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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불안을 누르는 일상이라는 돌

하지만 뒤로는 가지 않습니다

by 채혜인 에디터
2026.08.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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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내릴 것 같이 뜨거운 여름을 떠나보내고. 달궈졌던 아스팔트도 본래의 이성을 찾듯 제법 차게 식어가는 요즘.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계절이 반쯤 사라져 가서 그런 건지, 더위로 온통 어지럽던 머리가 말끔해져서 그런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내겐 너무 익숙한 불안과 걱정이 그것이다. 아무리 떨쳐 내려고 해도 그대로인. 길바닥에 불안과 걱정을 버리고 가버려도 친절한 누군가 ‘저기요 이거 그쪽 것 같은데’ 하고 주워줄 것만 같이 소유권이 명확한.


갑자기 부모님이 아프면 어떡하지? 이대로 내 진로를 밀고 나가도 되는 건가? 다들 누군가 옆에 있는데 나는 너무 태평한가? 남는 시간에 이렇게 여유롭게 쉬어도 되나?


무엇을 하던 망설임 없이 자신감 없이 해내고, 꽤나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나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대책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럴 때 원래 나의 ‘일상’의 힘을 믿고 좋은 것들만 생각하려 애쓴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 때문이지만, 반대로 나를 순간순간 좋은 쪽으로 등 떠미는 건 내 주변에서 실제로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부모님이 회사 텃밭에서 키운 참외와 호박잎, 방울토마토를 저녁과 후식으로 먹었다. 생긴 건 전부 투박하고 들쑥날쑥, 크기 또한 균일한 것 하나 없었지만 맛을 보니 하나같이 기특했다. 마치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반들반들한 채소들을 맨손으로 집어 한입 가득 채웠다.


얼마 전에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곳에서 만난, 몇 없는 또래 친구와의 만날 약속을 드디어 성사했다. 사실 처음 안 지는 벌써 5개월이나 되었는데 서로 작은 간식을 주고받고 먼발치서 응원만 하다가 드디어 날을 잡아 맛있는 걸 먹기로 했다. 어떤 얘기들을 하게 될까. 그때쯤이면 날이 더 선선해져서 저녁 산책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4개월 차가 된 운동도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한다. 15분 유산소, 40분 근력운동. 써놓고 보면 단순하지만 매번 ‘가기 싫다’를 외치게 하는 주범들. 그래도 일주일에 4번 이상은 꼬박꼬박 나가 어떻게든 운동 루틴을 마치려 애쓴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가기 싫다가 스트레칭만 시작해도 ‘그래 오길 잘했다’하고 스스로 태세 변환을 한다. 이렇게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건, 무너지는 마음을 가지고서라도 나의 일상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불안에 잠식될 때마다 마치 전원이 끊긴 로봇청소기처럼 집 한구석에 박혀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곤 했다.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모든 것들의 의미가 퇴색되게 만드는 불안 앞에서는 그게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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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안을 핑계로 일상에 소홀히 하지 않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무지막지한 무기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눈이 생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친구들을 만나고, 못해도 일주일에 네 번은 운동을 하는 그런 일상. 평범해 보이지만 공기만큼이나 중요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불안한 마음속에서도 절대로 ‘뒤로 갈일은 없다’는 사실을, 근래에 더욱 체감하고 있다.


초안을 쓸 때만 해도 답답한 가슴으로 글을 적었는데, 그새 또 마음의 판도가 바뀌었다. 역시 묵묵히,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려 했던 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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