇살 아래 웃음소리가 가득하지만, 현재의 해변은 흐리고 적막하다. 베스의 병간호를 위해서 조가 그곳에 다시 찾아온다는 목적까지 생각하면, 그 두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감정의 무게를 깊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장치로 느껴진다.


이렇게 감독은 단순히 장면을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색과 빛으로 감정의 층위까지 표현했다. 따뜻한 영상미와 차가운 영상미 둘 다 영화 속에 담았다. 그렇기에 <작은 아씨들>은 순서가 뒤섞여 있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7년 전과 7년 후가 너무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바뀌어서, 잠깐 눈을 뗐다간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색감으로 구분하면 충분히 구분이 가능한 것이 흥미로웠다.

 

 

 

19세기 미국 사회와 여성의 지위


 

또한 당시 영화의 시대 배경을 안다면, 영화를 보고 생각할 부분이 더 많아진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1862년 남북전쟁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아버지가 북부 연방군으로 참전하면서 가정의 수입원이 끊기고, 네 자매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은 남북전쟁 이후 여성의 지위가 점차 회복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당시 여성의 삶은 여전히 많은 제약에 갇혀 있었던 것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출판업자인 대쉬우드 씨가 조에게 "주인공이 여자면 끝엔 꼭 결혼시키고 아니면 죽이든가"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당시 19세기 여성에게 결혼이 곧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에이미의 대사에서 결혼은 당시 여성에게 생존을 위한 경제적 거래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조가 자신의 원고를 제출할 때 본명을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당시 여성 작가의 편견이 존재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같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가명으로 출판했다는 사실은 당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느정도였는지 보여준다.

 

 
"난 시인이 아니라 그저 여자야, 그리고 여자는 돈 벌 방법이 없어... 속 편하게 앉아서 결혼이 경제적인 거래가 아니라곤 하지 마. 내겐 그래"

- 작품 中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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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매를 통해 본 다양한 여성상


 

이러한 작품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작은 아씨들>은 항상 가장자리에만 있었던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감독은 조, 에이미, 메그, 베스 네 자매를 통해 19세기 영미권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다양한 여성상과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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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취적인 여성, 조 (Jo) - '조'는 작가를 꿈꾸며 여성에게 부여된 전통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결혼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관습에 대한 저항이자, 남성적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강력한 의지를 상징한다.


2) 현실을 직시하는 여성, 에이미 (Amy) - ‘에이미’는 당시 19세기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능력있는 남자와의 결혼’을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대고모에게 ‘이제 가문을 먹여살리고 자매들을 부양 할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 라는 투의 말을 많이 들은 탓일까, 삶의 최종 목표가 부자인 ’프레드 본‘과의 결혼인 듯 보인다. 프레드 본과 약혼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여자가 된다고 믿는다. 그녀의 결혼관은 낭만보다는 가장 현실적인 생계 유지 방법을 택한 당시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3) 사랑과 현실을 갈등하는 여성, 메그 (Meg) - ’메그‘는 자매 중 가장 일찍 결혼을 한 인물로 나온다. 로렌스 집안의 가정교사인 ’존‘과 결혼을 했다. 그녀 또한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행복을 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레스 값에 쩔쩔 매는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메그가 등장한 여러 장면에서, 그녀가 7년 전 행복했던 날들을 그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면, 자신이 과거에 사교계에서 사용했던 별명이 ’데이지‘인데, 자신이 현재 존과 낳아서 키우는 딸 이름 또한 ’데이지‘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그 순간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무도회에서 새 드레스를 입었던 장면이 나오는데, 7년 후에도 그 그리움의 상징인 휘향찬란한 ’드레스‘를 산다는 점에서 그 시절을 그리워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싼 드레스가 현재의 남편과의 갈등 지점이 된다는 점에서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4) 순종적인 천사같은 여성, 베스 (Beth) - ’베스‘는 언니들이 말하는대로 가장 착하고 바른 아이이다. 가장 순종적인 여성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는 것을 참 좋아하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험멜 가족을 돌보다가 성홍열을 오랫동안 앓다 사망한 인물이기도 하다. 가족을 돌보다 병을 얻어 사망하는 베스의 삶은 19세기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이상적인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녀의 내면적인 삶은 피아노와 어머니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어 주어진 성역할에 충실한 여성을 대변한다.

 

영화 초반에 감독은 이 네 자매들을 차례차례 보여주는데, 모두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등장인물의 정체성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첫 장면에서 ’조‘는 편집장에게 가서 자신의 글을 주는 모습을 보아 글을 쓴다는 정체성이 가장 강함을 볼 수 있고, 에이미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과 약혼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요구되는 평범한 여성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메그‘는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베스‘는 외롭고 쓸쓸한 피아니스트의 삶이 강조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조와 에이미가 스스로를 계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보이려는 적극성을 지닌 것과는 달리, 베스와 메그는 순종적이며 주어진 성역할에 충실하다.


영화 속 이러한 여성주의적인 관점은 실제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콧의 가치관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 글만 쓰며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활동했다. 또한, 독서모임을 개최 하여 이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도 투표를 장려하는 등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결론


 

<작은아씨들(2020)>처럼 각 여성 캐릭터들에게 숨을 불어넣어주고, 모두를 서사 내에서 매력적으로 살아 숨쉬게 해 준 작품은 없으리라. 순차적인 내레티브를 쓰지 않고, 시간 구성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더욱 작품을 능동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7년 전과, 7년 후인 현재를 따뜻하고 차가운 색감으로 특색있게 구분하며 작품성도 챙겼다. 또한,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작은 아씨들>은 당시 19세기 소외되었던 여성들에게 여러 서사를 구체적으로 조명해준 것으로도 충분히 호평을 받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자매들의 각 여성상이 다양하게 표현되었고, 이를 통해 당시 19세기 영미권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여러 여성상과 시대상을 엿 볼 수 있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 작품은 훌륭한 여성 이야기로 계속해서 회자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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